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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Feb 15. 2023

이거 바람피우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라던데?

우리의 소비와 유머. 더  매운맛이 돼 가는 미국에서의 극사실 결혼생활

  우리 부부는 잘 안 맞는 로또 같은 부부지만, 잘 맞는 부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쇼핑이다. 뭐든 중고 시세부터 알아보고, 세일할 때만 신제품을 구매하며, 세일을 안 하면 쿠폰할인이라도 될 때 비로소 지갑을 연다. 그렇기에 쇼핑에서 만큼은 이심전심, 염화미소이기 때문에 각자 쇼핑을 한 후에도 서로에게 공유하며 "오, 잘 샀네."를 연발하며 서로를 독려해 준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신랑이 할인점에서 산 물품들을 꺼내놓는다. 꽤 두툼하고 제법 세련된 하얀 조끼를  단 $5에 사 왔다고 서문을 연다. 내가 입어도 괜찮을 듯해서, "어디 한 번 줘봐"라고 말하고는 강제로 뺏어 입어보곤 돌려준다.(기다려. 곧 내 것이 될 것이야. 음하하하)


  나의 만족한 표정에 신이 난 남편은 다음 타자로, 본인의 팬티 3장을 들이민다. 이건 내가 입을 수 없는 거고, 앞에 조끼가 $5니 팬티 3장 가격도 비슷할 듯하여 물어보지도 않고 있는데 신난 신랑이 먼저 얘기한다.

"이거 브랜드 속옷인데, 할인해서 $17. 내가 피부가 예민해서 면 100%가 아니면 피부가 빨개지더라고. 이게 면 100%에다가 브랜드라서 샀어. 잘 샀지?"

$5짜리 조끼 소개와는 달리 팬티 3장은 마치 방문판매 사원처럼 장황한 말을 늘어놓는 신랑을 보자 내 안의 악마가 꿈틀댔다. 예전 같음 그냥 속으로만 담아뒀지만, 이제는 시원하게 뱉어본다. 단, 매우 친절하고 온화한 미소와 털털하고 장난스러운 웃음을 섞어서.

"이거 브랜드 팬티잖아? 인터넷에서 봤는데 '갑자기 브랜드 속옷을 사는 것'이 바람피우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라던데. 뭐야? 그런 거야? 하하하"

 이번에도 현명한 소비였다는 피드백을 기다리던 신랑은 이내 똥 씹은 표정이 되어 눈을 흘긴다. 그리곤 역시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답변을 한다.

"그럼 팬티에 내 이름 써놓으면 되겠네. 네임펜으로 크게 '0.0.0'이라고 써놔. 됐지?"

크게 노여워하는 신랑의 반응에 뭘 또 그렇게까지 반응하냐며, 오히려 더 수상하다고 한 번 더 놀려준 후 아님 말고라며 쿨하게 넘겨본다. 그리고 옆에 있는 아들에게 말한다.

"아빠가, 이름 쓰는 거 도와달래. 저기 아빠 새로 산 팬티 있지? 거기에 아빠 이름 크게 써달래. 할 수 있어?"

엄마의 장난스러운 표정에 아들은 더 신나서 손에 쥐고 있던 네임펜으로 당장 이름을 쓰러 달려간다. 신랑은 다시 한번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하며, 아들을 급하게 말린다. 그렇게 상황이 종료되었다.



   아침에 둘째를 어린이집(Preshool)에 데려다주는데, 머리에 종이왕관을 쓴 선생님의 아침인사가 "Happy valentine's day"이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나눠줄 선물을 잔뜩 들고 신나게 뛰어간다. 이런 미국에서의 분위기를 반영하여, 아침에 나도 신랑에게 '웃음'이라는 밸런타인 선물을 주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하하하.

  미국에 와서 생각보다 더 비싼 물가에 매번 할인점이 아니면 쉽게 뭔가를 사기가 어렵고, 아이들 장난감은 그래도 쉽게 사지만 정작 자신에게 소비하는 것에 있어서는 엄격하다. 그래도 한 번씩 내가 사고 싶었던 물건이 세일을 하면 놓치지 않고 사며 작은 행복을 느낀다. 그 작은 행복을 서로 대놓고 응원해 주기 힘들지만(그 독려가 더 많은 소비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은근한 지지를 보낸다. (그리고 신랑의 브랜드 팬티 덕분에 나 역시 눈독 들이던 카라화분이 50% 할인하니 사러 간다고 했다. 소비의 선순환. 하하하)

   대부분의 것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치가 저하되고 닳아 없어지며 처음의 모습을 잃어간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약간의 여유, 얼마간의 믿음, 꾸준한 노력 등 많은 것들이 관계를 지속하는 윤활유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친절한 태도를 기반으로 나와 타인을 구분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특히 내 입장에서만 타인을 규정하지 않고, 솔직하게 물어본다.  오래 묵혀놓지 않고 그때그때 조금씩 툭툭, 약간의 유머를 섞어서 뱉어본다. 그러다 보면 문제가 사라지거나 작아져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게 관계가 유지된다.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내년 밸런타인데이가.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맞게 될 밸런타인데이는 올해보다 더 강렬한 농담을 던져줘야 하는데, 하며 말이다.  



   덧. 신랑, 미안하지만... 내가, 그렇게 까지 신랑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어(내 할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용량초과). 근데 반응이 생각보다 재밌어서 자주 던져줄게. 기대해도 좋아,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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