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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Mar 15. 2023

꽃이 펴도 봄이 온건 아니고, 눈이 와도 겨울은 아냐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계절에서 버티는 방법

  그제 벚꽃이 흩날리는 것을 보고 봄이 왔다고 믿었다.  어제 회색하늘에서 벚꽃이 떨어지는줄 알았는데, 하얗고 차가운 눈이  내렸다. 오늘은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쏟아지는 햇빛에 문을 열어보니 겨울바람이 나를  반겨 이내 문을 닫고 만다. 이 모든 게 하루 만에 휙휙 변하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 이 사진을 2월에 찍었는데, 지난 주말엔 눈이 왔고, 오늘은 강풍에 나무가지가 펄럭인다 >

  요즘엔 한국도 그렇지만, 이곳의 날씨는 워낙 변덕스러워서 3번째 겨울을 지나야 비로소 진정한 봄을 맞이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작년에는 이곳에 폭설이 내렸다는 말이 무색하게, 올해는 이게 눈인가 싶을 정도로 희미한 눈만 남겼던 겨울이 벌서 지나가버리고 벌써 3월 중순이다. 달력으로 봐도 그렇고, 양지바른 곳에는 이미 꽃이 지고 초록잎이 돋은 벚꽃나무를 보아도 지금 계절이 봄인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한껏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밖을 나갔는데, 다시 돌아온 겨울바람이 매서워서 놀란 거북이마냥 목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다.


< 봄이라고 다 같은 봄이 아니었다. 'Actual spring'을 기다린다. >


  웅크리고 있는 것은 비단 내 목만이 아니다. 사실 내 마음도 그러하다. 이제는 겨울을 건너고 긴 터널을 잘 지나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춘삼월에 내리는 뜻밖의 눈처럼 예상치 못한 일들은 나를 다시 얼어붙게 만든다. 아무리 지금은 3월이라 밖에 꽃이 피어도 그 꽃 위로 눈이 내릴 수도 있는 것처럼, 내 마음 역시 지난했던 겨울을 지나 현재는 봄이 왔다고 믿었건만 며칠째 겨울이 불쑥 찾아와 버리니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겨울엔 오리털 점퍼에 따뜻한 장갑과 목도리까지 칭칭 감아서 무장을 하고 겨울바람을 맞이하기에 그나마 견딜수 있었는데, 맨살에 갑자기 불어닥친 겨울은 오히려 내 폐 속까지 깊게 한기로 남아 버린다.

< 햇살이 따뜻한것을 넘어 따가울 정도였던 1주일전. 그래서 선글라스까지 끼고 산책을 했는데, 오늘은 강풍에 추워서 밖에 나가지도 못한다 >

  1주일 전만 해도 한낮에는 기온이 20도씨까지 올라 산책할 때 외투를 입지 않았고, 앞으로는 더욱 따뜻해질 것이라는 기대에 봄에 입으려고 가져온 하늘하늘한 원피스도 미리 꺼내두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잠시 미뤄두고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는 내 마음이 그리 가볍진 않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날씨를 바꿀 수는 없지만, 날씨에 알맞은 옷으로 갈아입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재빨리 해본다.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겨울의 냉기를 막아본다. 또다시 봄이 오길 기다리면서.


< 거센 바람에 국기가 찢어질듯 펄럭이는 소리에 놀라서 찍은 사진이지만, 고정된 사진에서는 평안해보인다. 이처럼 보이는것과 실제는 다를수 있다. >

  오늘의 날씨가 내 마음대로 안되기에 그것에 순응하는 것처럼, 나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내가 막을 수 없음을 인식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벚꽃이 떨어질 정도의 강풍이 부는 봄날엔 3월이라고 해도 넣어뒀던 겨울코트와 목도리를 자연스레 꺼내 입듯이, 내 마음에도 갑자기 겨울이 찾아왔다면 그 겨울을 맨몸으로 이기기보다는 나를 보호해 줄 무언가를 찾기로 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왜 3월에 이렇게 춥고 난리지 등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에 불평불만하기보다는 침착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대응해 나간다. 내가 지금 단백질을 부족하게 먹 않았는지 살펴보고 아침엔 달걀프라이를 하나 해 먹고, 너무 추워서 1시간 산책을 하기 어렵지만 10분이라도 햇빛을 쬐려 노력한다. 수면시간을 철저히 지키며 10분 더 일찍 잠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5분이라도 스트레칭을 해본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마음대신, 내가 다루기 쉬운 몸을 건강하게 만들며 또다시 올 마음의 봄을 기다린다.


   3월에 눈이 와도, 심지어 4월에 눈이 내린다고 해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다. 눈이 온다고 다시 겨울이 돌아온다고 믿는 사람도 없다. 그저 해프닝이라고 웃어넘기고 버티며 기다릴 뿐이다. 마음 역시 그렇다. 몇 가지 일들이 내 심장을 얼어붙게 만든다고 해도 다시 인생의 겨울로 돌아간다고 믿지 않는다. 봄을 질투하는 마지막 겨울의 선물이라 생각하며 애써 넘기며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내 마음에 반드시 봄을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덧.

그렇게 여러 번 마음의 겨울을 지나고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에게도 좋은 방법들이 있었다는 걸.


남편아... 이번주 토요일은 시간을 비워야 할 거야.

운전할 너를 위해

그리고 쇼핑할 나를 위해


당황하고 황당했겠지만, 나에겐 당연했어.

나의 1프로는 신상 가방으로 채울게.

 * 공허한 몸과 마음을 단번에 채울 수 있는 합법적 마약(?)인 '쇼핑치료'로 긴급 CPR이 들어갈 거라는 것을 위와 같이 남편에게 고지합니다. (이상 '더 글로리'에 과몰입한 채 주말쇼핑을 기다리는 나다움이었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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