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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Feb 15. 2023

그래서, 영어는 좀 늘었어?

미국에 산다고 해서 저절로 영어가 늘지 않는다.

친정엄마와 통화를 하면, 항상 하시는 질문이 있다.

"영어는 늘었어? 영어로 얘기해 봐!"

물론, 손주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아들의 다소 황당한 표정을 대신하여 대답해 준다.

"엄마... 우리 미국 온 지 한 달 되었어. 그리고 미국에 산다고 저절로 영어가 늘지 않아. 그만 좀 물어봐."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보다 미국에 6개월 또는 1년 먼저 오신 분들도 나와 똑같이 얘기한다.

"미국에 산다고 해서 영어가 저절로 잘되진 않아요."

그도 그럴 것이 영어에 노출되는 절대적인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 일 것이다. 거주지는 미국이지만, 집안에서는 한국어를 쓰고, 밖에 나가서 쓰는 생활영어는 한정적이며, 나 같은 육아휴직자는 생계를 위해 영어를 할 일이 없기에 더더욱 영어에 대한 의지는 시간과 반비례하여 떨어진다. 그래서 대부분 6개월쯤 되면, 영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분들과 여전히 안 되는 영어와의 고군분투를 하는 사람으로 양분된다고 한다.

  사실 나는 영어에 그리 집착할 생각이 없었다. 뭐 대충 마트 가서 물건 살정도만 되면 되지 않겠나 싶었고, 굳이 귀찮게 늘지도 않는 영어공부를 더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당장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영어로 숙제를 받아오면 지금은 내가 도와줘야 한다.(정확히 말하면 내가 거의 한다. 우리 아들은  ABC노래만 알고 있기에) 게다가 방구석 호랑이인 둘째 아드님은 어린이집(Preshcool)에 있는 장난감도 안 만지고, 간식도 전혀 안 먹는 관심학생(?)으로서 선생님과 지속적으로 의견교류를 영어로 해야 한다. 물론 잘 구현된 인터넷 번역을 활용하여 여차저차 잘 버티고는 있지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제일 중요한 것, 물론 육아휴직자로서 '육아'에 전념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24시간 밀착육아에(아직도 7세 아들은 자다가도 내가 없으면 엄마가 사라졌다고 운다. 아들아, 사라질 곳이 있음 좀 알려주련? 울고 싶은 건 엄마란다. 하하하) 집안에만 있어서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모르는 삶이 지속되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모든 것이 한 달 안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하하하)

[여러가지 수업을 듣고있어서 책도 한권이 아니다. 저  책들은 고이 가방에 잠자고있다가 수업시간에만 빛을 본다. 하하하]

  그래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육아에서 해방되기 위해 내가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처음엔 미국에선 심심해서 다 한다는 골프를 해볼까 했으나, 어린이집(Preshool)에 잠깐 스쳐 지나갔다 오는(월~목, 9시에 갔다가 12시면 끝난다) 둘째 덕분에 나의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며, 운동신경 0인 내 체력은 아껴둬야 한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나는 영어를 배우러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엄마도 아이들이 낯선 환경에서 영어공부하는 것을 같이 체감하며 아이들의 고충에 대해 이해하고, 엄마의 영어실력 향상을 통해 아이들 영어교육의 질 향상이라는 거창한 이유를 둘러댔지만, 사실은 그냥 밖에 나가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실제로 자기소개할 때도 그렇게 얘기했다. It's my free time... 하하하)

  또 난 뭐 하나를 하면 알아보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평일 5일 중 4일은 대면수업을 신청하였고, 나머지는 온라인 강좌를 촘촘히 박아놓았다. (내 스케줄만 보면 영어에 진심인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난 내 자유시간이 목마른 육아휴직자이다. 하하하)


  이렇게 해도 영어가 늘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수업시간에 맨 앞줄에 앉아서(영어는 못해도 앞줄은 포기 못한다. 하하하) 소심하게 웅얼거리며 대답하는 수준이기에 갑자기 6개월 후에 영어가 유창하게 되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래도 매번 수업을 갈 때마다 그곳에 오는 사람들의 열정에 나의 무뎌진 영어공부에 대한 의지를 다시 갈고닦고 온다. 미국에서 산지 10년이 넘어서 생활영어는 다 하시지만 좀 더 디테일하게 영어공부를 하고 싶다면서 오시는 한국 어머니,  직장에 다니며 아이 케어까지 하고도 지난 수업에도 출석률 100% 라는 Roxanna 등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영어수업을 듣는다. (매일 일 끝나고 한 번도 안 빠진 비결을 묻자 Roxanna는 수업 들으러 집을 나오는 게 쉬는 거라는 명언을 남기며, 나의 롤모델로 자리 잡는다. 하하하)

  어제도 첫째 아이 스쿨버스를 기다리면서 만난 한국인 엄마와 수다를 떨다가 내가 영어를 (굳이) 배우러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셨다. 본인도 1년은 영어배우겠다고 열심히 했지만, 영어가 쉬 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는 지금 아예 포기했다면서 나에게 더 좋은 길(?)인 골프를 안내해 주셨다. 사실 미국에 와서 영어배우러 다닌다고 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신기하고 특이한 생물체가 나타난듯한 반응을 보인다. 각자의 경험치에 의거하여 아마 작심 (맥시멈)6개월일게 보여서 그런가보다.

  심지어 같이 영어수업을 들으시는 또 다른 한국분도 미국에서 남는 거라곤 운동밖에 없다며, 본인은 여기 와서 영어는 안 늘었지만, 근육량이 엄청 늘었다고 자랑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1년 후면 영어는 무슨 영어, 내 체력이나 늘리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육아에서 해방되는 나의 온전한 시간이며, 아이들에게 약간의 도움도 줄 수 있고, 나의 오래된 영어공부를 아예 끝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신나게 ESL(English Second Language) 수업을 들으러 간다.

 덧. ESL수업 참석률은 100%지만, 예습 복습 등은 안 합니다. 그냥 육아에서 해방되는 그 시간을 즐깁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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