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수학교육 에세이, 점박이 03편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꼽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관찰
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비단 수학교육 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에서 중요한 사실인데, 그 이유는 아이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교육 시스템을 갖춰 놓더라도 그 시스템 안에서 품지 못 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내 수학 교육방식 역시 모든 아이를 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언젠가 큰 수학학원에서 출강을 나갔던 적이 있었는데, 수학을 잘못 하던 아이 하나와 친해져서 종종 대화를 하고는 했다. 나는 그 아이가 당연히 나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아이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선생님의 수업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주입식 수학교육의 형태를 말이다.
지금은 그 아이가 왜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를 하는데, 그 당시의 나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외에도 내 방식이 맞지 않는다고 말한 학생이 몇명 있었는데, 어떤 학생은 내게,
선생님, 설명이 횡설수설하는 것 같아요
라고 했었다. 물론 그 학생 역시 나와 친한 학생이었다. 친했기 때문에 내게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해줄 수 있었던 것이지만. 뭐, 그 이후로 나도 강의식 수업을 위해 조금 스타일을 바꾸어야만 했었지.
어쨌든 교육에 있어서 가르치는 사람이 자기의 교육방식에 지나친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의 교육방식에 지나친 자신감을 갖게 되면, 자신의 교육방식에 맞지 않는 아이들을 멍청하다고 내치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강점을 갖고 있으며, 그 강점을 볼 수 없다면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어렵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떤 장점을 갖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이 모든 교육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관찰이라고 하는 작업은, 아이가 얼마나 선생님에게 믿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활발한 아이들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경우가 많고, 이런 아이들은 관찰이 쉬운 편이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6개월 동안 가르쳤어도 마음을 열지 않고 고분고분 말을 듣다가, 갑자기 어느 날 날벼락처럼,
흥, 전 조금만 하고 싶은데요.
라고 당돌하게 주장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땐 정말 당황스러웠다. 무슨 지킬박사와 하이드도 아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기가 사춘기를 지나던 시기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른 어른들한테는 말을 잘 듣는데, 나한테만 버릇이 없는 애들도 있다. 내 경우 초등학생들이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타고 어깨에 올라가려고 하는 애들도 꽤 많았다. 무슨 코알라도 아니고. 그것은 버릇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나를 신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찰을 잘 하고 싶으면, 아이가 가르치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는 나를 친구처럼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아서 종종 내게 말을 놓으면서도 의식하지 못 하는 아이들도 있다.
어쨌든 우리 첫째 아이, 계속 이렇게 부르니까 길어서 그냥 점박이라고 하겠다. 점박이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초음파 사진에서 점처럼 보여서 그냥 점박이라고 태명을 지었다. 점박이는 기본적으로 나를 닮았다.
일단 말이 별로 없고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한다.
그리고 아래는 우리 점박이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몇가지 예시이다.
Case 01.
초등학교 저학년 점박이와 같이 손을 잡고 아파트 정문을 통해 걸어가고 있는데, 얘가 "가아아" 라고 소리를 몇번이나 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내게 물었다.
아빠, 이상한 것 같아.
"가" 라는 소리를 연속으로 내려고 하는데,
처음에만 "가" 소리가 나고 다음 번부터는 "아아아" 소리 밖에 안나.
사실 이 질문을 처음 점박이에게서 들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만약 언어학에 대해 잘 모른다면 이 질문이 갖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이 질문은 언어학에서의 자음과 모음의 특성에 관한 것이었다. 왜 ㄱ, ㄴ, ㄷ, ㄹ, ... 이 자식소리(자음)이고, ㅏ, ㅑ, ㅓ, ㅕ, ... 가 어미소리(모음)으로 정해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다. 이러한 의문을 갖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어를 배우는 것에 재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뭐, 평생 저 의문을 못 갖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Case 02.
나는 컴퓨터 게임을 좋아해서, 점박이에게 어렸을 때부터 퍼즐게임을 시키곤 했었다. 예전 Mac 게임 중에 <Professor Fizzwizzl> 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 퍼즐게임을 유치원 다닐 때 종종 시켰다. 물론 조금 하다가 어려워서 금방 포기하긴 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해볼만할 것 같다.
https://www.bigfishgames.com/online-games/1914/professorfizzwizzl/index.html
점박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 우리 가족은 닌텐도 Wii 의 <뉴 슈퍼 마리오 브러더스 Wii> 를 하곤 했다. 처음엔 와이프와 나만 2인용으로 플레이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점박이도 같이 3인용 플레이를 했었다. 처음에는 컨트롤을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몰라서 우리 부부가 어려운 곳을 만나면 업어서 데려다 주고 하면서 플레이를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덧 대마왕 쿠파가 있는 보스전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너무 어려웠다. 우리 가족은 거기서 30번 이상을 죽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나와 와이프마저 죽고, 우리 점박이 캐릭터만 남았다. 이때 우리 부부는 당연히 점박이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다시 시작해야 겠다
라고 시큰둥하게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점박이가 갑자기 신들린 컨트롤로 모든 장애물을 다 피해내고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 부부는 점박이의 플레이를 보면서,
오오!! 오오옷!!
하며 열렬히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혼자 살아남아서 게임의 엔딩을 보았다. 아마 점박이가 게임을 좋아하게 된 것은 가족 모두가 같이 게임을 플레이했던 그 추억이 너무 좋았던 것이 아닐까.
Case 03.
점박이가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에도, 게임을 좋아했다. 우리 집에는 나 때문에 <플레이 스테이션 4> 와
<닌텐도 Wii>, <iPad>, PC 등 게임을 할 수 있는 기기가 넘쳐났다. 어느 날 나는 우리 점박이의 국어 실력이 궁금해져서 점박이에게, 그 때 점박이가 하던 게임의 공략에 대해서 한번 글을 써보라고 하였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점박이의 게임공략 글은 초등학교 저학년이 썼을 것이라 예상한 수준보다는 꽤 괜찮았다. 그 글을 공유하고 싶었는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Case 04.
나는 아이들의 두뇌계발을 위해서 보드게임을 장려하는데, 그 중에 <쿼리도> 라는 게임을 구매한 적이 있었다. 2인 대전용 장기 같은 게임이랄까.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나무위키글을 참조해 보도록 하자.
나는 머리 쓰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바둑이나 오목, 장기 같은 류의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점박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처음엔 점박이와 그냥 심심풀이로 대전했는데, 규칙을 잘 모르는 점박이는 그날 내게 발렸다.
그리고 나서 다음 날 내가 퇴근하고 들어왔는데, 나와 같이 꼭 다시 한판을 하자길래 도전을 받아주었다. 그런데 명확하게 뭔가를 의도하고 나를 유도하는 기색이 보였다. 그러나 결국 실패로 끝나서 내게 발렸다. 뭐 아슬아슬하게 내가 이겼다고나 할까.
다음 날 내게 또 덤볐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전략을 쓰더니, 정말 교묘하게 나는 그 함정에 빠져들었고 내가 패배했다. 나는 그때 속으로,
독한 놈
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충 어렸을 때 기억나는 점박이의 행동은 이런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관찰의 결과가 가르치는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작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냥 아이가 이렇구나 하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이성적으로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자신의 기준에 맞춰서,
이건 나쁜 짓이다
라고 말하면서 고치려고 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내지 못 한다. 물론 아이들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은 맞는데, 가르치는 사람이 그것을 정말 고치고자 한다면, 먼저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원인 등을 제대로 파악한 후에 감정적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자, 이제부터 점박이에게 방임형 수학교육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