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를 들으면서는 온갖 생각이 떠오르고,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공연장을 나오니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그중 몇 가지만 적어본다.
1.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솔리스트 최예은
음향 상태로 둘 째라면(물론 뒤에서) 서러운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런 소리를 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명료하고 아름다웠으며, 또한 자신만의 소리였다. 활을 키는 손과 팔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 움직이던지. 끝나고 기다려서 사인받았다. CD가 매진이라 리플릿에 받은 게 죄송할 따름.
2.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생긴 것도 그렇고 두상(이라고 쓰고 민머리라고 읽는다)도 그렇고 <위플래쉬>의 플레쳐 교수(J. K. 시몬스 분)와 판박이다. 뒷모습은 더욱더 그러해서 연주 내내 플레쳐 교수가 지휘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난 또 내가 지금 카네기 홀에 있는 줄 알았지.
3.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우리나라에서, 좀 더 넓게는 아시아에서 이만한 브루크너를 들려줄 수 있는 교향악단이 몇이나 될까? 지역적으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혹은 다른 연주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오늘 연주는 정말 대단했다.(세종문화회관의 음향 상태를 고려한다면 더더욱)
개인적으로 정명훈 감독을 떠나보내는 송가로서, 그리고 서울시향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울림으로서 더 할 나위 없는 곡, 그리고 연주였다.
4. 정명훈과 서울시향
12월의 마지막 날을 며칠 앞두고 정명훈 전 감독의 재계약 불발과 출국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이 걱정했고 또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라고 쓰고 기레기라고 읽는)라는 분들의 기사는 사실 보도가 아니라 폄하, 비난, 아니꼬움으로 가득했고, 이러한 기사로 도배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뉴스 댓글란은 미끼를 문 물고기로 가득했다.(이 사태를 보며 네이버와 다음을 위시한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 서비스를 중단하든 뉴스 댓글란을 없애든 둘 중 하나는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물론 절대로 그럴 리 없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혹자는 서울시향을 가라앉는 배에 비유하기도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풍랑을 만난 배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정명훈 전 감독은 키를 버리고 도망간 선장이었다.
그러나 오늘 연주를 들은 사람은 알 수 있을 테다. 서울시향이라는 집단 혹은 단체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들의 음악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보란 듯이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5. 또 다른 서울시향
어찌 되었든 서울시향에 새로운 지휘자, 새로운 예술감독이 필요하다. 오늘 연주를 통해 서울시향은 자신들에게 에센바흐 같은 훌륭한 지휘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니, 좀 더 적확히 말한다면 서울시향 스스로가 에센바흐 같은 훌륭한 지휘자가 아니라면 어울리지 않는,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그리고 아마 그것은 온전히 정명훈과 서울시향 스스로가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누가 정명훈 전 감독의 뒤를 이을지, 세계 지휘자 시장에서 누가 적 없이 이 돌아가고 있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다만 지난해 7월 서울시향과 함께 봄의 제전을 지휘했던 알렉상드르 블로슈가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