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수학교육 에세이, 점박이 05편
초등학교 저학년을 교육시킬 때, 이것은 비단 수학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아이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뭐, 말로는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왜 기다려줘야만 하는가?
지난 십수년간, 나는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머리는 타고 난다
라는 거다. 뭐, 운동능력이나 반사신경도 타고 나는데 지능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곡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머리는 타고 나니까 머리 나쁜 애들은 공부 못 하는게 당연한 것이다 라고.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론인 것 같긴 하지만, 이 주장은 전제가 좀 틀렸다.
왜냐하면, 저 말은 공부라고 하는 것을 마치 평가로 국한시켜서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라고 하는 것에 평가라는 영역도 물론 존재하긴 하겠지만, 교육의 의미는 능력의 향상에 있지 않은가. 만약 공부가 단순히 평가에 그치고, 아이들을 선별해 내는 것에 불과하다면, 뭐하러 우리는 12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가. 그냥 시험 한번 쳐서 선별된 엘리트들만 공부를 시키면 되지 않나.
오히려 머리가 나쁜 애들이 있다면, 교육을 통하여 아이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아닌가? 물론 아이들의 지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는 더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겠고 누군가는 꼴찌를 할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의무교육을 받으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은 갖출 수 있게 된다.
굳이 예를 들어 보자면, 일본의 라이트노벨 중에 "책벌레의 하극상" 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대충 내용이 원래 현대 일본의 책벌레 여대생이 책에 깔려서 죽은 후, 중세 판타지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서 책을 읽고 싶다며 고군분투하는 역하렘물이다. 그 시대에는 귀족이 아닌 대부분의 어른들도 글을 거의 읽지 못 하고, 단순한 셈도 하지 못 한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 하여 책도 없고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글을 읽을 수 없던 중세 유럽을 모티브로 하는 시대인데, 뭐 우리나라도 그 시대에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었을까.
그 시대의 성인과 현재 초등학교 학생들의 지능수준을 비교해 보면, 압도적으로 현재 초등학교 학생들이 높을 것이다. 또한, 1980년대의 어린이들과 2010년대의 어린이들을 비교해 보아도 지금 아이들은 인터넷의 발달로 엄청난 지식량을 자랑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창구는 책과 학교, TV 이 정도였지만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핸드폰으로 잠깐만 검색해 봐도 자신이 원하는 지식을 찾아낼 수 있다. 성적인 지식도 초등학교 3~4학년쯤이면 보통 대충 아는 것 같더라.
세상이 급변하면서 아이들이 세상에 나아가기 위해 갖춰야 하는 지식들은 점점 많아지고 깊어졌다. 우리는 공부 못 하는 아이들에게 왜 이렇게 못 하냐며 혼을 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아이들조차도 100년전으로만 갔다면 국가에서 긴히 쓰일 인재였을 것이다. 글조차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글을 읽고 사칙연산이 가능한 사람이 엘리트인 건 당연한 사실이니까.
뭐, 사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조금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 어렸을 때에 비해보면 꽤 잘 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 1980년대만 해도 중학교 때 영어의 알파벳부터 시작했지만, 지금은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시작한다. 1980년대에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배우는 것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모르면 지진아 취급을 받는다. 나도 머리 좋은 편에 속하지만, 만약 지금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닌다면 어디 가서 머리 좋다고 말도 못 할 것 같을 정도니까.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어른이 되어서 살아남지 않았던가? 사실 공부를 그렇게 엄청 잘 하지 못 해도 인생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는 것을 어른들은 대충 경험으로 안다. 나보다 공부 못 했던 친구들 중에 나보다 성공한 사람이 매우 많다. 그냥 지능도 하나의 재능일 뿐이고, 세상 살아가는 데에는 지능보다 중요한 재능이 훨씬 많다. 지능은 자기가 하는 일에 문제 없을 정도로만 적당히만 받쳐주면 문제 없다.
앞에서 엄청 딴소리를 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다. 아이들의 지능이 계발되는 시기는 개인차가 매우 크다. 어떤 아이는 유치원 무렵에 이미 어느 정도 지능을 갖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시점에서도 덧셈을 손가락으로 세어가면서 하는 경우도 있다. 뭐, 부끄럽지만 우리 애들 얘기다.
하지만 혹시 그런 경험 없는가? 나이 먹고 나서 애들 공부하는 책을 보니,
그땐 왜 이걸 어려워했었지?
하는 경험. 이 말은 사람의 지능은 성장하면서 계발된다는 의미이다. 그 당시에는 이해를 못 했지만, 성장하면서 점점 그릇이 커진다고 해야 할까. 과거에 받아들이지 못 했던 지식들을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경험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얻은 직관으로 몇가지 가설을 세웠다.
첫째, 아이들의 지능이 깨어나는 시기는 모두 달라서, 지능이 깨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 아이들은 정신적인 문제가 없는 이상, 늦어도 어느 시점에서는 지능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그 시기는 교육방식에 따라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셋째, 만약 지능이 깨어나기 전의 아이에게 억지로 교육을 강요하면, 기계적으로 계산은 가능하지만 부작용이 크다. 예를 들면,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거나 지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채로 겉모습만 따라하게 된다.
넷째, 그러한 아이들이 성장해서 기본적인 학습능력을 갖추었을 때, 그 아이들은 그 동안 쌓아온 부작용 때문에 학습능력에 문제가 없더라도 공부에 실패하게 된다.
대충 이 정도다. 자,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여러가지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Case 01.
아직 제대로 지능이 깨어나지 않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상황. 이 경우 대부분의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그 아이가 멍청하다고 생각하거나 더 잘 하게 만들기 위하여 윽박지르게 된다. 혹은 더 잘 하라고 엄청난 양의 숙제를 내기도 하는데, 이런 식으로 학습하는 학생들은 아마 지능이 깨어나서 정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 때조차 공부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 때문에 공부를 하려하나 실패할 수 있다.
Case 02.
지능이 뒤늦게 깨어났지만,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없이 성장하는 상황. 처음에는 그 성취가 비록 늦을 수 있지만, 억지로 공부했던 다른 아이들보다 뒤로 가면 갈수록 공부를 더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Case 03.
지능이 일찍 깨어난 아이들이 학습하면서 부작용을 크게 얻은 상황. 이 상황이 좀 안타깝긴 한데, 원래 지능적인 부분에서 타고난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지능이 더 뻗어나가지 못 하고 평범한 수준에서 성장이 멈춰버린다. 결국 지능의 성장이 조금 늦었던 다른 아이들이 따라잡을 수 있는 시기가 되면, 고만고만해질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가설을 세우고 나서 한동안은 확신을 하기 좀 어려웠다. 이론과 실제는 조금 다르니까.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이 방식에 따라 교육해 본 결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의 교육에서 기다림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아직 준비가 안 된 아이들에게는 어떠한 선생님이 가르쳐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 한다. 좋은 선생님은, 아이들이 준비가 될 때까지 공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기다려주는 선생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