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아들이 매일 아침 눈뜨면 나에게 하는 말

어린이집과 회사는 원래 가기 싫은 곳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by 나다움

에픽테토스는 <엥케이리디온>의 첫 구절에서 통제의 이분법에 대해 설명한다.


어떤 것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있고, 어떤 것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의견, 동기, 욕구, 반감 등 우리 자신이 하는 것들입니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몸, 재산, 평판, 직장 등 우리 자신이 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현대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는 우리가 숙고해서 내리는 판단, 우리가 지지하는 견해나 가치관, 그리고 행동하거나 행동하지 않겠다는 결심만이 우리의 통제 범위내에 있다는 관념으로 환원된다. 다른 것들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의 정신세계 조차 통제 범위에서 벗어나있다. 현대 인지과학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세계는 저절로 움직인다.


- 가장 단호한 행복(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간절한 철학 연습), 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엄마, 오늘 주말이야?"

우리 둘째 아들은 눈 뜨자마자 오늘이 주말인지를 확인한다. 내가 아쉬운 표정 가득 담아 '아니야.'라고 말하면 세상 잃은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쉰다. 재차 확인한다.

"그럼, 어린이집은 가?"

아들이 원하는 대답은 알지만, 할 수가 없다. 아들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어린이집 가기 싫어!"


매일 반복되는 아들의 물음에 사실은 나도 같은 마음이다. 매일이 주말이라서, 아들도 어린이집 안 가고 나도 회사에 못 가면 좋겠다고.

사회생활은 녹녹지 않다. 5살도 해서 예외는 아닌가 보다.

평소보다 길고 한층 큰 아들의 울음에 나는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묻는다. 그러자 당연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툭 내뱉는다.

"애들 때문에."

또 다시 동병상련, 이심전심, 염화미소의 순간이다.

바쁜 아침에 5세 아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너도? 엄마도. 엄마도 회사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오늘 회사 가기 싫다. 우리, 바꿔서 갈래? 엄마가 어린이집 갈게, 네가 회사 가주라. 어때?"


산더미 같은 일과 약육강식의 회사 속 사람들 얘기를 한참 늘어놓고 있으면, 아들은 조용히 어린이집 가방을 챙긴다. 그렇게 설득해서 아들은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늘도 나는 회사로 향한다.


익숙했던 업무와 친숙했던 직장동료들과 헤어져서,

평생 익숙해질 것 같지 않는 일과 낯선 직장 사람들과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때였다.

촌철살인 언중유골 유머센스 보유자인 동료와 메신저로 고충을 털어놓을 때였다.

"나, 요새 회사 오기 너무 싫다. 어쩌지?"

"몰랐어요? 원래 회사는 가기 싫은 게 정상. 지극히 정상이세요."

순간 머리가 띵 해지는 느낌이었다. 쉬운 길을 두고 한참을 삥 돌아온 기분이었다.

면접 준비할 때나 써먹었던 자아 성취, 역량 발휘, 자기 계발, 사회 기여 등은 살포시 버린다.

"회사=가기 싫은 곳=월급이 마약=어쩔 수 없이 간다=남의 돈 받기 쉽지 않아"를 기본값으로 설정한다.

고통스러운 기본값을 수용한다.

대신 그 사이사이 일어나는 기쁨들을 놓치지 않기로 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과장님이 돌연 연차로 오늘 안 나오신다는 얘기에 마음의 평화가 깃든다.

마음이 맞는 동료와 함께 점심시간에 찾은 브런치 맛집은 미각세포를 비롯한 나의 오감을 깨운다.

회사에서 열폭한 날 선배가 사주는 맥주 한잔은 나보다 이 고통을 먼저 겪은 자의 따듯한 위로가 담겨있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판단, 견해, 결심에만 집중하되,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직장, 평판, 신체 등은 놓아준다.



지금의 상태를 인정하기로 '결심'한다. 인정은 하되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아들이 어린이집은 원래 가기 싫은 곳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되 막상 가면 모래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오듯,

나도 이제 회사는 당연히 안 가고 싶은 곳이지만, 그곳에서의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며 버텨내고 돌아온다.

내 통제 범위 밖의 '직장'은 내가 노력할수는 있으나, 궁극적으로 외부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상기한다.



그곳은 고난, 고통, 모험, 모함이 가득하며,

그것을 견뎌낸 대가로 마약 같은 월급이 매달 나온다.(다음 달에도 잘 버티라고 미끼를 건넨다.)

이번에는 '그곳',

직장에서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덧.

요즘엔 직장에서 예상 밖의 이벤트(?)가 벌어지면, 이렇게 말한다.

"어? 이거 브런치 제목으로 쓰면 딱인데?"

하며 조용히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노트에 끄적여놓는다.

그렇게 나의 브런치에는 글감이 늘어간다. 하하.


잊지 말자,

회사는 나의 가치를 발견해 주는 곳이 아니다.

직장은 나의 노동의 대가를 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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