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은 나를 호구라 부르며 돌직구를 날린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

by 나다움

마술적 사고란, 뭔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생각, 소망, 계획이 현실이 될 것 같은 헛꿈을 일컫습니다. 상담과 치료는 자주 영화 속의 소재가 됩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극적인 장면이 필요합니다. 인상 좋은 치료자와 주인공이 만나서 몇 번의 상담으로 오랜 심리적 문제들이 해결되는 장면 같은 것들요. 그래서인지 진료실에, 상담실에, 많은 사람들이 마술적 사고를 가지고 옵니다. 누군가를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
하지만 그런 방법은 없지요. 내가 달라질 수 있을 뿐입니다.

사실 마술적 사고는 어린이들에게는 흔합니다. 자라면서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노력과 시간, 인내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쉬운 길을 확신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다면 대부분 사기죠.


- 알고 싶니 마음, 심리툰(사람의 마음이 약으로만 치료되나요?), 팔호광장 지음-


내 취미는 '쇼핑'이다. 그렇다고 비싼 것을 턱턱 사대는 배포는 없어서, 소소한 쇼핑을 자주 즐긴다. 무수히 많은 택배산을 몇 개씩 쌓아 올린 자로서 다년간의 쇼핑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진리가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것.

인터넷으로 본 사진, 타인의 후기 등은 나의 쇼핑에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실제 내가 그 물건을 사용해보면 쇼핑 전의 정보들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장신의 볼륨감 있는 모델이 입었을 때는 한껏 여성스러워 보이는 원피스가 실제 배송돼서 입어보면, 초딩 몸매인 나의 핏은 엄마옷 훔쳐 입은 듯 뭔가 어색하기만 하다.) 그런데 크게 기대를 안 하고 그냥 쓱쓱 샀는데 와서 쓸수록 손이 가고 애정이 가는 것들이 있다. (다들 말렸던 건식 반신욕기는 나의 새벽 루틴을 함께하며 차가워진 나의 몸을 달궈주는(?) 용도로 매일 사용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단순한 진리는 정신건강의학과를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여타의 쇼핑처럼 인터넷 후기들을 비교도 해보고 하지만, 결국 병원이라는 특성상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나에게 맞는지 알 수가 없다. 거기다가 정신건강의학과는 대화를 통해 진단이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도중에 다른 다른 곳으로 바꾸는 게 타 병원보다 더 쉽지 않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특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 아니면 바꿔야겠지만, 난 귀찮아서 웬만하면 그냥 다닌다. (엄마옷 빌려 입은 듯한 원피스도 귀찮아서 반품 안 하고, 외출복 대신 실내복으로 쓰고 있다. 하하하. )


사실 나에게 지금의 병원은 '외출복을 예상하고 샀지만, 실내복으로 입는 엄마옷 빌려 입은 듯한 원피스'같다. 처음에 정신건강의학과에 갔을 때, 전문적인 의사 선생님께서 나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내가 가려운 부분을 탁 하고 어루만져 주실 것 같은 환상(?)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그렇지 않으신다. 따뜻하고 온화하기보다는 이지적이고 차가워보이는 인상에, 얼마나 돌직구를 자주 잘 날리시는지 가끔은 뼈를 정통으로 맞아서 순살이 될 지경이다.


나 :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살다 보면, 어느새 그게 당연해져 있어요. 처음엔 기쁘게 자진해서 했던 일이었는데, 이제는 하지 않으면 타인이 비난의 비난을 들어야 해요. 그런 게 힘들어요.


의사 선생님 : 그렇죠. 그래서 어려운 겁니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을 간단히 '호구'라 하죠. 배짱 있게 버텨야죠.


다른 곳도 아니고 신성한(?)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께 '나=호구'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내 웃고 말았다. 보통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의 상황에 공감해주고 더 나아가서는 같이 욕해주는(?)데,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현실을 똑바로 보게 해 주신다. 나에게 그런 사람이 없기에, 오히려 의사 선생님의 '호구 발언'이 와닿기도 했다.

또 그게 나에게 먹히기도(?)한다. 화산에서 막 터진 용암처럼 내 안의 뜨거운 감정이 흘러내릴 때 의사 선생님의 "버텨야죠"를 떠올리면 순식간에 화산이 꽁꽁 얼어버린다.

어쩌면 그 말 안에는, 난 버틸 수 있는 힘이 있고, 그 힘이 떨어지는 순간조차 약에 도움을 받아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성장한 나를 발견할 것이며, 성장을 한 나에게 그 시련은 돌아보면 그 크기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건 아닐까.


유튜브에서 그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들이 공감을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 번씩 해주시길 바란다고. 그렇게 생각해보면, 의사 선생님은 그때의 나에게 일종의 정면돌파 요법으로 다가와 내 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내가 의사 선생님에게 큰 기대가 없다. 처음부터 그랬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오히려 기대를 더(더더더더더더) 내려놓을 수로 내가 편해지는 경험을 한다. 누군가 내 감정을 꼭 다 받아주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고, 그럼에도 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다는 경험도 하는 중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해도 좋다. 어쨌든 나는 쿨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나를 얼릴 것 같은 의사 선생님의 태도와 내 얘기에 격하게 반응 안하는 의사 선생님의 방식이 좋다. 오히려 내 뜨거운 감정을 아무 고민 없이 털어놓고, 내 고민에 대해 의사 선생님 반응처럼 나 역시 한걸음 떨어져서 보면 조금은 편히 볼 수 있다. 그렇게 '마술적 사고'대신 '내가 달라지는 마법'을 택한다. 그래서 너무 힘들 땐 마냥 참지 않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수단들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버틴다.

"성인에게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환경은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현실 고증 가득한 또 다른 말을 떠올리며.

오늘도 난, 더 이상은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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