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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Apr 16. 2023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그 말은 사실

잠시 쉬어  생각해 본다,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인지.

  요새 주문처럼 매일 외우는 말이 있다. 바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이다. 대외적으로 나는 현재 무급 육아휴직자로서  딱히 뭔가 그럴싸한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뭔가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과로상태라고 주장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 아침에 아이 둘을 각각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내가 온전히 집에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약 2시간가량, 주 4회로 일주일 동안 나에겐 8시간의 자유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완전히 나를 위해서만 쓸 수 있느냐, 그것은 또 아니다. 집에 있다 보면, 아침에 애들이 남기고 간 불어 터진 시리얼을 죽처럼 후루룩 넘겨야 하며, 널브러진 양말짝을 보물찾기 하듯 침대밑까지 뒤져가며 찾아내서 세탁기에 넣어야 하고,  발바닥을 찌르는 굴러다니는 레고를 줍기 시작해서 시작한 청소를 하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은 사라지고, 애델릴라로 변신하여 아들을 모시러 간다. 그리고 아이들이 집에 오면 나 혼자만의 시간은 그렇게 사라진다.

  

  물론, 우리 가족을 위해서 보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할 수 아니하지 않을 것이다. (3중 부정이니 그냥 부정이다. 하하하) 이런 나를 신랑은 중 2병 걸린 청소년 보듯 보며, 모성애 없는 엄마라고 힐난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런 일에서는 전혀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내가 소진되는 느낌만을 받는 것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을 하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끼워 넣으며 내 삶의 활력을 애써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는 주변인이 보기에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원래 난 굉장히 게으른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들이 내 방에 오면  방바닥에 널브러진 옷무덤과 기타 잡동사니들을  내 두 발로 쓱쓱 밀면서 방으로 진입하곤 했다. 이 모습에  당황하는 친구들에게 침대 위로 올라가라고 하고 난 또 태연히 앉아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내 착한 친구들은 나 대신 불편해하며 청소를 해주곤 했다.) 지금도 여전히 게을러서 나 혼자 있을 땐 배고파도 그냥 누워있는다, 유튜브로 먹방을 보면서 그냥 상상만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천성대로 살 수는 없다. 난 애둘 엄마이고, 안 되는 영어를 쥐어짜며 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놓이는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일은 안 하는 무급 육아휴직자이지만, 그때보다 더 바쁘게 하루를 보내는데도 뭔가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회사에 다닐 때는 내가 일을 잘 하든 못하든 월급날에 통장에 적힌 금액을 보면 내가 1달 동안 일을 했구나, 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실감했다.  하지만 집안일이란 것은 하다 보면 끝도 없고, 우리 두 아드님(더하기 어머님 아드님)은 만족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들로 언제나 내게 더더더 만 외쳐대는 탓에 보람을 느끼기 힘든 구조이다. 그러다 보니 외적보상에 익숙한 나는 요새 슬럼프이다. 자꾸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는 말을 하면서, 잡다한 퀘스트들을 하나씩 억지로 깨부수며 하루를 보낸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하면, 지금처럼 굳이 영어를 배우겠다고 ELS 수업에서 안 되는 영어 때문에 내 생각을 줄이고 줄여서 말하고  틀린 문장을 고치는 연습을 안 해도 된다. 굳이 사서 답답함과 민망함을 안 느껴도 되는 것이다.  글을 안 쓰고 공모전에 글을 안내면, 아예 떨어질 일도 없기 때문에 실망할 일도 없다.

  아이들 영어공부 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굳이 애들 끼고 영어책 한 권이라도 더 읽혀보려고 안 되는 엄마표 구연동화 하기, 낯을 심하게 가리는 내 아들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친구와 친구엄마에게 건치미소 날리며 대화하기를 중단하고, 원래 애들은 알아서 다 잘한다며 그저 TV만 틀어주고 내 자유시간을 추가로 확보해도 된다. 청소도 하기 싫으면 안 보이는 곳으로 다 밀어 놓으면 되고, 움직임을 최소화하면 배도 덜 고파져서 조금만 먹거나 안 먹을 수 있다. 뭔가 내가 바라는 일을 내려놓으면 그만큼 그것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자 한순간에 다 시큰둥해지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졌다.

 

  브런치스토리도 마찬가지였다. 쌓여가는 글감과 늘어가는 사진들을 보며 이렇게 글 써야지, 하고는 서랍 안에만 넣어둔다. 심지어는 내가 좋아하는 쇼핑도 장바구니에만 담아놓고 결제를 누르지 않는다.(자동결제 저장해 뒀던 국내 사이트들과 여기는 새로 입력해야 하기 때문인데, 그 카드를 가지러 가는 게 귀찮아서 결제를 미루다 보면 품절이 되곤 한다. 하하하) 하고 싶은 일들을 수첩에 적어놓지만, 그마저도 해야 할 일들에 뒤쳐져 또 잊히기 쉽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다 안 하면 어떨까? 하고. 이제야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좀 놀랍기도 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순간 이너피스가 찾아온 동시에 근본적인 물음이 생겼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없었을 것들을 생각하니 또 그게 아쉬웠다.  나만의 탈출구로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내 책이 이 세상에 나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영어를 배우기 위해 ELS수업에 나가지 않았다면, 미국에서 눈치 안 보고 남편 험담을 할 수 있는 외국인 친구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국적은 달라도 하는 행동은 비슷한 전세계 남편들의 공통점에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하하하)

  뭔가 하지 않았으면, 얻지 못했을 것들을 생각하니 실망하고 부딪히고 좌절해도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묵힌 체증이 조금은 내려간 느낌이다.


  오늘도 2시간 일찍 마치고, 내일은 휴교인 아들을 맞이하기 전(오늘 오후부터 긴 주말이라는 뜻이다) 잠시 망중한을 즐기며 오랜만에 좋아하는 브런치 스토리를 쓰며 체력을 끌어올리는 나에게 신랑은 계속 시비를 건다. 직접 말하면, 손뼉이 부딪혀서 소리가 나기 때문에 난 직접대면 대신 온라인 공간에 간접답변을 쓴다.


"일 좀 해라"

: 나 브런치 스토리에 글 쓰고 있다, 이거 엄연히 일이다. 향후 소득창출에도 기여한다고.

"넌 애들 위해서 요리할 생각은 없냐?"

: 지금 너에게서 요리까지 뺏으면, 넌 집에서 뭐 할래? 남자애들인데도 엄마인 내가 목욕시키고 있는 상황을 보고 얘기해라.

"애들하고 시간을 더 보내줘라. 엄마의 사랑이 부족해서 그래."

: 난 애들하고 시간 충분히 보내고 있다. 아빠의 사랑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금이라도 하길 바란다)

"부인 영어 배우러 다니게 내가 애들도 봐주고 하잖아."

: 넌 너만 좋아하는 골프 배우러 다니게 내가 배려해 주는 건 생각 안 하니? 내가 배운 영어로 급할 때 내가 다 외국인과 얘기하는 거 기억해라.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요새 왜 이렇게 무기력해졌는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공간은 현대 미국이지만, 사고방식은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는 나의 드림킬러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서 그런 것 같다. 심리 상담선생님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내가 희생해서 다 혼자 하고 있는 거다,라고 생각할 수도 지만, 내가 상대방에게 기회를 뺏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남편이 집안일을 할 수 있는 기회, 아이들과 친해지는 기회를 내가 대신함으로써 뺏고 있는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해요. 그리고 지금이라도 그 기회를 돌려줘해요. 그러려면 얼마간의 조정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시간을 또 버텨야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수 있어요. 한 가지 팁을 알려줄게요. 남편이 그동안 내가 하던 일을 본인이 하면서 툴툴대고 나에게 시비를 걸 수 있어요. 그럴 때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싸, 스트라이크! 지금 내가 잘하고 있구나.' 하고요. 균형점을 다시 찾아가는 시그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버텨보세요."


  나에게 '매정하고 게으른 애둘엄마에 현재 돈 안 버는 가정주부'의 프레임을 씌워 가스라이팅 하면, 난 외국인 앞에서 못 알아들었을 때의 표정으로 그냥 웃어넘기고 만다.(속으로 '스트라이크'를 외친다. 후훗) 시비의 정도가 지나치면 또 세게 화를 내주기도 한다.(그럼 내가 하는 거랑 바꿔서 할래? 네가 영어 배우고 애들 케어다 하고, 내가 요리만 할게. 어때?)

  과도하게 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아등바등 더 열심히 살기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게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인가?  무언가 대체 가능하며, 내가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는 일이라면 투쟁해서라도 내려놓아 본다. 그렇게 아낀 시간을 나에게 투자해 본다. 선순환으로 끌어올린 에너지로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보려 한다.


  비록 내가 생각했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또 한 번 크게 느끼지만, 이상주의자인 나에게는 이레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겨본다. (대신 한 번만 더 시비 털면, 난 굳이 말 안 통하는 타국에 묶여있어야 할 계약이 없는, 자유로운 무급 육아휴직자는 한국으로 돌아가 복직할 테다. 맞아, 이거 협박이야. 하하하) 세상에 절대 안 되는 것은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나 스스로 지고 있던 배수진을 물리며 그렇게 더 내려놓아본다.



덧.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그 말 사실은' 맨 앞에 '너와'가 생략된 거였어. (너님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야. 하하하)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놓지 않은 채 계속 갈 거야. 이런 나에게 불만 있음 대체해 보시든가.(가장 민주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인 우리 집 다수결로 해도 대체되는 건 내가 아닐 텐데.)

그게 안되면 이제 네가 변할 차례야. 적응하길 바라.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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