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울함을 느낄 틈이 없도록

하나만 하기엔 마음이 헛헛했던 다능인(multipotentialite)

by 나다움



나는 처음으로 그동안 외면했던 자신에 대한 진실을 마주했다. 그렇다, 나는 그 무엇도 꾸준히 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되는 법』, 에밀리 와프닉 -


나는 "이거다." 하게 잘하는 것이 없다.


중학교 미술시간, 나름 원근법을 충분히 활용하여 잔디밭과 나무를 그렸는데 선생님은 '평면적'이라고 하셨다.

고등학교 체육시간, 체력장으로 공던지기를 풀 스윙해서 던졌는데 내 발 20cm 앞에 떨어졌다.

수능 마치고 운전면허 도로주행을 합격하던 날, 선생님은 나에게 바로 운전하지 말라하셨다,

나와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휴대폰, 컴퓨터 게임 등은 시작도 않는다, 하다 보면 너무 못해서 그런 나 자신에 더 스트레스받기 때문에.


그런 나의 취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취미 찾기"이다.

20살 이후 취미라고 시작해서 아직까지 하고 있는 것은 "없다."

그렇다, 나의 취미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것저것 해보기.

그 취미 찾기의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의 고통을 벗어나고 싶은 몸부림과 닿아있다.


<작가와의 만남 : 이때부터 동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앤서니 브라운(고릴라, 동물원의 저자), 백희나 작가님(구름빵, 장수탕 선녀님 등의 저자)을 볼 수 있었다.>

온라인 서점(YES24, 알라딘 등)에서 주최하는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우연히 알게되었다. 신작을 낸 작가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인데, 일과 후 시간이 맞으면 주제를 막론하고 무조건 신청했다. 무료에다가 신청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대부분 참여할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동화, 요리, 소설, 원예 등등)를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대부분 강의 형식이지만 공연, 실습 등도 있어서 각각의 맛이 달랐다. 그 시간만은 온전히 그곳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원데이 클래스 형식으로 진행되기에 시간적 부담도 적었고, 대부분 무료 거나 비용이 저렴하여 금전적 부담도 적었다. 내 주변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참 많이도 했다. 물론 금손은 아니기에 결과물은 다소 조악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나름 만족하는 시간이었다.

<그 동안 참여했던 사진 : 석고방향제 만들기(좌), 그릇만들기(중간), 꽃꽃이(우)이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은 활동들이 훨씬 많다>


악기를 다루는 것도 나의 취미 중 하나였다. 대학교 때 우연히 들었던 교양과목(국악의 이해)에서 국악기 소리에 매료되어 급기야 직접 가야금과 해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연주해보니, 내가 좋아서 시작하게 된 악기 소리를 내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한참 후에 깨닫고 그만두었지만) 뭐든 한번 할 때는 올인해서 가야금과 해금을 직접 사서 집에서도 맹연습했다. 심지어 해금은 직접 만들기 체험하는 곳에 가서 모셔(?) 왔다. 지금은 집 한쪽 구석에 전시 중인 악기들을 지인들에게 자꾸 배워보라고 권유하며 대여를 꾀하고 있다.(아직까지 성공 못함).


몸치이지만, 또 건강은 끔찍이 생각하여 운동도 많이 시도해봤다. 어릴 적 입어보고 싶었던 분홍색 하늘하늘한 발레복의 로망에 이끌려 간 발레수업이었다. 연습 첫날 체형은 발레 꿈나무로 선생님께 칭찬받고 열의를 보였으나, 강직한 나의 몸뚱이 탓에 나의 의도와는 달리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으로 선생님께 낙인이 찍혀서 흥미를 잃었다.(몸이 뻣뻣하여 동작을 대충 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난 한 동작 한 동작 최선을 다했었다.)

수영은 필수라는 분위기에 휩쓸려 일과후 저녁 수영반에 등록하기도 했다. 어릴 때 수영을 배웠지만 물에 뜨지 못해서 재도전이었다. 역시 뭐든 처음에는 나의 열의에 에이스로 주목을 받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발차기 단계까지였다. 모든 동작을 합치는 순간 여지없이 나의 손과 발은 각자 놀며, 숨은 못 쉬고 물만 너무 많이 먹고 오는 날이 계속되었다.(수영장 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저녁을 거르는 날도 많았다.)

수영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 물에서 하는 아쿠아로빅도 해보았지만, 역시 오래 하진 못했다.(아쿠아로빅은 시간대가 평일 점심밖에 없기도 했고, 생각보다 체력 소비가 너무 커서 힘들어서 그만두었다.) 그냥 물이 나와 안 맞는 것으로 최종 결론 내렸다.

<원데이 클래스 후 활동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 쿠션만들기 수업 후 바느질에 관심이 생겨 집에서 양말인형 만들기로 확장되다>


임신도 나의 취미활동을 막을 순 없었다. 오히려 원데이 클래스 후 집에 와서 응용하는 과정으로 이어져 나의 취미생활은 무한히 늘어만 갔다. 특히 바느질과 재봉틀에 한동안 빠져서 중고나라에서 미니 재봉틀을 구입한 후 본전을 뽑겠다며 양말인형 가내수공업을 실시하였다. 때마침 메르스가 창궐하던 시기였다. 임산부인 나는 안전을 이유로 자가 감금생활을 버티기 위해 하루 종일 양말만 5만 원어치 사서 인형들을 만들었다.(아직까지 그때 산 양말들이 창고에 머무르고 있다.)

< 그림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시작한 민화 : 색감이 매력적이고, 손기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정해진 방식에 따라 하면 되기에 나의 똥손이 덜 부각되는 활동이다.>

7살에 재밌게 다니던 미술학원을, 엄마가 창의력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강제로 못 다니게 했다. 그 이후 미술을 배우고 싶은 나의 열망은 오히려 더 커져갔다. 창의력은 죽지 않았지만, (창의력만 살아있고) 기술력이 없어서 나의 미술은 아직도 7살에 머물러있다. 그래도 끊임없이 드로잉 수업, 미술 기초 등 관련 수업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들어보았다. 내 이상과 현재의 급격한 차이 앞에 꾸준한 연습도 못하고 좌절부터 하고 쉽게 포기하곤 했다. 그때 시작한 것이 민화였다. 밑그림이 정해져 있고, 채색도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어 나의 창의력은 자제하면서 어느 정도 볼만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물론, 선생님의 리터치가 많이 들어가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엉성함이 잘 드러난다)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가서까지 나의 미술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한참 꽃과 그림에 심취해 있을 때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보테니컬 아트'에 심취하여, 산후조리원에 가져갈 물건에 색연필과 종이를 먼저 챙겼었다. 수유콜 후 아기가 낮잠 잘 때 열심히 색연필로 꽃잎 하나하나를 채워갔다.(다니던 주민센터에서 전시회를 한다 하여 기한안에 작품을 제출하느라 더 그랬다. 결국 조리원에서 완성하여 제출은 신랑이 대리 제출해주었다.)

미술에 대한 나의 열정과 달리 나의 능력이 없음을 활동을 할 때마다 더욱 여실히 느낀다.(내가 책으로 독학한 팝아트 초상화(신랑과 나)는 우리 집 거실에 조차 걸리지 못하는 비운을 맞았다. 손님이 오면 치우는 물건 1호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 과감히 폐기 처분했다.)


이처럼 활동은 많이 하지만, 뭐하나 뚜렷이 잘하는 게 없는 내가 그래도 꾸준히 하는 것은 바로 글쓰기이다. 초등학교 때 글짓기 상을 우연히 두어 번 받은 적이 있었고, 그나마 나의 미천한 실력이 한눈에 드러나지 않는 유일한 분야였다.(글이란 건 다른 것들과 달리 한참을 읽어야만 파악되기에 그나마 용기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도전해본 분야였다.)

한때는 내가 좋아하는 동화를 직접 써보면 어떨까 해서 동화작가 수업까지 듣기도 했다.(두세번 참가상과 비슷한 상을 받기도 했다.) 특출나게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란 건 안다. 그래도 글쓰기를 계속하는 건 그나마 내가 찾은 취미 중에 가장 잘하는 분야라는 점이 계속할 수 있는 자신감을 준다.

모든 것을 잊고 그것에 집중하고 있는 순간에는 그냥 온전히 나 일수 있었다. 내가 바라는 나, 주변이 바라는 나, 그 차이에서 오는 괴로움과 외로움을 잊고 그저 그 순간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다양하게 시도해본 취미 중 유일하게 글쓰기는 계속 한다. 그게 휴대폰 메모장이든, 포스트잇이든 그냥 쓴다.


하지만 나의 취미 찾기의 방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며칠 전 프랑스 자수를 시도했다. 수틀에 넣고 자수를 하는 내 모습에 자아도취하다가 수틀채 꿰매버렸다. 자수도 나의 취미는 아니었다. 나에게 아직 발견 못한 재능이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과 마음의 헛헛함을 채우는 나의 취미 찾기는 오늘도 쉬지 않는다.

<자수틀도 함께 꿰메버리는 나란 여자, 취미 찾기의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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