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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Jul 08. 2020

사이드 스토리_08

02. 이돌이의 모험

어느 덧 시간이 지나서 이돌이가 대학교 입학시험을 볼 때가 되었다. 이돌이는 문과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통계학과를 지원했다고 했다. 당시 입시사정이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통계학과는 문과와 이과 모두가 지원이 가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수학이라는 압박 때문에 문과 학생은 잘 지원하지 않았던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전적으로 이돌이가 시험을 보고 온 이후에 내게 해줬던 말을 받아적은 것이다.


이돌이가 지원했던 대학의 통계학과의 입시는 면접이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이 면접이란 것이 단순하게 교수님과 이야기 몇마디 하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면접하는 곳에 학생들을 다 모아놓고 간단한 시험을 치루는 그런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돌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통계학과에 지원한 학생은 이돌이를 제외하고 모두 이과였다. 그리고 면접시험장에 모인 각 학교의 학생들도 이돌이를 제외하고 모두 이과였다. 면접시험장의 앞에는 수험생들이 간단한 현장시험을 치룬 후 채점해 줄 수 있는 교수님들이 몇분 계셨고, 면접시험을 치루기 전에 수험생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이돌이는 혼자만 문과라는 사실에 조금 떨떠름했지만, 자신감 있게 저 혼자만 문과라서 조금 긴장되긴 하는데 열심히 하겠다는 식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면접시험장에 모든 수험생들을 책상 앞에 앉혀놓고 간단한 수학시험을 봤다.


수학문제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이돌이는 받은지 십분도 안 되는 시간에 다 풀고 교수님에게 바로 제출을 했는데, 이게 너무 빨랐다는 거다. 생각해 보라. 문과 학생이라 수학을 잘못 할 것 같은데, 이과학생들도 다 못 풀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십분도 안 되는 시간에 다 풀고 제출했던 것이다. 그 시험장 안의 모든 사람들, 교수님까지 모두 포함해서 속으로,


에휴, 역시 문과라 수학시험은 일찍 포기했구나.


라고 생각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교수님들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고 하니까.


그런데, 수학시험을 채점하는 교수님이 이돌이의 답지를 건성으로 읽어내려 가다가 갑자기,


어, 이 문제를 이렇게 풀 수도 있네요?


라고 말씀하시며 시험장의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답지를 검토하던 교수님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돌이에게 흥미를 갖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방법은 이 문제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 아직 학생의 실력을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몇문제를 내 볼테니 혹시 도전해 보겠나?


이돌이는 당당하게 "네" 라고 대답했다. 걘 좀 그런 성격이었다.


그래서 흥미롭게도, 그 시험장에서 이돌이만 그 수학을 채점하는 교수님에게 몇개의 문제를 추가로 받게 되었다. 즉석으로 교수님이 칠판에 조금 더 어려운 문제를 쓰고, 이돌이에게 나와서 풀어보라고 한 것이다.


이돌이는 칠판 앞에서 문제를 고민하고 바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는데, 뭐 몇분이 지나갔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교수님이 문득,


이제 슬슬 다 된거 아니냐?


라고 말씀하셔서, 이돌이는,


네, 이제 이렇게 하면 끝입니다.


라고 풀이를 마무리했다. 교수님이 그 풀이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한가지 조건을 더 제시했다.


이번엔 문제를 풀고 설명까지 할 수 있겠나?


라고. 담대한 이돌이는 역시 "네" 라고 당당하게 대답했고, 새로운 문제를 풀고 이번엔 설명까지 막힘없이 했다고 한다. 뭐, 이돌이가 나중에 내게 해준 말은,


선생님이 앞에서 설명해준 스타일이 떠올라서 그 모습대로 설명했다


라고 내 얼굴에 금칠을 해줬는데, 진실은 잘 모르겠다. 모든 설명을 다 들은 교수님은,


학생 수학실력이 매우 훌륭하고 발표까지 잘 하는데, 어디서 그렇게 수학을 잘 배웠나?


라고 물으셨다고 한다. 여기가 하이라이트다. 이돌이는 당당하게,


저희 학원 수학선생님이 제게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이 한마디 하려고 이 긴 글을 쓴거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도 예상했겠지만, 이돌이는 자기 학교에서 이과 학생들을 모두 제치고, 혼자 그 학과에 합격했다. 이돌이가 다른 과목을 그렇게 특출나게 잘 하지 못 해서 그러한 해프닝이 없었다면, 떨어졌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면접시험장에서 한 수험생에게만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자신감이 없었다면 아마 그 기회를 살리지도 못 했을 거다. 나조차도 다른 학원 출강나갈 때 시범강의하라고 문제 풀어보라고 하면 떨리는데, 입시시험장이면 얼마나 떨렸을까. 얘기를 모두 다 듣고 나서, 그 기회를 살린 이돌이가 엄청 대단해 보였다.


이돌이는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한참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는데, 어느날 우리 점박이가 자주 가던 모 마트 키즈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 대학교 2학년 때 쯤이었던 것 같은데, 나를 보자마자,


선생님, 저 대학에서 수학 잘한다고 장학금 받고 다녀요!


했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뭐, 어쨌든 중요한 것은 바로 이거다.


내가 이돌이와 내게 시도해 봤던 교육방식이 꽤 효과가 좋았다는 것. 이것은 단순히 수학이라는 과목에서의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와 이돌이 모두 수학실력이 급성장했고, 그에 비례해 자신감도 상승했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이돌이는 좀 더 합리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자기 주체적으로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그냥 무턱대고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고민을 하면서 자기가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가.


예전에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내게 배웠던 학생의 엄마들이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편인데, 어떤 엄마들은 아이가 자신의 말에 토를 다는 것을 매우 싫어하신다고 한다. 그런 엄마들이 잔소리를 할 때, 아이가 종종


수학선생님은 내 의견을 존중하는데, 왜 엄마는 존중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어서, 엄마들이 내게 배우면 버릇이 없어진다고 생각하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갖고 주체적으로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교육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좋은 수학교육은 인생을 바꿔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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