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고 덤볐을 때 간단해 보이고, 이 정도면 할 수 있을지 않을까 해서 막연히 시작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그런 일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실제로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수많은 단계를 거치는 구체적으로 복잡함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것도 그러한 과정이었습니다.
써놓은 글이 있으니, 책으로 인쇄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겁 없이 덤볐습니다. 기존의 원고 퇴고, 구성 및 콘셉트를 더 구체화하여 새로운 글을 추가, 목차 수정, 표지 및 내지 디자인 선정, 책의 날개에 들어가는 작가 소개, 책 뒷면에 인쇄될 추천의 말, 인터넷 서점 등에 홍보할 책 소개글, 출판사 유튜브에 올릴 책 소개글까지 끊임없는 생산과 선택의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저 혼자라면 중도 포기할 정도로 수많은 단계가 있었는데, 그 과정을 함께해준 출판사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이 자리를 빌려 전합니다.
책에 저자 사인을 받을 때 작가님들마다 자신만의 문구를 하나씩 써주십니다.
책도 좋지만, 그 한 구절에 더 마음이 오래 머물 때가 있습니다.
그 뭉근한 기억을 떠올리며, 저 역시 제 사인 옆에 한 줄을 적는다면 무엇을 할까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게 "지금, 여기, 이미 온전한 나"입니다.
사실, 어제도 심리상담을 하면서 이제는 극복했다고 여겼던 지난 상흔이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나고,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여전히 제 안에 살아 숨 쉬며 뜻하지 않는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사건과 사람과 장소 및 시간은 다양하지만, 갈등의 근원이 내 마음속에 찌꺼기처럼 남은 것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며, 한편으로 좌절합니다. 심리상담의 효과로 이제 좀 나아졌다고 고백(?)하는 책까지 출간을 앞두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심리상담 선생님이 그러십니다.
"나다움님은 뭐든 똑 부러지게, 딱 떨어지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 덕에 이렇게 많은 것을 이루기도 했고요. 하지만 감정은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어요. 왜 이렇게 슬픈지, 어떻게 하면 말끔히 이 묵은 감정들을 털어버릴 수 있을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야 하는지 또는 어떤 노력을 해야 말끔하게 치유될 수 있는 건지 등등 자꾸 분석하고 이유를 찾고 노력하며 완성 아니면 미완, 둘 중 하나로 규정하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그냥 그 감정을 바라봐주세요. 이유를 붙이지도 설명도 말고, 판단하지 않고 그저 물끄러미 감정을 바라봐주세요."
돌아보면, 이미 나에게 일어난 일인데 그것이 없었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새까맣게 탄 냄비에 눌어붙은 까만 것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거할 수 있다지만, 옅게 남은 그을린 자국까지 완벽히 없앨수는 없기 때문이죠. 설사 그을린 자국이 남은 냄비라 해도, 음식을 조리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요. 저는 어쩌면 새로 산 것 같은 냄비가 되고 싶었나 봅니다, 심리상담 등의 과정을 통해서요. 그리고 심리상담의 과정을 담은 책의 출간을 앞둔 지금, 그을림마저 완벽하게 없앤 반짝반짝한 냄비가 되어야 한다고 나를 다그쳤던 듯합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나 자신에게 하는 말로, 저자 사인 옆에 한 문장은 "지금, 여기, 이미 온전한 나"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수많은 과정과 시간을 거쳐서 과거보다 조금 더 편안해졌지만, 상처가 없었던 상태로 도달하지 못하면 실패로 규정하는 틀 안에 있는 한, 저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과거의 어느 지점이나 미래의 어느 날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존재 자체로 온전한 나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보리라 다짐합니다.
동시에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수많은 생각, 행동, 노력 끝에 내가 목표로 하는 어느 지점에 닿기를 간절히 원할 수 있습니다. 그 목표가 달성되든 안되든, "지금 여기에, 이미 온전한 당신"이기에 결과에 상관없이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며, 따뜻한 마음을 담아 응원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출판사대표님이 보면 깜짝 놀라시겠지만, )네. 그렇습니다. 저는 아직도 심리상담을 받으며, 여전히 같은 곳에서 넘어지며 처음처럼 아파합니다. 숱한 마음공부와 경험에도 아픔을 느끼지만, 이미 지금 여기에는 온전한 나 자신이 있음을 잊지 않는 한, 내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지는 그 막연한 일에 계속 겁 없이 도전할 겁니다.
많은 분들이 저의 이 시행착오를 보고 조금은 더 빠른 길로 가시길 바라며, 소심하게 출판소식 전하는 것을 마무리합니다. 부디 많은 분들께 저의 간절한 응원이 닿기를 바랍니다.(제 응원은 제 책에 특별히 듬뿍 담았습니다. 출판사 대표님, 보고계시죠? 저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