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약물 치료(경두개 자기 자극술)를 받다
분명히 우울은 뇌에 흔적을 남깁니다. 그러나 그 흔적은 언젠가는 어떻게든 옅어집니다. 굳이 흔적을 의식하면서 나의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마세요. 행동이나 일, 또는 어떤 대상이 내 삶의 의며여선 안됩니다.
그냥 하루하루 수습하면서 살다가 문득 내가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들이 잦아지고 그 이후에 남에게 기여도 좀 하고. 시간이 지나 그렇게 쌓인 일상이 의미라면 의미겠지요.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허지원 -
평소의 나는 심각한 선택 장애가 있는 고민형 인간이다.
회사에서 식사메뉴 선택 시 타인과 나의 취향, 가성비 및 가심비, 식사 시간과 잔여 점심시간 등등 수많은 생각을 거쳐 결국에는 소심하게 "아무거나"라고 말한다.
쇼핑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저귀를 사더라도 가격비교 사이트를 거쳐, 쿠폰을 다운로드하고 , 할인카드를 찾고 배송비를 포함하여 최저가를 찾아야지만 개운하다.
그런 내가 생애 최초로 1초 만에 의사결정을 하고 약 100만 원을 일시불 카드를 긁은 사건이 있었다.
정신의학과에 첫 방문에, 비약물치료비용으로 완납한 것이다.
평소의 나 같으면 의사 선생님의 추천이 있었다 하더라도 우선 그 비약물치료에 대한 효과, 비용, 후기 등을 꼼꼼히 읽어보고 주변 병원과 내원한 병원을 비교해 치료받을 병원을 선택한 후 종합 분석하여 최종 치료 여부를 결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비약물치료, 우선 15회를 선결제하실 건가요?"란 물음에 바로 카드를 내밀었다.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고민조차 할 여력이 없었다.
절박했다. 그렇게 그다음 날부터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이 치료는 매일 받는 게 제일 좋다고 했다. 마치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울 때 한 달에 한번 연습하는 것보다 조금씩 매일 꾸준히 연습하는 게 몸에 익히는 게 도움이 되듯이 말이다. 병원에서는 주 3회 이상 치료받기를 권장했다. 업무와 육아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했기에 퇴근 후에는 병원에 매일 규칙적으로 가는 게 힘들어서, 고정적으로 갈 수 있는 점심시간을 택했다.
내가 받은 치료는 "경두개 자기 자극술(TMS: T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였다.
화학적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비약물 생물학적 치료로 코일을 통해 생성된 자기장으로 뇌를 자극하는 치료다.
FDA 승인을 받았으며, 실제로 우울증에 90% 효과를 보았다는 연구결과도 있을 만큼 검증되었으면서
부작용은 적은 치료라고 알려져 있다.(관련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00408042800009?input=1195m)
여기까지는 객관적인 사실이고, 비약물치료에 관한 나의 선입견은 하얀 병실의 침대에 손발이 묶이고 전기자극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주저하는 모습이 보이자 의사 선생님은 간단히 직접 체험해보며 설명을 해주시겠다며 치료실로 이동을 권했다.
치료실은 조그만 방에 편안해 보이는 리클라이너와 그 위에 8자 모양의 플라스틱 기계가 있었다.
우선, 치료 순서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먼저 의자에 앉아서 편안한 자세를 취하되 머리가 약간 눕혀질 정도의 각도로 앉는다.
2. 의료진이 자극을 줘야 할 머리 위치에 8자 모형의 기계를 고정을 시켜준다. (머리에 살짝 얹는다는 느낌)
그리고 시험 삼아 강도가 괜찮은지 등을 테스트하고 괜찮은지 물어본 후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한다.
3. 대략 1초에 10번 정도 되는 자극이 5~6초 지속되고, 30초 쉬고 다시 반복한다.(같은 주기로 총 30분간 진행)
4. 첫 치료를 받을 때 자기장 세기를 결정하고, 점점 강도를 높여간다. 강도를 높일 때도 나의 의견을 물어보고 진행하게 된다.
치료를 받을 때 자극은 뭉뚝한 이쑤시개 한 다발이 약하게 머리를 빠르게 자극하는 느낌이었다. 아프지는 않았다. 가끔 정수리 쪽에 기계가 닿는 경우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때는 위치를 다시 조정해주면 한결 편안해졌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움직이지만 않으면 되기에 어렵진 않았다.
치료시간(30분) 동안 휴대폰을 보아도 된다고 했지만, 치료에 집중하고 싶어서(딱히 휴대폰을 보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보지 않았다. 대신 호흡에 신경 쓰며 치료에 집중했다. 처음엔 30분이 길었는데 점점 익숙해져서인지 시간이 금세 흘렀다.
어떤 날은 병원에 가는 길에서부터 눈물이 터져서 치료받는 내내 울었던 적도 있었다. 점심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이렇게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었다. (이럴 땐 코로나 19 때문에 쓰는 마스크가 고마웠다. 펑펑 울어도 눈만 웃으면 울었던 표시가 덜 나서 편히 울 수 있으니.)
또 다른 날에는 내가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보겠냐며 스스로를 위안해보기도 했다. 30분간은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살짝 부담스러운 치료비용에 '이런 일에 나에게 돈을 써도 되나'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의식적으로 이 정도는 나에게 써도 된다고, 아픈 거니까 치료는 당연한 거라 다독이기도 했다.
그렇게 난 점심시간마다 조용히 사라져 정신과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