육아수학교육 에세이, 점박이 04편
내 방임형 수학교육의 시작은 처음엔 나름 순조로웠다. 우리 점박이는 내가 준 문제집을 매일 한 페이지 정도는 풀었고, 별 문제 없이 다 맞췄다. 가끔 모르는 것을 물어봐도 잠깐 설명해 주면 금방 이해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어느 날이었다.
점박이가 어떤 문제를 잘 이해 못 하겠다면서 가져왔다. 지금은 그 내용이 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나름 열심히 잘 설명했다. 그런데 점박이의 표정을 보니 잘 이해하지 못 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점박이에게 아직 잘 모르겠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뭐, 부모는 자기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 정도 감정통제 쯤은 할 수 있으니까!! 하고 친절하게 웃으며 다시 설명해 줬다. 그런데, 점박이는 설명을 다 듣고도 여전히 이해 못 하는 표정이었다.
그리하여 그러한 감정통제 정도는 우스웠던 나는 친.절.하.게. 웃으며 다.시. 설명해 주었다, 하하.
그런데 여전히 잘 모르는 표정의 점박이에게 나는 다.시. 설.명.해. 주.었.다. 친.절.한. 설명을 마치고 점박이를 봤더니,
점박이는 벽에 있던 낙서를 보고 있었다!
나는 분노가 폭발하여 점박이에게 일장설교를 시작하였다.
야, 이해를 못 하는 건은 괜찮은데, 설명을 하면 들어야지.
선생님이 열심히 설명하는데, 그렇게 딴데 보고 있으면 예의가 아니잖아.
아마 우리 점박이는 내가 그런 식으로 짜증을 내며 말하는 것을 별로 못 봤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정말 화가 났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위에서 나는 친절하게 설명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대략 두번째 설명하기 시작할 때부터 슬슬 짜증이 올라오는 걸 우리 점박이가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다행인 건, 나는 평소에 감정의 동요가 많지 않은 편이라 내 스스로 그런 식으로 화가 나는 것을 금방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내가 방임형 수학교육을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수학을 공부할 때, 스트레스 받지 않기
였기 때문에, 우리 점박이가 잘 이해 못 한다고 해서 이렇게 화를 내버리면 하지 않느니만 못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더 설명을 해야할까, 아니면 그냥 넘겨야 할까. 두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처음엔 수학은 단계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지금 이걸 이해하지 못 하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갔을 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몇번 더 설명을 하더라도 이해를 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점박이는 이미 서너번 설명을 들었고, 집중력이 이미 바닥이 난 상태라서 더 설명을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 할 것 같았다.
성인과는 다르게 어린이의 집중력의 지속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아이들마다 다르긴 하지만, 짧은 경우는 5분 동안 집중하는 것도 버거운 아이들도 많다. 우리 아이는 1시간 공부해도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건 감사해야할 일이지, 절대 그런 아이를 평균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눈물을 머금고, 그 문제를 쿨하게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여기까지" 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때는 정말로 다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점박이는 10분일지언정 혼자 열심히 무언가를 노력했고, 그것만으로도 칭찬받을만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학교육은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꾀를 부리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칭찬 받아야 하며, 그것도 안 되면 설명을 듣고자 곁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아야 하며, 심지어 설명을 들을 때 짜증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아야 한다. 잘 이해하는 것은 나중의 문제이다.
그 뒤 우리 점박이가 어떻게 되었을까.
일주일 정도 후에 다시 그 비슷한 문제를 마주쳤다. 나는 우리 점박이가 또 몰라서 질문을 하더라도 웃으면서 대답해야지 하고 마음 속으로 대비를 했다. 그런데, 점박이는 그런 나의 격한 마음의 준비를 비웃듯,
그냥 쉽게 풀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점박이에게 이 문제 저번에 몰랐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냥 이제 안다고 하더라...
...
...
...
나는 그때 크게 깨달았다. 수학이 단계적인 학문이라서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한다는 것은 물론 맞는 말이다. 수학의 개념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에서의 수학교육은 그런 수학적인 지식을 다루는 것보다는 국어적인 영역이 더 크기 때문에, 글을 읽고 그 내용을 머리 속에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이해를 못 하더라도 기다려주면 된다. 모든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다 책임질 필요가 없다. 아이들은 주위의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니까. 가르치는 사람이 그저 조금 욕심을 내려놓고, 그냥 잠시만 아이가 따라올 때까지 짜증내지 말고 잠시 기다려 줘라. 그러면, 곧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