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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Jun 24. 2020

수학 사색_08

08.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맥

나는 예전에 핸드폰으로 참 많은 게임을 했다. 초기에는 나름 아기자기하게 아케이드 게임 같은 것이 많이 나와서 재밌게 즐겼던 편이었는데, 언젠가부터 핸드폰 게임은 시간이 되면 하트 찍어서 하는 게임이 대부분이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타이니 팜> 이었는데 아직도 있을래나.


나는 이 게임에 좀 뒤늦게 뛰어든 편이었는데, 정말 하루 24시간을 그 게임에 썼다. 시간이 다 되서 하트가 남아도는 꼴을 못 봤던 나는 정말 그 게임의 노예처럼 살았었는데. 자기 전에 3시간 짜리 하나 키워놓고 아침에 일어나면 비몽사몽간에 그거 수확하고 다시 하트 눌러놓고 자는 꼴을 옆에서 본 와이프가 내게,


정말 병신 같다


라고 얘기했던 쓰라린 추억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봐도 좀 그랬다.


그 뒤로 그런 류의 게임을 몇번 더 스쳐보낸 후에, 나는 더이상 그런 류의 게임을 하지 않는다. 우선 하루종일 핸드폰의 노예로 사는 것 자체가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 되었고, 게임은 플레이 스테이션으로 딱 정해진 시간만 하고 끝낸다. 누가 알았을까. 나이를 먹으면 게임하는 것도 노동이 된다는 걸.


그러나 최근에 <라라 크로포트 고> 라는 핸드폰 게임이 무료로 풀렸다고 해서 한번 받아 봤는데, 이건 퍼즐게임이다. 참고로 얘기하자면, 라라 크로포트는 게임 <툼레이더> 시리즈의 주인공이며, 툼레이더 리부트 시리즈를 감명깊게 했던 나로서는 이 게임에 뭐라 말할 수 없는 호감이 가버려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게임을 시작해 버렸다. 게임 구성은 맵상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라라 크로포트를 움직여서 맵을 탐험하는 건데,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새로운 규칙이 추가되는데 하다보니까 좀 어렵다!


이 게임을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이 하나 있는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문맥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물론 어떤 경우는 대충 머리 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한두번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나는 같은 실수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렇게 이렇게 지나갔더니 죽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이렇게 저렇게 지나가 보자. 이런 식으로 다양한 경우를 실험해 본다.


그렇게 수십번을 죽다보면, 이 퍼즐에서 무엇이 가장 장애물이고, 이것이 어떤 식으로 나를 괴롭히는지 그 퍼즐의 문맥을 읽게 된다. 그러면 그 장애물을 어떤 식으로 피해갈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처음 시도할 때는 그 문맥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수없는 실패를 통해서만이 그 문맥을 읽을 수 있다.




수학문제를 푸는 것도 이와 같다. 고등학교 수학 모의고사 문제들 중에 어려운 문제들을 풀려고 읽어보다 보면,


대체 이게 뭘 어쩌라는 거야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문제들이 있다. 나는 수학에 재능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을 샤샤삭 하고 바로 풀지 못 한다. 처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상황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것 밖에 없다. 숫자도 대입해 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하다보면 대충 연습장을 몇장이나 사용한다.


그렇게 수없이 문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사실 그 이해의 과정이 나의 실패의 과정이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문제의 문맥이 보이게 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복잡한 상황을 잘 나누어서 이해하기 쉽게 보아야 할지, 아니면 계산능력이 엄청나게 필요하다던지, 뭐 이런 거 말이다.


문제의 문맥이 보인 후부터 수학적인 고민이 시작된다. 이걸 해결하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하지? 뭐 이런 거 말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수학적인 재능이 있는 편이 아니라 생각나는 방법은 다 써보고, 그 중에 혹시 걸리는 거 없나 하는 정도에서 고민한다. 어쨌든 그 수학적인 고민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답답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편이라 나도 옛날에는 그냥 답을 보고 끝냈었다. 그렇게 답을 확인할 때마다 내가 느낀 것은,


아썅. 아까 조그만 더 했으면 되는 거였는데.


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것도 몇번 겪으니까 하나의 현상으로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그 이름은 바로,


수학에서의 한끝차이


라는 거다. 한동안 이 한끝차이는 내게 마의 벽과 같았다. 항상 나는 한끝 바로 전에서 멈춰서 포기했었다. 이 한끝을 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수학적인 성취도가 다르다. 아무런 도움이 없이 그 한끝을 넘어본 사람만이 수학을 잘 할 수 있다. 선생님이나 답지의 도움으로 문제의 해법을 배우고,


아하 이런 거구나


라고 공부한 사람들은 나중에 비슷한 문제를 줘도 결국 그 한끝 앞에서 주저앉게 된다.


물론 현실적으로 답지를 안 보고, 혹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수학을 공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내가 취한 방법은, 고민해도 안 풀렸던 문제는 답지를 확인하고 제대로 개념을 정리한 다음에 문제 번호 앞에 엑스표를 친다. 그리고 한동안 묻어두고 완벽하게 머리 속에서 그 풀이를 잊어버린 후에 다시 도전을 한다.


만약 그 기간 동안 수학적인 성장이 없다면, 아마 이전 시도와 거의 비슷한 시도를 해보고 비슷한 시점에서 포기하게 된다. 사실 나는 몇번 정도 이 두번째 시도에서도 결국 한끝차이를 못 넘고 포기하고 답을 봤는데, 답을 보면 항상


아, 이렇게 풀었지


하며 후회했다. 그래서 내가 그래도 그때보다는 성장했다는 하나의 표시로, 그 문제를 풀 수 없더라도 예전과는 다른 시도를 하려고 노력했다.


아니, 그래봐야 결국 못 푸는 건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더 나아졌다는 하나의 증거이고, 비록 이 문제에서는 그 시도가 먹히지 않았을지라도 다른 문제에서는 그 발상을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것이 결코 헛수고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이유로 수학공부를 할 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모범답안의 간결함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의 문맥을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모범답안의 풀이만을 쫓는다면 그 문제에서 얻을 수 있는 30%도 제대로 얻지 못 한다. 그 문맥을 파악하려 하는 시도에서 나머지 70%를 얻을 수 있다.


어떻게 푸느냐가 아니라 왜 그렇게 푸느냐


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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