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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Apr 06. 2020

수학 사색_03

03.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

내가 수학을 공부한 기억이 맨 처음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구구단을 외워야 할 때였다.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외워야 했는데, 못 외우면 나의 아버지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셔서 열심히 외웠다. 기한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못 외워서 어떻게 하지 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에 아버지는 한 3개월 정도 집에 안 들어오셔서 그냥 넘어갔던 기억이다. 이 기억을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곱씹어 보자면, 그 당시 나는 곱셈의 의미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 분수의 곱셈 파트를 배울 때 였던 것 같다. 그 이전에는 사칙연산을 배우는 것이 대부분이라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못 하였는데, 처음으로 수학이 이해가 안 가기 시작했다. 대충 이런 문제였던 것 같다.

분수의 곱셈문제 예시

그 당시 저 식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수라는 것의 의미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저게 왜 2 가 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공부를 하려고 그 당시의 자습서였던 동아전과인가를 펴봤더니, 6과 3을 짝대기로 슥슥 긋고 6 위에다가 작게 2 를 써넣었는데 그게 답이라는 것 아닌가. 그래서 잘 생각해 봤더니 그 때 외운 구구단에서 3 곱하기 2가 6이라서 2를 썼구나! 라는 번개 같은 깨달음을 얻고, 다른 문제들도 그렇게 풀었더니 다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내가 천재인 줄 알았다.


물론 아무런 가르침 없이 그러한 규칙을 발견해 내는 것이 머리가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풀이는 수학적인 개념과는 아무 관계없이 그냥 풀이 자체를 외우는 것에 가깝다. 아이들을 가르쳐 보면, 실제로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이기도 하다. 그 풀이에 숨어있는 규칙성을 빨리 파악하고, 문제풀이에 적용하여 좋은 점수를 맞는 아이들 말이다. 뭐, 내가 그랬고, 조금 수학을 잘 한다 싶은 내 연배의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풀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것이 처음으로 발목을 잡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내 앞자리에 여자아이 두명이 앉아있었는데, 글쎄 얘네들이 수학문제를 나보다 잘 푸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말 하기 좀 부끄럽지만 나름 우등생이었는데, 내가 이해도 못 하는 것을 이 두 아이가 푸는 것을 보고 솔직하게 우와 굉장하다 라고 느꼈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 내 머리 속에 든 생각은,


얘네들 뭔데 이렇게 수학을 잘 해.


바로 이거였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초등학교 시절엔 수학, 아니 그때는 산수였던가, 을 전혀 이해하지 못 했었다. 타고난 머리를 이용하여 계산하는 방식만 수업시간에 대충 파악하고 문제를 풀면 다 맞았으니까, 난 수학이라는 학문에 그 이상 뭐가 있는지에 대해 관심도 없었다. 관심 갖는 것도 정상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중학교 1학년 때 한번의 깨달음을 통해 수학을 어느 정도 제대로 공부하긴 했지만, 그 사이사이에 자잘한 개념들은 그 당시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그냥 암기하고 넘어갔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난 몇년전에야 저 말의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아마 일본식 수학의 잔재라고 생각은 하는데, 저걸 그냥 외우는 것보다는 저게 무슨 의미이고, 왜 저렇게 되는지를 알려줘야 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저것을 외우기만 해도 문제를 푸는 데에는 지장이 없긴 하겠지만, 뭐. 그런데 이게 나만 그랬을까.




어느 날, 내가 애정하는 고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 통계의 확률변수의 평균과 분산을 가르쳐본 적이 있었다. 매우 특별한 학생이었는데, 내가 확률변수의 평균과 분산을 가르치는 설명을 듣고 딱 한마디 했다.


선생님, 평균과 분산을 구하는 법은 알겠는데,
그 계산한 값이 뭘 의미하는 거에요?


와, 난 정말 그때 망치로 뒷통수를 한대 맞은 줄 알았다. 난 평생 확률변수의 평균과 분산을 구하는 계산만 열심히 했지, 그 계산한 값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마 선생님으로서 좀 덜 쪽팔리기 위해서는,


거참 쓸데없는 것에 관심 갖네.
네가 그러니까 수학을 못 하는 거지.
계산이나 똑바로 해.


라고 무안을 좀 주고 지나가는 방법도 있었으리라. 참으로 다행인 것은 그 학생과 나는 좀 친해서 서로 볼 꼴 못 볼 꼴을 다 본 사이라, 나는 좀 뻔뻔하게도,


헉, 정말이네.
그게 뭘 의미하는 거지?


라고 말하며 둘이서 같이 그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열심히 파고 들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발견한 논리들이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통계를 가르칠 때 기반이 되는 지식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위에서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그냥 외웠던 지식들의 예시를 주욱 들었다. 그 이유는, 가르치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조차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가르치는 경력이 길어질수록 가르치는 사람은 그것이 경험에 의해서 그냥 푸는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푸는지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무엇을 모르는지 제대로 아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이었다. 내가 문제를 푸느라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여왔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처음 배우는 학생들은 의문을 갖는다. 심지어 이런 예시도 있었다. 수학에서는 분배법칙이라는 것이 있어서, 아래와 같은 경우가 성립한다.



그런데, 한 학생이 함수를 배우면서, 내게 왜 아래와 같이 안 되냐고 따졌다. 분명히 지금까지는 괄호가 있으면 위에처럼 했는데, 왜 아래의 것은 안 되냐고.



난, 정말 참신하게 놀랐다.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사실들이, 이제 막 배우는 학생에게는 저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구나. 그리고 심지어 일리도 있었다. 내가 가르쳤던 걸 제대로 열심히 해왔던 결과라 혼낼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왜 이 아이가 자꾸 틀릴까 생각했었는데, 아이의 설명을 30분간 들어보니까 결국 저걸 혼동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쿠쿵! 아이가 문제를 풀면서 답답해 하는 것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나 역시 저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라 오히려 질문 받으면 에엥? 이런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처음 저것을 배웠을 때는 어땠을까.


내가 중학교 1학년의 배우는 입장이라고 나 자신을 상상해 봤을 때, 저 질문은 매우 타당하다고 느꼈다. 이미 다 아는 지금의 나로서는 저게 어이가 없는 질문이라고 느껴지지만, 중학교 1학년의 나였다면, 저 질문은 어떻게 보면 반드시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15년 이상 가르치면서 그 학생 외에는 저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계산에서 분배법칙을 열심히 한 학생이라면, 함수에서의 저 표현을 봤을 때 혼동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이 말은, 우리가 수학적인 지식을 받아들일 때 너무나 수동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안다고 착각하는 것.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가 그렇지 않은지를 점검해 가며 가르쳐야 하고, 아이가 하는 정말 허접한 질문들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 아이들은 정말로, 자신의 스승이 될 수 있는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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