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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Oct 27. 2024

그 동안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

여행의 끝자락에 머문 도시들 : 시카고, 피츠버그 

 

  미국 여행을 하며 개인적인 소감은 '대도시'보단 '자연'이 좋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비교적 안전하고 아이들의 놀거리(흙, 돌멩이, 호수등)가 더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를 여행할 때는 꼭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사항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미국에서 도시를 갈 때면 아이들과 여행이라 해도 포기하지 않는 게 있는데 바로 미술관이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두 도시-시카고, 피츠버그-는 도시에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찾는 동시에 미술관을 가겠다는 두 가지 목표만 가지고 향했다. 

[ 시카고 피자 ]

  시카고에서 찾은 아이들의 즐거움은 '음식'이었다.  나야 미각이 둔하고 남이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지만, 아이들은 미국에서 먹는 음식이 어딜 가든 프렌치프라이와 치즈피자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장점이 다양한 음식점 사이에서 그래도, 그나마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을 수 있기에 도전해 봤다. 먼저 시카고 피자에서 유명한 딥디쉬 피자(Deep Dish Pizza). 주문해서 만드는데도 50분가량 소요되고, 늦게 가면 대기시간까지 있으므로 오전에 일찍 갔다. 4인가족이고, 그동안 못 먹은 설움(?)을 풀고자 큰 사이즈를 시켰으나 종업원께서 작은 사이즈도 충분하다며 만류했다. 과연 현명한 조언이었다. 파이처럼 바닥이 두툼하고 높고 깊이 쌓은 모양인데, 그 안에는 치즈와 토마토소스가 잔뜩 들어가서 묵직한 식감을 자랑한다. 평소 피자라면 보통 3조각까지 거뜬하게(?) 먹어치울 수 있는 소화능력을 가진 나도 1조각을 30분 넘게 먹었고, 결국 그 한 조각이 마지막이었다. 결국 네 명이서 네 조각을 먹지 못하고 포장해서 나왔다. 참고로 아이들은 치즈피자가 아니라며 먹기를 거부했다. 이로써 아이들의 흥밋거리 1번 후보군이었던 시카고 딥디쉬 피자는 탈락이었다.

[ 특별한 시카고 핫도그는 손도 안대고 평범한 감자튀김만 먹어대는 아이들이었다 ]

  다음 날은 시카고 핫도그에 도전을 해봤다. 기존에 먹던 핫도그가 소시지와 빵의 단출한 조합이었다면, 시카고 핫도그는 풍부한 재료가 특장점이다. 특히 피클, 토마토, 고추 등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핫도그 재료가 들어간 게 신선하고 영양적으로도 훌륭해 보였다. 의도와 비주얼은 그러했으나, 맛은 그에 미치지 못한 게 솔직한 평이다. 익숙한 것을 최선이라고 느끼는 것일까. 낯설어서 그런지 와! 이거 최곤데? 이런 감탄사는 안 나오고 그냥 무난했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새로운 것을 거부하며 프렌치프라이만 먹었다. 흑)   

  음식에서 큰 기대를 버리고 운송수단으로 전략을 바꿔봤다. 바로 시카고 수상택시였다. 이동 목적도 있겠지만 시카고 강에서 보는 '건물'이 목적이었다. 시카고는 건축의 도시이기도 한데, 1871년 시카고 대화재 이후 도시재건을 위해 새로운 건축 기술과 디자인이 앞다퉈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카고 건축물을 유람선에서 전문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시카고 아키텍처 투어(Chicago Architecture Tour)'가 따로 있다. 하지만 짧은 영어실력을 가진 나와 단타 집중력을 보유한 아들을 고려했을 때 유람선 투어는 적절치 않았다. 대신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설명이 없는 수상택시를 탔다. 물론 우리의 최종 목적은 시카고 타이나 타운에 가서 또 다른 먹거리를 찾아 헤매기 위해서였지만, 강을 타고 가면서 건축물도 보고 시원한 강바람도 맞아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자 함이 더 컸다. 

[ "와, 옥수수 건물이다!" 하고 잠시 집중 후 이내 다른 놀거리를 찾아간 아이들. 음... 그래, 그럴 수 있지. 허허 ]

  처음에는 아이들이 옥수수를 닮은 독특한 곡선형태의 건축물인 아쿠아 타워(Aqua Tower)를 보고 신기했으나 그게 시작이자 끝이었다. 나 역시 건축물에 대한 지식은 전무해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내기도 어려웠다. 아이들은 직접 물을 만져보는 게 아니라 그런지 흥미 지속력이 3분이 최대치였고, 결국 그렇게 시카고에서 아이들 흥미 찾기는 그만두었다. 

[ 시카고 미술관 ]

  그렇지만 나에게 남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미술관 투어였다.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은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들(모네, 고흐, 피카소 등)의 작품과 다양한 컬렉션으로 세계에서 유명한 미술관에 속한다. 특히 미술관이라면 갑자기 없던 에너지도 솟아나며 조금만 더 있다 가자고 아이들을 설득하는 게 기본자세였는데, 이 날만은 갑자기 찾아온 감기몸살에 내가 먼저 미술관을 나가자고 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 물론 원래 4시간 정도 있을 것을 생각하고 왔으나 2시간만 보고 온 것이라서 많이 못 봤다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명확한 것은 내 마음에 아쉬움이 남았다는 것이다. 아프지 않았으면 제일 좋았을 공간인데, 몸이 아프니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앉아서 쉴 의자만 찾게 된 것이다. 이로써 처음 시카고에 올 때 목표로 했던 아이들의 흥미 찾기와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 투어는 흐지부지 된 채, 바람의 도시(Windy City) 시카고를 나오게 되었다.

[인디애나 듄 비치 ]

  시카고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던 중 들렀던 '인디애나 듄 비치(Indiana Dunes Beach)'가 더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운 모래언덕과 미시간 호수(Lake Michigan)로 유명한 곳이었다. 특히 호수가 넓고 깊어서 바람이 불면 바다처럼 하얀 파도가 철썩거리는 게 특이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파도와 함께 신나게 수영을 하고 나서도 바다처럼 염분기가 느껴지지 않아 깔끔했다. 바다처럼 큰 호수 끝에 희미한 점처럼 보이는 시카고의 높은 건물이 있었다. 멀리서 본 도시는 좋았고, 가까이서 느낀 자연은 더 좋았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좋아하는 요소(물, 모래)가 가득해서 더 오래 머물고 싶고, 또 한 번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남았다. 

 

  시카고를 지나 인디애나 듄스를 끝으로 이제는 정말 집으로 가는 건가 싶었는데, 여행 중에 급하게 일정을 하나 더 만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피츠버그, 지인집에 들르는 것이었다. 지인도 역시 아이들과 여름방학이 강제 여행(?) 중이라 만나진 못했지만, 기꺼이 집을 내준 덕에 피츠버그에서 지친 심신을 충전할 수 있었다. 특히 피츠버그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케네디 과학센터(Carnegie Science Center)와 내가 좋아서 갔지만 아이들도 꽤나 신나 했던 앤디워홀 미술관(Andy Warhol Museum)이 만족스러웠다. 케네디 과학센터는 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체험하며 즐길 수 있는 시설이라 좋았고, 앤디워홀 미술관 단순히 수동적인 관람뿐 아니라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코너들 (예-Silver Clouds, Create Your Own Screen Test : https://warholscreentest.com/AWM)  이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했다. 그리고 피츠버그를 끝으로 기나긴 로드트립은 끝이 났다. 

[ 캐네디 과학센터(좌), 앤디워홀 미술관(우) ]

  마지막 여행 3일은 식상하지만 새삼 뼈저리게 느낀 점이 있다. 바로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여행임에도 아이들이 크게 아프지 않은 게 다행이라 여기던 찰나, 마음이 방정이었는지 시카고에 도착한 둘째가 아프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들의 열은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에 피크를 찍었고, 행여나 열이 오를까 노심초사하며 물수건으로 계속 몸을 닦아냈다. 아이는 그렇게 밤에 아팠고, 아이 간호로 2시간밖에 못 잔 나는 낮에 아팠으며, 그 여파로 아무리 좋아하는 미술작품이 눈앞에 있어도 몸이 아픈 고통을 이길 수 없었다.

  너무 안타까웠지만, 동시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그동안은 나와 아이들이 크게 아프지 않아서, 그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맛보고 했던 거라는 사실 또한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상비약으로 아이 감기가 잡힌 것도 감사했고, 내 몸살도 하루만 꼬박 아프고 다 나은 것도 다행이었다.(여행 후 약 2달은 에너지 절전모드로 조금만 무리해도 바로 몸살로 신호가 온건 논외로 친다. 하하하)

  건강의 중요성에서 좀 더 나아가서, 살아있다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번아웃과 체력고갈 이슈 등으로 인해, 회사원이 사표를 가슴에 품고 살듯이 죽음을 항상 마음에 품고 지냈었다. 좋았던 기억보다는 아팠던 상처가 더 크고 오랫동안 덮쳐서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긴 여행을 하며 깨달았다, 살아있다는 게 좋은 거라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에 가서 좋아하는 예술작품 앞에서 한참 서있을 수 있고, 아이들과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며 맛을 공유할 수도 있고, 바다처럼 넓은 호수에서 수영하며 햇살의 따스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 건강하게 살아있기에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하나둘 손에 꼽아가며, 천천히 음미하다 보니 나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미 많이 가진 것을 망각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겨야겠다고 다짐해 봤다. 



덧.

 시카고에서 아이들이 깔깔 거리며 웃었던 장소가 있었는데 바로 밀레니엄 파크(Millennium Park)에 있는 크라운 분수(Crown Fountain)였다. 두 개의 대형 스크린에서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고 일정 시간이 되면 입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형식이다. 아이들은 물이 나올 때마다 신나서 폴짝폴짝 뛰어다녔고, 덕분에 나도 시원한 분수를 바라보며 쉴 수 있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작은 물줄기에도 감탄할 줄 알고, 점프할 수 있는 힘이 매일 채워지는 걸 당연히 여기지 않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즐겁게 논다. 나 역시 그러고 싶다고, 그래야겠다고 마음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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