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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Oct 27. 2024

계획을 못해도, 계획과 달라도, 계획에 없어도

어떻게든 지나갑니다 : 데빌스 타워, 마운트 러쉬모어, 배드랜즈


  또 다시 이동이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계속 차만 타면 지루하니까 중간에 관광지를 넣는다. 차이점이라면, 오면서 들른 도시는 여정상 있는 그냥 평범한 도시였지만, 돌아갈 때 들른 곳은 좀 더 유명한 곳이라는 것. 파워 계획형이지만 아이들과 여행에서는 계획은 그냥 참고용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어딘지도 모른 채 가다가 차에서 급 공부하고 내리길 반복한다.

데빌스 타워(Devils Tower)

  그러다가 만난 데빌스 타워(Devils Tower)는 멀리서부터 그 존재감이 남달랐던 곳이다. 약 5천만 년 전 화산활동에 의해 생긴 주상절리로, 그 높이가 약 3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기둥이며 표면에 수직으로 뻗은 곧은 줄무늬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곰에게 쫓기던 소녀들이 이곳으로 오르자 곰이 바위를 긁어 생긴 자국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 한다. 도착하자마자 어김없이 주니어레인저를 하러 비지터 센터에 갔는데, 다들 외계인 모형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영화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1977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배경으로 외계인과 만나게 되는 장소로 등장한다. 심상치 않은 모양, 흥미로운 전설에 이어 외계생명체가 등장하는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 곳이었다. 한마디로 신비로운 분위기가 가득 풍기는 곳이었다.

  데빌스 타워를 밑에서 한 바퀴 쭉 둘러보는 트레일은 기묘했다. 걷다 보면 벼락을 맞아 줄기가 갈라지거나 검게 그을린 나무를 많았다. 이곳은 원래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에게 영적인 의식의 장소로 기도, 치유, 감사 등의 의식을 치르는 곳이었다고 한다. 주변 나무에 천이 묶여있었는데 이 역시 특정한 소망이나 기도를 상징이었다. 오색 천조각이 매달린 우리나라 서낭당과 비슷한 느낌이어서 그런지 친숙했다.

[ 데빌스 타워에 소원을 빌기위해 우리는 진지하게 양말을 걸었다. 그리고 잠시 앉아서 호흡을 가라앉히고 정신수련을 했다. 잠시라도 조용해서 좋았다는게 장점. 하하 ]

  가톨릭 신자지만 기복신앙을 좋아하는 이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하지만 사전 지식이 없이 그냥 왔기에 천이 없어서 난감했을 때, 우리가 이미 몸에 지닌  천 중에서 버리고 가도 되는 것의 후보군으로 아이들 팬티와 남편의 양말이 떠올랐다. 만약 영적인 존재가 본다면 소원을 반대로 이뤄주고 싶을 만큼 채취가 강한 것들이었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었고, 남편의 희생으로 양말을 선택해서 한쪽씩 아들들에게 쥐어줬고 나뭇가지에 잘 매달았다. 행동의 합리화를 위해, 오히려 양말의 냄새 때문에 다른 천들과 차별이 돼서 우리 소원을 먼저 살펴보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래도 혹시 역효과가 날까 봐 나는 이들과 선긋기를 했는데, 가방에 있던 일회용 반창고를 꺼내 나무에 걸었다. 하하하)  

마운트 러쉬모어(Mount Rushmore)

   데빌스 타워에서 기묘한 기운을 잔뜩 받고(?) 다시 이동을 하다가 익숙한 곳에 도착한다. 커다란 돌에 사람 얼굴이 새긴 것, 이라고 알던 "마운트 러쉬모어(Mount Rushmore)"였다. 미국의 대통령 4명(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얼굴을 블랙힐스 산맥의 화강암 절벽에 직접 조각한 것이다. 높이가 약 18로 매우 큰 규모의 인공 조각인데도 이질감이 별로 없는데, 산 자체가 캔버스로 큰 덩어리는 폭발물로 제거 후에 망치나 정을 이용해 세밀하게 다듬는 방식이었다. 인공적인 조각이 산과 잘 어우러져서 눈을 떼기가 힘든 곳이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유명관광지를 직접 보며 자세히 알고 나니 뿌듯했다.(사실 아이들의 주니어 레인저 책자를 풀다가 알게 된 사실들이었다. 참고로 역사적인 장소에서 푸는 주니어 레인저 책자는 자연관찰 위주의 공원과 달리 난이도가 상당하여 나, 파파고, 챗 GPT가 머리를 맞대어 풀 때가 더 많다. 역사적 관광지에서 주니어 레인저는 가급적 피해 가는 게 좋다는 말을 길게 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배드랜즈(Badlands National Park)

   러쉬모어를 지나서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배드랜즈(Badlands National Park)'에 도착했다. 이 공원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랜드 캐년'과 '브라이슨 캐년'을 섞어 놓은 듯했다.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협곡이 그랜드 캐년을 닮았다. 또한 황갈색, 흰색 등 다양한 지층 색을 나타낸다는 점에서는 브라이슨 캐년이 떠올랐다. 이 곳만의 특징이 있다면 바로 화석이었다. 고대 포유류 화석이 많이 발견된 지역으로, 이곳의 비지터 센터(Ben Reifel Visitor Center)에서는 실제 화석 전시도 볼 수 있었다.

  주니어 레인저 배지와 별개로 화석 관련 패치도 준다. 그런데 패치는 실제로 화석을 발굴하고 관련 절차(발견 사실 기록 및 이동 금지- 사진촬영- 파크레인저에게 신고)에 따랐을 경우 준다는 다소 엄격한 안내를 받았다. 아이들은 화석 발굴을 하러 가자고 제안했는데, 흡사 동네 편의점에 아이스크림 가자는 가벼운 말투였다. 아이들의 성화에 근처로 나갔고, 10분 만에 왜 이곳의 이름이 나쁜 땅(Badlands)인지 알게 되었다. 반건조 기후와 산악지형의 콜라보로 가만히 있는데 자연스레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결국 화석이 아닌 것을 99% 확신하면서도, 이거라도 사진 찍어가서 화석인지 물어보면서 자연스레 패치를 읍소(?)하기로 맘먹었다. 다행히 파크레인저는 화석이라 우기기도 민망한 사진과 회피하는 내 시선, 기대에 찬 아이들의 눈망울을 번갈아 보고는, 이것이 화석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화석이 나타나면 지금처럼 하면 된다는 솔로몬 급 판단과 함께 패치를 주셨다. 그렇게 일촉즉발의 생떼 비상사태를 무사히 넘기며 하루를 평화롭게 마무리했다. 

  데빌스 타워, 마운트 러쉬모어, 베드랜즈 이 세 곳의 공통 키워드는 '계획'이었다. 데빌스 타워에서는 세부 '계획을 못하고' 간 터라 나무에 소원을 빌기 위한 천을 준비하지 못했다. 러쉬모어는 원래 '계획과 달리' 축소된 형태라고 한다. 즉 인물의 전신을 조각하려 했으나 예산부족, 조각가(Gutzon Borglum) 죽음 등 여러 이유로 얼굴만 조각하는 지금의 형태로 바뀌었다. 베드랜즈에서는 '계획에 없던' 땡볕에 화석을 발굴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다, '계획'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작다는 것을. 미약한 인간의 계획이란  언제든 뒤틀리기 쉬우며 예측을 벗어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즉 어떤 일에 임하기 전에 충분한 생각과 실행 방안도 중요하지만, 직접 행동하며 나타나는 변수들에 대처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데빌스 타워에서 아무 준비 없이 갔다고 그냥 내려올 수도 있었지만, 몸에 지닌 (다소 체취가 강한) 양말이라도 걸면서 우리 모두의 소원을 빌어보았다. 러쉬모어는 당초 계획처럼 전신이 조각되었다면 더 웅장 했겠지만, 악조건 속에서 초반의 계획만 고집했다면 미완성으로 남아 지금처럼 유명한 관광지가 아닐 수 있다. 베드랜즈에서는 화석발굴이란 돌발적 상황을 실제 화석 발굴 과정만 따라 하는 행동으로 대처하여 위기탈출 있었다. 이 모두가 초반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다 지나고 나니 결과가 나쁘지 않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기도 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교훈을 얻기도 한다. 그렇게 뭐든 빡빡하게 딱딱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내 안의 고정관념이 스르르 풀려간다. 완벽주의를 꿈꾸며 시작조차 안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시작해서 끌고 가는 실천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여행을 하며 거듭 느낀다.   


덧.

  이것은 여행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특별한 여행기를 쓰겠다는 완벽주의에 빠져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계획조차 미뤘다. 한 달, 두 달이 지나 여행 기억이 증발하자 조바심이 들어 매일 한편씩 글을 쓰겠다고 계획했지만 체력과 시간부족 등을 이유로 이삼일에 한 번으로 축소했다. 그리고 계획에 없던 일(글과 함께 올릴 사진 모자이크 처리, 알고 있는 여행지 정보가 정확한지 확인하기 등 )로 인해 예상소요 시간은 점점 늘어져간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끝까지 붙잡고 있는 힘의 원천은 '계획' 보단 '실천'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써내려 간다.(어김없이 등장한, 연재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긴 변명이었습니다. 하하하)     


덧 2.

데빌스 타워에서 양말을 나뭇가지에 걸며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어봤다.

- 어머님 아들 :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여행을 마쳤으면 좋겠다. (이미 달성. 무사귀환해서 이 글을 쓰고 있으므로)

- 내 둘째 아들 : 엄마와 평생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이건 불가. 넌 니 아내와 평생 살고, 난 럭셔리 실버타운 갈 거야. '평생'은 아니고 함께 있는 동안을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소원을 수정하자. 훗)

- 내 첫째 아들 : 세상의 모든 동물과 식물들이 아프지 않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전 지구적 소원에 깜짝 놀라며, '동물'의 범위에 '엄마'도 넣어달라고 우겨댔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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