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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Sep 02. 2020

수학사색_12

12. 수학문제집을 푸는 방법에 대해

결혼하기 전까지의 남녀의 사귐은 사랑스러운 것들로 색칠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평소보다 더 잘 씻거나, 잘 꾸미거나, 상대가 좋아할만한 행동을 하거나. 뭐 연애란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상대를 위해 나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가장 훌륭한 부분일 거다.


하지만 결혼하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꾸밈은 점점 사라지고,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서로 방귀를 튼다던가,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보여준다던가, 서로 입냄새를 맡고 얼굴을 찡그린다던가.


그러니까 이런 말이다.


연애를 하던 시절엔 그 사람과 같이 있던 시간 동안만 자신을 꾸미면 괜찮았는데, 결혼을 하게 되면 그렇게 자신을 꾸며야만 하는 시간이 몇배로 늘어난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배우자 안에 숨겨져 있던, 내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들이 생활 위로 부상하게 된다는 것. 그것은 결혼 초기에서 모든 부부가 거쳐가야만 하는 통과의례이다.


그리고 그 괴리가 심한 경우는, 깨닫게 된다.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부분을 참을 수 없다면 결국 헤어지게 된다는 것.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 커플은 반드시 상대의 바닥까지 볼 수 있어야만 한다. 좋았던 부분만을 보고 그 상대와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니까.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혹시 제목을 잘못 보고 들어온 것이 아닌가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의 제목은 수학문제집을 푸는 방법에 대한 글이니까. 결코 제목으로 사기치려고 한 건 아니다. 수학 문제집을 풀 때도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지니까.


보통 아이들이 수학문제를 풀 때, 조금 고민해 보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거나 못 풀겠으면 질문을 하거나 답을 본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모범적인 풀이를 공부하게 되지 않는가. 그리고 그것을 반복해서 숙달한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이거다.


모범적인 풀이


모범적인 풀이는 사실 답지 형태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깔끔한 풀이인 경우가 많다. 그 말은 모범적인 풀이에는 고민의 흔적이 없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어려운 문제를 질문했을 때, 나라고 하여 깔끔하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는 "이게 뭔 소리야" 하고 문제를 분석하는데에만 A4 용지 10장 이상을 소비해 가며 고민한다. 그렇게 고민하고 겨우겨우 문제를 푼 다음에, 아이들에게 설명해 줄 때는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해서 설명을 한다.


물론 아이들에게 내가 고민했던 흔적들, 실패했던 흔적들, 실패했던 시도들을 최대한 전달하지만, 그래도 결국 정리된 형태로 아이들이 받아들이게 되면, 아이들은 내가 했던 그 치열한 고민들의 대부분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 어떤 공간도형 문제를 풀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잘 모르겠어서 어쩔 수 없이 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답을 봐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나와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흘 동안 그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풀고야 말았다. 그리고 다시 답지를 봤더니, 내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것처럼 단순하게 설명되었고 계산 부분만 답지에 나와있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아니, 이 문제에서 이 전반부가 가장 중요하지 않나? 이걸 이렇게 써넣으면 애들이 과연 이 설명을 보고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가?


동시에, 또 깨달았다.


이걸 답지로 설명할 수 있나? 공간을 이렇게 저렇게 하는 걸 어떻게 답지로 설명하지? 이건 공간을 상상할 수 있어야만 되는데, 이걸 글로 설명할 수 있나?


이렇듯 여러가지 이유로, 모범적인 풀이는 많은 부분이 생략된다.


내가 보통 어떤 문제를 풀 때, 나는 정말 벼라별 시도를 다 해본다. 남들이 보기에,


아니 수학 선생님이 이런 풀이를 시도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어설픈 시도도 많이 한다. 그런 내가 보기에 그 문제를 온전하게 구석구석까지 뽑아낼 수 있는 것이 100% 라면, 모범적인 풀이는 30% 도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그 나머지 70% 는 제대로 된 풀이도 아닐 것이고, 어떤 경우엔 실패로 돌아갈 시도도 많겠지만, 그 실패를 해보는 것과 해보지 않고 깔끔하게 모범적인 풀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이의 성장에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


모범적인 풀이에 포함되지 않는 70%를 경험한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풀어야만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풀면 안 되는가


를 배우게 된다. 그것은 엄청난 계산 노가다를 하다가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경험일 수도 있으며, 논리에 맞지 않는 방법을 시도하다가 실패로 돌아간 경험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쌓인 끝에, 아이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최적의 시도를 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저번에 계산이 지긋지긋해 졌지. 하지 말아야 겠다.
이걸 미지수를 이렇게 놓으면, 식이 더 복잡해 졌지. 하지 말아야 겠다.


같은 식으로 말이다. 즉, 모범적인 풀이에 나오지 않은 70% 의 실패를 겪어야만 아이는 미지의 상황에서 최적의 시도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시도를 통해서 아이는 수학문제를 보는 눈을 갖는다. 한마디로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한다는 말이다. 나는 보통 견적이라고 표현하지만.


뭐, 연애할 때도 상대에게 연인으로서의 모범적인 모습만 보이거나, 상대의 모범적인 모습만 본다면, 그 상대의 다크사이드(Dark Side)에 대처하는 연습을 할 수 없다. 상대의 다크사이드에 대처할 수 있는 연습을 해야 결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택도 없는 것을 엮어서 죄송함을 금할 길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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