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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Jul 22. 2020

수학 사색_10

10. 수학교재에 대해서.

세계최강의 무술은 무엇인가?


무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와 같은 질문을 한번쯤은 접할 것이다. 모 일본 만화책에서 천년의 역사 동안 무패를 자랑하는 <무츠 원명류>라던가, 아니면 일자상전의 <북두신권>이라던가, 아니면 일본의 전국시대를 헤쳐나온 신속의 검술 <비천어검류>라던가, 중국의 권사 이서문의 <팔극권> 등등, 서브컬쳐에서 종종 나오는 이런 소재는 그런 질문에 대한 판타지가 아닐까. 저런 만화책을 읽다보면, 정말 그 무술을 익히면 세계최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느낌도 들지만.


하지만, 무술을 어느 정도 수련해 본 사람이라면, 위의 질문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질문인지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태권도를 1년 배운 유치원생이 있고, 무술을 전혀 모르는 대학생이 겨룬다고 했을 때, 과연 태권도를 배운 유치원생이 무술을 전혀 모르는 대학생을 이길 수 있을까.


원래 중국의 쿵푸(Kung-fu) 라고 하는 것은 공부(工夫)라고 하는 것으로 "꾸준한 연습을 통해 기술을 몸에 익혀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즉, 어떤 무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무술에 담긴 철학을 이해하고, 그 무술에 나오는 기술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 오랜 세월 동작을 반복하고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무술을 수련한다는 것이 그런 것이기에, 무협지에 나오는 비급을 보고 절정고수가 된다는 것은 사실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무협지에서 주인공은 절벽에서 떨어지면 보통 죽지도 않고 꼭 하나씩 사라졌던 무공비급을 발견하여 절정고수가 되는 기연(奇緣, 기이한 인연)을 얻게 되는 스토리가 많다. 싸구려 무협지 뿐만 아니라 정통무협이라고 불리우는 김용의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의 주인공인 장무기도 절벽에서 떨어져서 우연히 달마조사의 구양진경을 익혀 절세의 고수가 되는 걸 보면, 뭐 이런 것도 하나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을까.




아, 그런데 이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라, 이런 수학을 공부하는 아이들도 이런 비슷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어떤 수학교재가 좋아요?


라던가,


어떤 인강이 좋아요?


라던가 같은 질문들 말이다.


일단 개인적인 변명을 해보자면, 내가 수학을 가르친지 15년이 넘어가지만, 시중에 나와있는 문제집을 한권이라도 다 풀어본 적은 없다. 뭐, 어떤 선생님은 문제집 한권을 세번 정도 공부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말도 있었는데, 일단 나는 교재를 정하지 않고 가르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수업을 준비해서는 진행 자체가 되지 않는다.


지난 세월 동안 내가 반 이상 풀어본 문제집은,


고등학교 때 풀었던 실력정석

개념원리 기본서, 개념원리 RPM

신사고 쎈수학


정도일까? 워낙 유명한 문제집이라 실명을 그대로 언급해도 되겠지, 뭐. 일단 저 출판사들에게 십원 한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밝힌다. 절대 PPL 이 아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인 선생님들이 모두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애들이 질문하는 문제들을 통해서 수준유지를 하는 정도이다. 아마 아이들이 푼 문제집의 권수가 나보다 많지 않을까? 잘 나가는 학원에서 온 아이들의 공부량을 물어보니, 대충 한 학기에 문제집 세권 정도는 푼다고 하는 걸 보면 확실히 나보다는 많이 풀었을 것 같다.


애들이 갖고 온 문제집을 대충 훑어보면, 모든 문제집이 대충 80% 정도는 공통적인 유형을 다루고, 나머지 20% 정도는 조금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비율도 조금 후하게 준 건데, 조금 과하게 보면 95% 이상은 공통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말은, 문제집은 한권, 많아야 두권 정도 풀면 거의 모든 유형을 다 커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즉, 어떤 문제집이 좋아요 라는 질문은 방향성이 틀렸다는 말이다. 어떤 특정한 문제집을 풀어서 실력이 반드시 상승할 수 있다면, 사실 무엇이 고민이겠나. 그냥 그거 한권 알아내서 열심히 풀고 실력 상승하면 되지. 그런데 실제로는 추천받은 문제집 풀어도 별로 실력이 늘지는 않더라.


보통 나는 문제집을 선택할 때, 아이들 스스로 서점에 가서 직접 보고 고르길 원한다. 그 이유는, 어차피 대부분의 문제집들이 80% 이상 비슷하고, 문제집을 사서 혼자 공부할 것이 아니라 개념은 어차피 내가 가르칠 것이니까. 그러면 아이들이 자기가 직접 보고 심리적으로 풀 수 있을 것 같은, 혹은 책의 디자인이 기분 좋은, 그런 느낌으로 책을 골라온다.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는데, 직접 고른다는 행위에서 아이에게 주도권을 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물론 실제로 그 교재로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의 수준에 비해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려운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엔 다시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쉬운 교재로 공부하는 것이 좋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가 "이래도 되나" 싶어하기 때문에 결국 적정수준의 교재를 선택하게 되더라.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수학교재를 고를 때는 학생 스스로에게 선택을 맡겨보는 것이 제일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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