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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Apr 16. 2023

나의 꽃놀이, 아니 나의 외출을 막으려는 남자들에게

집돌이들의 단체 가스라이팅을 피하는 방법

 미국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 매콤한 쌀떡볶이와 야채튀김, 따끈한 순댓국과 소주 한잔 등은 진작에 내려놓은 채 넷플릭스에서 보는 것으로 대리 만족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있다. 아니, '지금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워싱턴 DC에서 하는 'Cherry Blossom Festival'에 가는 것이다. 물론 꽤 수많은 난관(?)을 거쳐야 가능하다.

1단계 : 회유하기

  벚꽃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거다, 집 앞에 있는 벚꽃과 워싱턴 DC의 벚꽃의 차이점은 뭐냐, 사람이 엄청 많다던데 꼭 가야 하는 거냐 등 우리 집 남자들의 반박을 설득하는 게 첫 관문이었다. 그래서 파란 호수와 누가 봐도 미국 스러운 건물과 함께 찍힌 벚꽃사진을 들이밀자 우선 워싱턴 DC에 벚꽃 보러 가는 것으로 합의를 이뤄냈다. (그래도 안 통해서 약간의 협박과 신세한탄을 했던 것도 고백한다. 남들은 멀리서도 이 벚꽃 보러 온다는데 가까운데도 안 갈 거냐, 그럴 거면 여기는 왜 왔냐 아예 한국에 있지, 자꾸 이런 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건 다 거절하면 어머님 아들 좋아하는 골프랑 내 아들이 좋아하는 곤충채집 못하게 방해할 거다,라고. 벚꽃구경 한번 가기가 이렇게 힘든 일이다.)

2단계 : 준비하기

  주변에 워싱턴 DC 벚꽃축제 가봤냐고 물어보니 다들 한 번은 가볼 만하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물론 벚꽃은 매우 좋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두 번은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내가 물어본 사람들은 여기서 영구거주하는 사람들로, 2년이란 시한부 미국살이를 하는 나처럼 이때 아니면 안 되라는 절박함이 없다.

  우선 난 사람이 많든 적든 우선은 가는 것으로 정했기 때문에, 사람이 매우 많아 혼잡하다는 정보만을 취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지 차를 가져갈 경우 매우 일찍 출발하기로 맘먹는다. 일요일 워싱턴 DC는 길가 주차(street parking)가 무료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워싱턴 DC에 갈 일이 있으면 일요일만 가는데,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으로 일요일에 더 몰릴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벽 6시 반에 출발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목표는 그렇고 실제로는 아침 7시에 출발해서 30분 만에 도착했지만, 이미 주차 자리는 없어서 몇 바퀴를 뱅뱅 돈 후에야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참고로 그 시간에 이미 벚꽃을 보고 돌아가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벚꽃보기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긴 하다. 하하하)

3단계 : 치고 빠지기

  일단 벚꽃 스폿에 도착하면 최대한 많은 사진을 남겨야 한다. 물론 눈으로 보는 것도 매우 좋지만, 어차피 남는 것은 사진이기에 프사로 남길 수 있을 만한 퀄리티의 사진을 찍어야 한다. 여기서 주의점은 그냥 꽃만 배경으로 찍으면 여기가 여의도인지 워싱턴인지 차이점이 없다는 우리 집 남자들의 불만이 또 제기될 수 있기에, 뭔가 미국 스러운 조형물과 함께 찍어줘야 한다. 그래서 조형물도 나오면서, 많은  인파들이 최대한 덜 나오는 지점을 찾아서 우리 가족과 벚꽃만 나오는 구도를 찾아서 사진을 찍어댄다. 물론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나의 일행의 말은 듣는 척하며 가볍게 무시한다. 내년에 또다시 올지 미지수이기 때문에 눈에도 담고 카메라에도 연신 담아댄다. 그렇게 경보하듯 빠른 걸음으로 한 바퀴를 휙 돌고 어렵게 주차한 차로 다시 돌아온다.

<같은 날 찍은 벚꽃길이지만, 왼쪽처럼 찍으면 여의도랑 뭐가다르냐는 비난을 막기위해 오른쪽 처럼 미국의 상징물과 함께 찍어본다 >


 사실 이 날 하마터면 벚꽃놀이를 포기할 뻔했다. 보통 나의 외출을 방해하는 사람은 어머님 아들인데, 그날은 예상치 못한 내 아들까지 합세했다. 신랑이 말했던 출발시간이 지나서 바쁘게 외출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들이 와서 내 머리를 빗어주며 얘기한다.

아들 : "엄마, 근데 우리 꼭 오늘 꽃놀이 가야 해?"

나 : "응. 꼭 가야 해. 그러니까 너도 얼른 준비해."

아들 : "여기 더 이쁜 꽃이 있는데 굳이 밖에 나가야 할까?"

나 : "무슨 꽃? 우리 집에 꽃이 어디 있어?"

아들 : "바로 엄마. 엄마보다 예쁜 꽃이 세상에 어딨어. 그러니까 오늘은 집에 있자. 예쁜 엄마꽃 보면서"

<아들이 평소엔 엄마를 그릴때 눈코입과 같이 꼭 필요한 부분이 바로 주름이다. 평소엔 엄마를 저렇게 그려놓곤 본인이 필요할땐 꽃으로 포장하는 임기응변의 소유자>

  나를 평소에는 남들에게 두꺼비로 소개하는 아들의(이유는 '엄마가 주름이 많아서'라고 간결히 대답하는 극사실주의자) 예상치 못한 공격에 광대가 승천하고 잇몸이 마르며 와르르 무너질뻔했다. 그렇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시 외출준비를 해서 꽃놀이를 무사히 다녀온 거다.  


  나의 외출을 막아서는 것은 이 집안의 유전인가. 왜 나의 외출을 막으려는 것일까. 정답은 나의 고립이 곧 그들의 행복이란 결론에 이른다. 엄마가 언제나 곁에서 놀아주기를 바라는 우리 집 두 아들과 그런 나를 두고 본인은 밖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어머님 아들을 보며 나는 애써 자기 최면을 걸어본다. 내가 좋아하는 일(글쓰기, 책 보기, 영화 보기)들이 집에서 혼자 하는 일이라고, 지금은 아이를 돌봐야 하는 일을 그 누가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말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선호하는 나에게 지금의 상황은 어딘지 모르게 갑갑한 것은 사실이다.

 가끔은 창살 없는 감옥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여기선 차가 없으면 어디 나가지 못하는데 사고 난 다고 내가 운전을 못하게 한다. 그런데 동시에 둘째 아들 프리스쿨 데려다주는 것도 운전인데, 집에서 15분이나 걸리는 꽤 먼 거리인데도 그건 또 내가 해도 된단다. 또한 여기선 다 하는 골프도 못하게 막고, 주변에서 같이 골프 나가게 배우라고 권유하는데 내가 바쁘다며 대신 거절해 준다.(이게 무슨 논리인가 싶지만,  자기 주관 뚜렷한 운전기사님과 쓸데없는 매니저를 한분 뒀다 생각하기로 했다. 하하하)

  한국에서였으면 내가 채용한 적 없는 운전기사님과 매니저이기에 가차 없이 무시했겠지만,  9시에 갔다가 12시면 집에 돌아오는 둘째 덕분에 나 아니면 애들 볼사람이 없는 구조와 낯선 미국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그냥 묵묵히 인내하며 따라주고 있다. 동시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투쟁이 필요한데, 이제는 그 투쟁에 필요한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서 그저 꺾이는 중이다. 내 최소한의 의무만 다해가면서.  

  

 

  확 터지는 저 꽃잎들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분노가 확 터진다. 그러더니 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잎처럼, 내 에너지도 주체할 틈 없이 떨어진다. 그렇게 떨어져서 나뒹구는 벚꽃조차 아름다운 봄날의 배경과 달리 나의 마음은 어지럽고 막연히 계속 가라앉기만 했다, 한동안.

  그러다가 겹벚꽃이 다시 피는 거리를 보며 생각한다. 익숙한 벚꽃은 지고, 또 다른 모양의 예쁜 벚꽃이 찾아오면 그것을 그것대로 맞이하듯이 내가 바랬던 이상적인 생활은 점점 멀어지지만, 예상치 못했던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그것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예를 들면 아들이 나에게 우리 집에 가장 예쁜 꽃이라고 했던 사탕발림 같은 말, 가기까지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어쨌든 다녀온 워싱턴 벚꽃축제 등등. 과정까지 내가 바라는 대로 착착 되지 않았다고 그 결과마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반대로 결과가 나의 예상을 빚 나가더라도 과정이 괜찮았다면 그 역시 부분 점수를 줘본다.   

  그렇게 또 겹벚꽃이 지고 나면, 만나게 될 또 다른 꽃을 기대한다. 지나간 꽃을 아쉬워하지 않고 새로 필 꽃을 조급하게 기다리지 않은 채, 그렇게 지금 내 곁에 핀 꽃을 보며 하나하나 마음에 새겨본다. 그렇게 나의 하루를 꽃처럼 채워가 본다.




덧.

누가 이 벚꽃을 보러 가냐고 우리집 남자들은 투덜댔지만, 사실 그날 워싱턴 벚꽃길에서 옆집도, 앞집도 만났다. 사전에 약속하고 간 것도 아닌데, 우리 이웃들 모두 그곳에서 만났다.

 

자, 봤지?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내 말듣기 잘했지?

근데, 내년에 또 오는 건 귀찮지? 어차피 벚꽃이 거기서 거기고 올해 워싱턴 벚꽃과 내년 워싱턴 벚꽃이 뭐 크게 다르겠어?


그래서 내년엔!!

나 혼자 갈게,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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