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니트센터와 정신건강의학과의 공통점
병원을 선택하는 방법
과거를 생각하는 일에는 모종의 슬픔이 따릅니다. 마음이 많이 상했던 일이나 아직까지도 화해되지 않는 기억들이 슬픔을 몰고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문제는 즐겁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은 장면을 떠올리는 것에도 늘 얼마간의 슬픔이 묻어난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것은 켜켜이 쌓인 시간이 만들어낸 일이라 생각합니다. 숲이 울창해지는 일도 다시 나무들이 앙상해지는 일도 이러한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계절 산문, 박준-
나는 운동과는 거리가 매우 먼 사람이다. 이제껏 저체중 인생으로 살았기에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의 필요성을 못 느꼈고, 현재는 생존 체력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그동안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여 숨쉬기 운동만 한다.(복식호흡으로. 하하하) 동시에 돈을 지불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 무지 애를 쓴다, 그것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운동이라 하더라도.
어느 날 신랑이 갑자기 필라테스 학원을 등록했단다. 그 금액에 한번 놀라고, 수강인이 나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잘 안 되는 셈으로 1회당 거의 3만 원꼴이기에, 결석하면 피 같은 내 돈 3만 원을 그냥 버린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필라테스를 갔더랬다.
처음엔 6개월만 하려고 했으나, 하다 보니 또 관성의 법칙이 발동하여 6개월을 더해서 1년 동안 했다.
그렇게 내 생애 최초로, 돈 내며 운동을 꾸준히 하러 다니다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피트니트센터와 정신건강의학과의 공통점이었다.
1. 우선은 가자. 가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아마 신랑이 필라테스 학원을 먼저 가보고 수강료를 결제하지 않았다면, 난 학원을 알아보는데만 반년을 보냈을지 모른다. 학원의 위치, 시설, 가격, 프로그램, 운동기구, 선생님 양력, 기타 등등 모든 것을 꼼꼼하게 비교하여 선택하는데 3개월, 다시 그 학원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데 3개월을 보내지 않았을까? 그리고 결론은 안 갔을지도 모른다. 무슨 운동하는데 돈을 그렇게 내냐면서... 하지만 이미 신랑이 예약을 해놓았고, 예약금도 있던 상태라 센터를 방문해서 다닐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5분 정도 걸렸던 거 같다.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게 생각보다 정확하고 빠르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도 마찬가지다. 다른 병원들과 달리 흔히 가는 병원이 아니라는 선입견(?)때문에 더 철저하게 조사하고 또 알아보는데 시간을 많이 보낸다. 내가 병원을 가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그 허들을 넘으면 그럼 어떤 병원에 가야 하는지 치료비는 얼마나 되는지 등등 고민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하다가 세월을 보내느니, 대략적인 정보검색을 마쳤다면 우선 병원에 가본다. 실제로 가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가보고 계속 다닐지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2. 내가 다니기 편한 곳으로, 가까운 곳으로 다닌다.
운동은 꾸준히 해야 하기에 아무리 좋은 운동기구가 많고, 유명한 선생님이 있다 해도 너무 멀면 가는 것 자체가 귀찮다. 갑자기 폭식을 하고 운동을 건너뛴 그다음 날, 더욱 강렬히 가기 싫어진다. (안 그래도 밀착되는 레깅스와 쫄티(?)가 부담스러운데, 빈약한 몸매에 쓸데없이 뱃살이 나온 자신을 보고 있으면 우아한 보디라인을 자랑하는 선생님과 비교되며 위축된다.)한번 빠지는 건 고민을 많이 하지만, 두 번 빠지는 건 그보다 고민이 덜하고 점점 운동을 건너뛰는 게 일상화가 된다. 그래서 집 가까운 곳, 또는 내가 다니기 편한 곳을 다녀야, 습관적으로 가게 되고 빠졌을 때 죄책감이 극대화(?)된다. 가기 편하면 더 자주 가게 된다. 나의 동선 내에 있으면 자연스레 가기 쉽다.
정신건강의학과도 비슷하다. 정기적인 방문이 중요하다. 돌발사건으로 인해 기분이 자이로드롭처럼 끝없이 쭉 내려가는 느낌이 들 때, 과도한 스트레스로 일상의 '수면, 식사, 운동'의 규칙적인 루틴이 깨져버릴 정도로 피폐해져 버렸을 때는 나 혼자 그 굴레를 빠져나오기 힘들 때는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내 경우에는 같은 종류의 약을 먹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따라서 약의 용량에 따라 신체 반응이 달라지기에 조절할 필요가 있을 때는 예약된 날이 아니라도 진료를 받고 약을 조절해나간다. 기존에 먹던 용량인데도 버거울 때는 부족하다 느낄 때도 있고, 반대로 과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한 번은 꾹 참고 지정된 예약일에 갔었는데 실제로 의사 선생님은 "참지 말고 오시지. 다음번에 약이 힘들 땐 예약 날짜 아니라도 오세요."라고 하셨다. 가까우면 나의 상태에 따라서 진료를 자주 받을 수 있어 편하다. 그렇기에 지속적으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
3. 영 아니다 싶을 땐 바꾼다.
운동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과 나와의 케미도 무시할 수 없다. 운동을 고행으로 여기는 나는, 이게 최대치인데 선생님은 내 자세를 칼같이 수정해주며 한 번만 더 하자고 냉정하게 말하면 그때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다음에는 가기가 꺼려진다. 자꾸만 가는 게 싫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 운동 자체를 그만두기보다는 다른 곳을 알아본다.
정신건강의학과도 그렇다. 나도 지금의 병원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상상했던 정신건강의학과는 나의 피폐하고 지친 정신을 위로해줄 그런 자상하고 따뜻하며 섬세한 의사 선생님을 생각했으나, 현실은 쿨하디 쿨해 나를 호구라 부르는 의사 선생님이시기에 초반에는 이게 맞나, 싶기도 했다.
게다가 매번 위로를 받기위한 의도를 듬뿍 담아 이야기를 한 무더기 털어놓으면, 의사 선생님은 결론이 "버텨야죠"가 나오곤 했다. 그래서 한때는 이 병원이 나랑 안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도, 또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 자체가 안 맞아서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주신 약발도 잘 받고(?), 또 옮기면 다시 처음부터 심리검사 등 초진을 다시 해야 하는게 귀찮은 난,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이기에 그냥 줄곧 다니긴 했다.
그렇지만, 영 아니다 싶을 땐 바꿔야 한다. 특히 처방해주는 약이 나와 맞지 않을 때,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가 오히려 더 큰 상처가 될 때는 말이다. 내 경우에는 심리상담을 따로 심리상담센터에서 했기에, 의사 선생님의 짧은 진료시간이 그리 섭섭하지 않았다. 나를 호구라고 부를 정도로 굉장히 객관적인 말을 건넸지만, 그 역시 상담 선생님이 온탕이라면 의사 선생님은 냉탕이라 생각해서 크게 상처받지 않았다. 지금은 오히려 의사 선생님께 내가 의존적이지 않아 그게 또 좋다.
피트니스센터를 고를 때 사람마다 중요시하는 게 다르다. 어떤 사람은 시설이 좋은 곳을, 어떤 사람들은 코치 선생님을 보고 선택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집에서 가까우면 최고로 여기는 등등 선택하는 이 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최우선으로 해야 만족도도 높고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내가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을 해야 병원을 선택할 수 있고, 꾸준히 치료를 받기가 좋다. 물론 피트니스센터와 달리 정보탐색에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나만의 최소한의 기준점을 가지고 병원을 선택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덧.
조용한 곳에서 더 잘 들리는 소리들이 있다. 멀리서도 나와 관련된 것은 또렷이 들리는 법인데, 실제로 그랬다. 내가 다니는 병원에 관해 다른 부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였다.
"이번에 이 건물에 정신건강의학과 새로 들어왔더라고? 꽤 큰 거 같던데?"
"그래? 그렇게 크게 개업할 정도로 사람이 많이 오나?"
나에게 직접 묻는 말이 아니었기에 대답을 해주진 않았지만, 속으로 대답한다.
'네. 저 큰 병원이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고자 하신다면, 미리 예약하셔야 합니다. 당일 진료는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가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