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가요?

이것 역시 나의 선택

by 나다움

자신에게 '이것이 지금의 나니까!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건네보자. 그리고 마치 친구들을 대하듯이 자신을 대해보자. 자책감 때문에 스스로를 질책하는 습관을 쉽게 바꿀 수 있다.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에게』, 네모토 히로유키 -


내 마음이 오랫동안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정신과는 가지 않았던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내 마음이니까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둘째, 병원에 가지 않아도, 그 외의 활동들로 충분히 치유 가능하다.

셋째(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과연 지금 내 상태가 병원에 가도 되는 상태인지 확신이 없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불가능함을 느꼈을 때에도 마지막 세 번째 이유에서 항상 물음표가 생겼다. 특히 팔랑귀인 나는 객관적인 주변인의 다음 물음에 제대로 반박할 수 없었다.

"다들 애 낳고 회사 다니면서 그렇게 살아. 나도 그렇게 애들 키우고 살았어. 뭘 그렇게 유난이야?"

"넌 자기 연민이 너무 강해. 다른 사람들하고 대화를 많이 해봐. 너만 힘든 거 아니라는 거 알게 될 거야."

"아프리카에서 밥도 못 먹는 아이들을 생각해봐라. 넌 얼마나 행복한 거니. 너보다 못한 사람들도 있잖니."

"사랑스러운 아이가 둘이나 있고, 아이를 낳고도 돌아갈 회사가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그들의 이유는 다양하고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나의 답변은 단순하고 궁색했다.

"그냥 마음이 힘들어서. 더는 버티기가 힘들어."

<정신과 방문 첫날 했던 심리검사>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다소 충동적으로 찾아간 정신과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심리검사(불안척도 검사, 자율신경계 이상 검사, 통합 스트레스 검사, 기질 및 성격검사)를 하고, 1시간 넘게 상담을 진행하고도 여전히 의구심이 들었다.

눈 앞에 객관적인 검사 결과 그래프가 내가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보여주고 있고,

의사 선생님은 선천적 우울 기질로 태어났고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서, 불안이 높고 우울과 분노가 극심한 상태라고 하셨다.


그 설명의 끝에는 내가 다시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그래서 선생님이 객관적으로 보시기에 제가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가요? 다들 그렇게 사는데 여기 온 제가 유별난 걸까요?"

나의 뫼비우스 띠 같은 질문에 선생님은 차분이 답하셨다.

감정은 주관적인 겁니다. 내가 어떤 상황이든 내가 힘들다면 그 감정은 옳아요.
다만, 일도 잘해야 하고, 아이도 잘 돌보는 게 버겁다고 '주장'하시지만,
이 역시 본인의 '선택'입니다. 그렇죠?
그만두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잘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입니다. 원래 그런 겁니다. 성인들에게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는 환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약이나 치료도 견딜 수 있게 도와줄 뿐이죠."


의사 선생님은 언제나 현재 상황에 집중해서 질문하고 답을 하시곤 한다.

자꾸 뒤를 돌아보며 원인을 찾고 근본적인 해결을 통해 완벽히 우울을 치료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나를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버틸 수 있게 도움을 줄지 이야기해주신다. 특히 그동안 쌓여왔던 감정이 갑작스레 화로 나타나거나 울음이 터져버릴 때 정신과 치료가 상황을 견디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주셨다.


"감정을 삭히면 내가 병들고, 타인에게 분출하면 관계가 안 좋아지죠."


그렇다, 난 지금 묵은 감정 때문에 병이 들어있고, 제대로 분출하지 못해 관계마저 안 좋아질 위기에 처해있다.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체감이 다른 거라고, 주변에서 어떻게 보든 나 자신부터 내 상태를 인정해야 한다고 나를 먼저 설득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아닌, 쉽게 상처 받고 쓰러지지만 또다시 일어나는 나에서부터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