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지만 처음부터 정신과를 찾아가진 않았습니다

정신과를 찾기 전, 내가 했던 것들

by 나다움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 『윤리학』, 스피노자 -



고통스러운 감정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때는 마음이 힘들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피곤하다', '의욕이 없다' , '무료하다' 등으로 대충 나 스스로를 진단했다. 그때마다 나름의 해결책이 달랐다.

<심리학 책 읽기 : 서점에 가서 책 아이쇼핑을 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처음엔 심리학 책을 읽었다. 심리학 베스트셀러를 읽었고, 읽다 보니 좋아하는 작가가 생겨서 책을 찾아서 읽기도 했다. 죽음, 우울 등 관심 있는 주제별로 책을 읽기도 했다. 책을 읽는 건 쉽게 할 수 있고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아서 좋았다. 대신 가장 큰 단점은 책을 읽은 후 효과가 지속적이지 않고(그러기엔 내 의지가 박약하다) 여전히 같은 부분에서 힘들어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어서 힘들 때 심리학 책을 보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은 할 수 없었다. 책을 보면 힘든 순간을 넘기는 진통제는 되었으나 근본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았다.


<미술치료를 공부하다 : 치료를 받을 용기가 없어 직접 배워보다>

그러다가 미술치료를 직접 배워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배우면서 나 자신이 직접 실습하고 같이 배우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순간이 좋았다. 직접적인 치료를 내가 받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있었다. 정말 내가 마음이 아픈 상태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 다른 마음이 아픈분들과 만나다 : 젖은 빨래를 햇볕에 말리듯, 아픈 내 마음을 드러냄으로서 치유가 되는 시간>

관심을 갖고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내 주변에 무료이면서(돈을 주고 내가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 못했던 것 같다) 누구나 신청 가능한 프로그램들이 몇몇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라는 치유 프로그램이 있었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스스로 나의 삶을 돌아보고, 타인과 아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자리였다.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던 자리였다.

또 다른 곳에서 실시하는 "독서치료"모임에도 참여했었다. 40대 이후 주부들이 타깃이었지만, 참여 가능하다고 하여 그곳에도 갔었다. 결론적으로 참으로 좋았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책, 그것도 그림책을 통해 나의 마음을 표현해보고 생각해보는 시간들이었다. 그곳에서 만났던 분들도 참 따뜻했다. 다들 어떤 이유에서 이런 활동에 참여했는지, 친해진 후에도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다. 다만 타인을 이해하려는 진심만 있다면,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

<미술상담치료의 시작 : 스트레스 정도를 표현한 그림-비가 많이 내리는데(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다행히 우산(심리적 보호장치)은 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멈춰있는 모습>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내 시간을 그래도 내가 쓸 수 있어서 이런저런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돌보는 과정에서는 그럴 여건이 아니어서 나의 에너지는 점점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막 아이를 낳고 기를 때는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신경쓰지 못하다가 아이가 좀 커서 생후 1년 정도 되었을 때 터지고 말았다.

기존에 우울한 정서에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과 육아 스트레스가 더해져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던 날들이었다. 나의 상태에 심각성을 느낀 지인이 미술상담치료를 추천해서 시작하였다. 상담의 경우 치료사의 역량도 중요하고 비용이나 시간도 간과할 수 없었다. 비록 왕복 차로 3시간이 걸렸지만, 다른 조건이 나에게 적합하여 미술상담치료를 시작하였다.

결론적으로 미술상담치료는 나의 삶의 변곡점이 되었다. 상담시간은 과거의 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돌아보고 치료사 선생님의 공감과 수용의 경험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힘든 시기도 있었다. 일어날 수조차 없는 무력감에 약속을 취소하거나 아이를 맡기고 상담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 등등 규칙적으로 미술상담치료를 받기 힘들었다. 그래도 상담이 끝나고 적어둔 메모를 보며 내 힘으로 버티는 시간을 견뎌냈다. 심리상담은 약 6개월간 지속되다가 갑작스레 종료되었다.

<미술상담치료의 종료 : 둘째의 임신>

둘째가 생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치료 상담 선생님께서는 굉장히 기뻐해 주셨다. 아이가 생긴 것만큼 마음이 안정된 증거는 없다고 하시며 진심으로 축하해주셨다.


그렇게 나의 우울한 마음은 완벽히 치유된 것으로 믿었다. 미술상담치료 후 둘째를 낳고 기르며 첫째 때보다는 우울의 강도가 낮아지고 마음을 다잡기 수월했지만, 여전히 자주 우울하고 무기력했으며 그때마다 다시 평온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복직을 하고 두 아들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마음의 힘듬을 느낄 새도 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한쪽에 치워둔 쓰레기처럼, 나의 불편한 감정들은 마음 한편에 차곡차곡 쌓여갔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펑하고 터져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일하다가 사무실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기도 하고, 아이들이 자기 전에 동화책 한권만 더 읽어달라는 요구에 빨리 자라고 불같이 화를 내고 이내 후회하기도 했다. 자려고 누울 때마다 내일은 이대로 눈을 뜨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어버이날이라 직장인에 엄마, 딸, 며느리 역할까지 생각했던 날이었다. 평소대로 6시부터 일어나 아들 둘 준비시켜 어린이집 등원에, 어버이날 감사인사를 한 후 회사에서 쉴 새 없이 전화를 받다가 전화기를 내려놓지 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평소에도 가끔씩 눈물이 쏟아지는 날이 있었다. 그때마다 화장실에서 10분 정도 진정한 후 사무실에 돌아갔다. 무슨 일 있냐는 동료의 물음엔 졸려서 눈 비비며 세수하고 왔다며 멋쩍게 웃으며 말이다.

그런데 그날은 눈물이 그칠 듯 하더니 다시 쏟아지고 수습하려 할수록 복받치는 게 아무렇지 않은 연기를 할 수없었다. 나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고 해결할 방법이 마지막 하나만 떠올랐다.


정신과에 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