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게 매일 해주려는, 최소한 예의

수면, 운동, 식사

by 나다움

기저선은 내가 무척 아끼는 단어 중 하나다. 심리학 용어로, 처치(치료)에 앞서 긋는 선을 일컫는다. 행동을 수정해나가기 전 기초선을 먼저 측정하는 것이다.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지금 내 삶이, 슬픔이, 영혼의 두 발이 어디에 있는지 금을 긋고 바라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내가 어디로 얼마만큼 왔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미술치료에서는 '공간을 구분하는 기준선'을 뜻하기도 한다. 기저선을 긋는 순간 땅이 생겨난다. 자연히 선 위는 하늘이 된다. 백지 위에 선 하나를 그었을 뿐인데 공간이 생기고 시간이 열리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목표는 출발이다. 뒤돌아보지 않고 가는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내가 되기 위해서, 슬픔을 잊기 위해서, 자유로워지려고, 기억을 붙들고 싶어서... 각자의 출발 요인은 전부 다를 것이다.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도, 세계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장면도 전부 다르겠지. 그러나 기저선을 그어두었으므로 우리는 알 수 있다. 내가 이렇게나 멀리 흘러왔구나.

- 단어의 집, 안희연 -


회사를 안 가면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근데 막상 회사에 안 가는 날엔 아침에 안 씻는다...(나만 그런 거 아니죠? 하하하. 저녁엔 씻어요. ) 자연스레 침대에 미적대다가 유튜브 몇 편 보다 보면 침대는 나를 시간이동을 시켜 오후로 데려다준다. 내가 살이 안 찌는 이유 중 게으름도 한 몫하는데, 배고파도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배터리가 5%에서 깜빡이면 충전기를 꽂아줘야 하는데 충전기 가지러 가는 게 귀찮은 나머지 휴대폰을 만지지 않아서 배터리 수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을 택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 세수를 건너뛰는 날조차 일정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게 세 가지 있다. 이것은 실질적인 나의 마음건강 관리법이기도 하다.



1. 수면

아침형 인간이자 저녁 10시만 넘어서면 반수면 상태로 들어가기에 무조건 초저녁에 자려고 애쓴다. 특히 육아 퇴근을 위해서 빠른 취침은 필수이다. 게다가 경험치로 얻은 감정의 자이로드롭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시간대는 밤 12시~새벽 3시이며, 그때가 제일 위험하기에 그 시간에는 이미 꿈나라에 가있을수도록 미리 잠을 잔다.
실제로 수면은 생각보다 우리의 심신에 영향을 많이 준다고 한다. 체력을 충전하는 것도 있지만, 많이 버거웠던 일도 일단 자고 나면 최고점은 지나가는 것을 보면, 잠은 마음의 진통제 같기도 하다. 그래서 단순히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피곤하고 힘든 날에는 더더욱 잠을 자려고 하고 수면환경도 쾌적하게 만들려 노력하는 편이다.


2. 운동

내가 좋아하는 운동은 숨쉬기 운동이고, 다이어트는 필요 없는 복 받은 저체중(?)이지만 하루 30분 유산소 운동을 꼭 하려고 한다. 제일 좋은 것은 야외에서, 낮에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하는 것이지만 워킹맘인 나에게 규칙적으로 운동이 가능한 시간은 아이들이 아직 잠들어있고 그나마 하루 중 제일 쌩쌩한(?) 새벽시간대이다. 몸을 움직이는 게 귀찮은 나는 그나마 앉아서 하는 운동(?)으로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어느 책에서 보았는데, 실제로 같은 자전거 운동이라도 실내 자전거보다는 실외에서 직접 풍경들을 보면서 하는 자전거 타기가 정신건강에 더 좋다는 문구를 발견한 후부터는 이왕이면 새벽에 바깥공기를 마시며 자전거를 타려고 노력한다. 그런 구절을 읽어서 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때 쾌감은 매력적이다.

사람의 감정, 생각, 행동 중 가장 바꾸기 쉬운 것이 행동이라는 어느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면서, 하루를 활기찬 행동으로 열어서 나의 감정과 생각도 활기차게 만들려 노력한다.

3. 식사

먹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나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귀찮아서 대부분은 대충 먹는다. (누가 차려주거나 평일 점심처럼 사 먹는 경우는 원래의 식성이 폭발하여 잘 먹긴 하지만.) 그래서 집에서 있는 어떤 날은 아무것도 안 먹고 누워있고만 싶을 때가 있다. 배는 고프지만 움직이기 귀찮아서 안 먹고 시체놀이를 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을 겪어보니, 귀찮더라도 뭐든 먹어야 함을 깨닫는다. 이왕이면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챙겨 먹으려 노력한다. 물론 생각과 행동 사이에는 버퍼링이 있지만, 뭐라도 먹어야 움직일 수 있고, 움직이다 보면 너무 나만의 생각에 갇히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내 휴대폰 배경화면에 방탄소년단 진 님으로 저장해 두고 매일 덕질을 하는 것처럼, 나의 일상에 언제나 위의 세 가지를 함께 하려고 생각을 한다. "수면, 운동, 식사"는 실제로 많은 연구 등을 통해 검증된 객관적인 지식으로서 정신건강관리에 필요한 사항임은 누구나 안다. 마치 수능 만점자가 비결로 꼽는 "교과서 위주 공부"를 모두가 알고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그것을 행동에 옮겨 성과를 내는 것에는 간극이 크듯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수면, 운동, 식사"를 지켜나가는 게 기초이자 최고라는 아는 것과 행동에 옮기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면, 운동, 식사"는 나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처럼 꼭 지키려 한다. 물론 지켜지지 않는 날이 더 많다. 아들 둘이 내 머리를 만지며 잠들고, 자다가는 발로 차고, 내 이불을 뺏어가면 당연히 수면의 질은 떨어진다. 그런 날은 나머지 운동과 식사를 더 신경 쓰려한다. 아침에 비가 와서 운동을 건너뛴 날이면(실내 운동도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전거를 타러 나가지 않으면, 귀차니즘에 떠밀려 내일의 나에게 미룬다.) 식사할 때 야채를 더 많이 먹으려고 애써본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완벽히 할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 조금씩 더 신경 써보려 한다. 동시에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해서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그렇게 최소한의 나와의 약속을 지켜가 본다.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는 이 세 가지가 나의 하루 루틴에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언젠가는 병원의 도움 없이도 이 세 가지만으로도 나의 마음건강을 챙길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믿으며 말이다.

이전 14화의사 선생님은 나를 호구라 부르며 돌직구를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