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rishna Jul 13. 2020

수학사색_09

09. 고등학교 수학은 왜 어려운가

초등학교 수학을 6년간 잘 하고, 중학교 수학을 3년간 잘 해도, 많은 아이들이 고등학교 수학 3년 과정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많던 중학교까지의 수학 우등생은 다 어디 갔을까.


예전에도 말해 왔지만, 교육은 그 특성상 어떤 교육방법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게 되는 기간이 보통 년 단위로 걸리기 때문에 이미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잘못을 되돌리기가 무척 어렵다. 그러한 두려움 때문에 보통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인생에서 옳은 길, 실패하지 않는 길로 가길 원하신다. 뭐, 그 선택의 결과가 보통 아이들에게 더 안 좋은 결과를 넘겨주는 것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그렇다면, 왜 중학교까지 수학점수에 문제가 없었던 아이들이 왜 고등학교에 가서 무너지는가. 일단 중학교 수학에 비해서 고등학교 수학이 왜 어려운지 알아보자.


첫째, 공부할 양이 매우 많다. 중학교 3학년 동안 공부했던 내용이 고등학교 1학년 1학기에 모두 끝나버릴 정도로 많다.


둘째, 수학책에 쓰여있는 말이 너무 어렵다. 시그마나 인테그랄이라던가, 집합의 조건제시법이라던가 이런 게 섞여서 나오면, 그 기호가 무슨 말인지 해석하는데 한 챕터를 소비해야할 만큼 어렵다.


셋째, 고등학교 초반에는 중학교와 비슷한 걸 배움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난이도가 중학교보다 매우 어렵고, 문제 유형도 다양하다.


대충 이 정도다. 뭐 공부 열심히 해도 성적이 안 나온다 뭐 이런 것도 있을 수 있는데, 이건 다른 부분에서 다뤄야 할 거니까, 여기서는 생략하자.


위에서 열거한 원인들 중에서 첫번째는 사실 공부양을 늘리면 되는 거라, 어떻게 보면 큰 문제는 아니다. 물론 공부양을 늘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긴 하다. 그래서 내게 공부 잘 하는 고등학교를 갈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학생들에게 나는 보통 아래와 같이 말한다.


만약 네가 수학공부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었으면, 좋은 고등학교를 가라고 하겠는데.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네가 수학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지 않나? 지금은 고등학교에 가면 뭔가 굉장히 열심히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지만, 실제 고등학교에 가더라도 지금의 네가 고등학생이 되는 거라 갑자기 정신 차리고 공부하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그렇게 경쟁이 심한 학교에 가는 것보다 네가 고등학교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는 적당한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물론 아이들에 따라서는 경쟁해야 하는 학교를 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잠재능력이 남아있고, 성격적으로 멘탈이 강한 학생들의 경우이다. 그런 학교에 갔을 때 성장하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긴 한데,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 한 아이들은 경쟁해야 하는 학교에 가면 무너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도 첫번째 원인은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어서 어쨌든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두번째 원인이 사실 객관적으로 고등학교 수학이 어려워지는 이유이다. 중학교에서는 그래도 문자 몇개 쓰는 것으로 끝났던 문제의 기술이, 고등학교에서부터는 시그마라던가, 인테그랄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수학적인 문장이 더 압축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고등학교 수학을 잘 하려면, 먼저 수학적인 기술, 즉 수식으로 표현된 언어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첫번째 조건이다. 뭐, 이건 국어의 문제라고나 할까.


이 부분은 아이들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문제를 하나 고민하는데 오랜 시간을 주었을 때 스스로 깨닫는 경우도 있고, 처음에는 기호화된 문장을 하나하나 풀어서 상황을 설명해 주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에 따라서 편차가 좀 크긴 한데, 최종적으로 이걸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 하면 고등학교 수학을 견뎌낼 수 없다.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 수학공부를 하지 않았을 때, 문제의 상황을 설명해 주면 종종, "아,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하며 방법을 제시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수학에서 기호화되어 압축된 개념을 해석하는 능력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능력이 별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번째 원인은 현실적으로 고등학교 수학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같은 것을 배워도 고등학교 수학문제의 난이도는 중학교보다 어렵고, 문제의 유형도 중학교보다 세분화되고 많아진다. 이래서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하는 애들이 자조적으로,


이제 겨우 기는 법을 배웠는데, 날라고 한다.


라고 말하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은 열심히 하거나 반복해서 본다고 하여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게 수학을 공부해서 되는 아이들은 극히 소수이고, 평범한 아이들이 그걸 따라하다간 망하고 만다.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몇년동안 관찰한 끝에, 평범한 아이들은 대략 고등학교 1학년 말 정도에 수학을 포기하고, 끝까지 살아남는 아이들도 보통 고등학교 2학년 말 정도가 되어서 성적의 하락을 경험한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복 받은 거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나와 같은 교육방침을 갖고 있는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걔네들은 선생님이 없어도 그 성적이 나왔을 애들


이라고 하셨고, 나도 그에 동의한다. 고등학교 2학년말에 성적하락을 경험하는 이유는, 아마 그 시기에 선행학습빨이 다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충 그 시기면 다른 아이들도 모든 진도를 다 나갔기 때문에 선행학습으로 얻었던 잇점들이 없어져서 자신의 본래 실력을 내보여야 할 때니까. 그래도 선행학습을 그때까지 꾸준히 해왔던 아이들은 보통 성실하기 때문에 더 올라가진 못 해도 현상유지를 가까스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3월 성적이 수학능력시험 성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는 더 공부해도 올라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선행학습하지 않았던 아이들 중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 후반이 되어서 갑작스럽게 성적이 향상한 아이들이 꽤나 보였다. 머리가 아주 좋거나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도 아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본적인 것만 충분히 했어도 나중에는 살아남아서 자연스럽게 상위권에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신차리고 공부한 아이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성적향상이 가능했다.


뭐 공부 안 하는 아이들은 끝까지 공부 안 하긴 하지만. 하아...


물론 고등학교 1학년, 2학년은 못 하지 않았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열심히 죽도록 해도 마지막에 망하는 것보다는 편하게 가서 마지막에 성공하는 것이 낫지 않나? 나는 신이 아니라서, 능력도 바탕도 안 되는데 부작용 없이 갑작스럽게 아이들을 잘 하게 만드는 방법은 잘 모르니까.

작가의 이전글 사이드 스토리_0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