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그 무거움에 대하여

1시간만 더 버틴다는 마음으로 : '죽음'과 '삶' 사이의 시간 메우다

by 나다움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므로 죽음을 초래할 어떤 것도 해서는 안된다. 대신 살아가라. 다양한 자살 방법의 상대적인 가치에 대해 도로시 파커(Dorothyy Parker)가 쓴 유명한 구절이 생각난다.


면도칼은 아프고, 강물은 축축하다.

산(Acids)은 얼룩을 남기고, 약은 경련을 일으킨다.

총은 불법이고, 밧줄은 풀어질 수 있으며, 가스는 냄새가 끔찍하니

차라리 사는 게 낫다.


- 자살에 대하여(죽음을 생각하는 철학자의 오후), 사이먼 크리출리 지음, 변진경 번역 -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싶은 사람들의 심정은 하이라이트 조명과 같다. 하이라이트 조명은 특정 대상을 강조해주기도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비추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림 등을 돋보이게 하는 포인트 인테리어 효과로는 좋지만, 일상생활에 필요한 조도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자살을 떠올리는 사람들 역시 그렇다. 나만의 아픔이 강조되고, 상대적으로 주변은 보이지 않아 어둡기에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힘들고, 심지어 일상생활에 필요한 에너지조차 부족하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이 어둠이 언제 물러갈지 그 끝을 알 수 없다고 느낄 때는 더 절망적으로 변해간다.

무엇이든 문제는 그 본질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해결점을 모색할 수 있듯이, 자살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무거운 주제라고 생각하여 아예 떠올리지 않는 게 최선이라며 회피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살을 예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준비해봤다. 실제로 죽음을 떠올리는 사람들의 특징과 이를 스스로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나 역시 아직도 헤매며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중에 있기에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혹은 그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조심스레 이 글을 써본다.

1.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베스트셀러의 제목이기도 한 저 문장은 자살의 '양가감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살을 실제로 옮기기까지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한편으로는 죽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살고 싶어 하는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하는 것이다.

죽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죽음이 이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에, 기꺼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현재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터널에 갇힌 듯한 시야가 넓어지며 생각을 바꿀 수 있다.

< 출처 : EBS 다큐 프라임-33분마다 떠나는 사람들 >

전문가는 "자살 심리 3요소"로 "짐이 된다는 생각", "사회적 고립감", "고통에 대한 내성"을 꼽았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충족되었을 때, 자살은 실행에 옮기게 된다고 말한다. 반대로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제거할 수 있다면 자살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인데, "고통에 대한 내성(과거에 고통을 참았던 경험이 많을수록 견디는 능력이 강해지는 것) "은 바꾸기 매우 어렵지만, 앞서 본 나머지 2가지 "짐이 된다는 생각(예-난 타인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어.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있어)", "사회적 고립감(예-나는 내가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은 바꿀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내 경우는 심리상담을 하면서 "짐이 된다는 생각", "사회적 고림 감"이 옅어졌다. 나는 K-장녀 특성, 즉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스스로 해결하고, 남을 도와주는 행위 등 나의 쓸모를 항상 증명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따라서 내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타인과의 교류도 더 차단하며 스스로를 가두며 고립을 자처하게 되었다.

오랜 심리상담 끝에, 지금은 내가 힘들 때 나를 생각해주는 많은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 비록 여전히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혼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여전히 나를 비난하며 나의 존재가치를 깎아내려서 나 스스로 타인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조바심을 느끼게끔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누군가의 기대를 꼭 충족하지 않아도, 그저 나는 있는 그대로 온전하며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진짜 주의해야 할 시기는 회복기

절망스러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 예상될 때도 그렇지만, 상황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직후에 자살을 많이 시도하기도 한다. 마치 휴대폰 배터리가 5%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는 손전등 기능을 눌러도 작동이 되지 않는 것처럼, 너무 많이 지쳐있을 때는 죽음의 의지를 실행할 힘조차 없는 것이다. 즉 자살이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때는 큰 에너지가 필요한데, 보통 주변에서 보았을 때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회복기에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면, 회사 내 특정부서에서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그 상사와 다른 부서이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할 수 있겠다.

조금 괜찮아졌다고 싶을 때, 한고비는 넘겼다 싶을 때 그때가 사실은 더 힘들다는 것을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 3월의 꽃샘추위처럼, 따뜻함을 맞이하기 위해 스스로 버텨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본다. 동시에 주변에서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조금 더 세심하게 배려를 해주었으면 한다. 암전 된 극장에 가장 큰 조명이 켜지면 무대 전체를 비추듯, '나'라는 배우 혼자 있는 줄 알았던 무대에 함께 하는 이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자체가 큰 힘이 될 것이다.

내 경우에는 심리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정서적 지지를 충분히 보내주셨다. 심리상담을 어느 정도 진행하며 마음이 좀 단단해졌다고 느껴졌을 때, 오히려 자살에 대한 나의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때, 심리상담 선생님은 나의 그런 생각과 감정을 온전히 읽어주시면서 언제, 어떤 방법으로 죽음을 생각하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봐주셨다. 그 과정을 통해 내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위험한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자살에 대해서는 양가감정이 있어서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고, 또한 동시에 이렇게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온기가 돌게 해주었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삶의 의지가 약한 것이 아니라, 죽음이 아니면 이 현실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서 갖은 시도 끝에 하는 마지막 실천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주변에서 조금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었으면 한다.


"사회적 고통은 뇌 속에서 신체적 통증과 거의 같은 양상을 느낀다. 사회적 고통을 느낄 때도 신체적 통증과 마찬가지로 전두 대상피질이 활성화된다" -토마스 조이너 교수(플로리다 주립대)-


다리가 다쳐서 신체적 통증을 느끼는 사람에게 어디서 어떻게 다쳤는지 묻고 아프겠다면서 공감해주고 무거운 물건을 들어주는 등 배려가 자연스럽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다쳐서 사회적 고통을 느끼는 사람에게도 따뜻하게 물어봐주고 지지해주며 그 마음 자체를 존중해주었으면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뇌 속에서는 같은 양상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사회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면 스스로에게 관대해야 하고, 주변인이라면 좀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봐주길 바라본다.




3. 그 순간을 넘겨본다, 딱 1시간만 버텨보자고 생각한다.

"즉각적으로 목숨을 끊을 방법을 찾지 못하면 자살을 위한 (다른) 계획을 세운다는 거죠. 그러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수행능력이나 심리적 상태에 변화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한 방법이죠"

-레니 버먼(미국자살연구협회 회장)-


나는 저 말을 격하게 공감한다. 가파르고 높은 계단을 오르려고 하면 엄두가 나지 않지만, 내 바로 눈앞에 계단 하나만 오르겠다는 마음을 먹다 보면 어느새 그 계단의 끝에 다다를 수 있다. 그래서 힘든 감정의 쓰나미가 몰아칠 때,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 순간을 넘겨보려 한다. 딱 1시간만 버텨보고자 한다.

거기에 평소에 예방책을 마련해둔다. 마치,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지하철 자살사고를 막아주듯이 말이다. 나의 감정의 진폭이 격해지는 시간대(주로 밤 12시~3시 사이)가 제일 위험하기에 그 시간에는 꼭 잔다. 기분이 울적한 날에는 오히려 술을 절대 마시지 않는다. 거기에 혹시 몰라서 베란다에는 화분을 꽉꽉 채워둔다.(그 화분을 치우다 보면 1시간은 족히 넘길 만큼. 하하하).

마지막으로, '예방책'이란 것이 내가 왜 약을 먹느냐는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답이기도 하다. 그 순간의 충동성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면,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건강한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또 나의 마음도 더 단단해질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주문처럼 외워본다.

난 혼자가 아니며,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그리고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이 또한 지나갈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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