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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Feb 16. 2023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말할 때 외국인들이 해준 말

그리고 외국인들의 우쭈쭈가 통하지 않을 때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유교걸인 나는 겸손의 미덕이 몸에 배어, 누군가 칭찬을 해주면 자연스레 자신을 낮추는 습관이 있다. 미국에서도 극내향인 성향을 감추고 등뒤에서는 진땀을 흘리지만, 겉으론 웃으면서 잘 안 되는 영어로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면 상대방은 종종 내게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해 준다. 그러면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손사래를 치며 영어가 서툴다고 대답하는데, 외국인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해준다.


"넌 한국어도 하고, 영어도 하잖아. 난 한국어는 한마디도 못하는걸! 넌 지금 영어로 말하고 있고, 잘하고 있는 거야. 대단한 거야!"

  

  사실 영어공부를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말하는 게 맞나, 문법이 틀린 건 아닌가, 뉘앙스가 이상하게 전달되며 어쩌지 등등. 하지만 막상 대화를 해보면 대충 다 의사소통이 된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어쨌든 미국에 와서 한 달 동안 첫째, 둘째 모두 교육기관에 보내기 위한 등록을 영어로 했으니 말이다.)


 자유재자로 구사가 되지 않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외국인의 격려(?) 덕분에 그 이후로는 조금 편안해졌다. 특히 상품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해야 할 때는 더욱더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내가 아는 영어를 총 동원할 것이고, 그들은 내 얘기를 알아듣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며, 더 간절히 내 이야기를 알아듣고 싶은 쪽은 상대방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한마디로 영어를 못하지만,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할 줄 아는 나를 잊지 않으며, 주늑들지 않고 당당하게 말한다. 영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 대부분의 일상생활은 나의 미천한 영어실력 테스트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한다.



  '외국인의 영어 잘한다, 잘한다'의 주문에 배짱과 용기를 양 어깨에 하나씩 두르고 다니다가도, 마음이 종이인형처럼 펄럭댈 때가 있다. 같은 한국사람이 영어발음도 좋고 유려하게 문장을 구성하는 것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주늑이 든다.

  어제 우연히 길에서 첫째 아들 반의 유일한 한국인 친구 엄마를 만났다. 외국인 엄마 2명 사이에서 멀리서도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같이 노는 아이들에게도 매우 자연스러운 억양과 발음으로 영어로 외국 아이들과 영어로 대화하며 나에게 다가온다. 흡사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었고 상대적으로 나는 쭈꿀쭈꿀한 오징어가 되어버렸다.

  무급 육아휴직자인 나는, 요즘  아이들 교육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있다. 그래서 이래저래 아이의 영어공부에 대해 고군분투 중인데 제일 좋은 영어방법은 "Play date"로, 아이가 외국인 또래 친구와 자연스레 놀면서 배우는 영어로서 아이가 어릴수록 그게 좋다고 한다. 근데 이게 좋은 것은 알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그것은 그렇게 내 아이를 외국인 친구와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부모가 그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영어로 상대 외국인 친구의 부모와 외부에서 만나서 놀 약속을 잡거나, 혹은 집에 초대하거나 등등 영어로 의사소통을 계속해야 만남이 지속되고, 아이가 놀고 있을 땐 영어로 그 부모와 잡담(small talk)을 나눠야 한다. 만나는 약속이야 뭐 고정된 문장을 외운다 치지만, 자유로운 주제의 영어회화를 즉석에서 해야 한다는 게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아이에게는 "영어로 말하다 틀려도 괜찮아. 뭐 어때? 우린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데. 자꾸 해봐"라고 하지만, 막상 내 아이가 보고 있고 내 아이의 친구마저 보고 있는 상황에서 엄마인 내가 실수하고 버벅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니다. 영어 수업시간에 틀리는 건 배우는 학생으로서 배움의 기회를 얻는다고 위로하지만, 아이가 중간에 끼어서 내가 부모로서 영어를 하는 순간은 참으로 어렵고 주저돼서 웬만하면 말을 하지 않고 치아를 8개 이상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것으로 내 마음을 표현한다.

   그렇게 나와 사뭇 다른 내 아들 친구의 엄마를 만나고 와서 풀이 죽었던 하루를 마치고, 또 새로운 아침이 밝아왔다. 타인과 나를 비교를 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게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면서, 굳이 비교를 하자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 보자고 다짐한다. 아들에게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한 거라고 침 튀기며  강조하던 것을 나에게도 적용해 본다. 갑자기 오늘 내가 영어를 유려하게 잘하진 못하겠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유튜브로 영어회화강의를 듣고 밤에는 영어수업도 가고 하면 어제의 나보다는 분명히 영어가 한 꼬집만큼은 늘 거라고 본다.  그렇게 느리지만 멈추지는 않은 채,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보려 한다.



  덧. 사실 외국인과 말할 때도 초 긴장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아이들 선생님과 말할 때이다. '나는 한국인인데 영어도 하고 있다'라고 주문처럼 외워보아도 오늘처럼 첫째 아들반 담임선생님의 상담요청에는 전혀 먹히질 않는다. 영어로 abc만 겨우 알고 와서 9시부터 4시까지 하루종일 학교에 앉아있을 첫째 아이의 고통을 체감하러 간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또 쥐어짜본다. (사실... 어떤 말을 갖다 붙여도 정말 가기 싫다... 하하하. 이럴 땐 잠시 엄마역할 활동중단하고 싶다. 흑)

[지금은 아침 8시인데, 저녁 8시가 보고싶다. 저녁8시엔 모든 일정이 다 끝났겠지?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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