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질구질, 똑같은 날에 새로움을 부여하고 싶다면

익숙한 것을 다시 보다 : 영화 '에놀라 홈즈', '거꾸로 가는 남자'

by 나다움

2020년. 꾸역꾸역 버티고, 여차저차 넘기며, 차일피일 미루어 12월 31일이다. 30여 년의 경험치로 감히 예언해보건대, 2021년도 2020년의 유사 버전이 될 것이다. 어릴 때는 학년이 올라가고, 학교가 바뀌는 등 새해를 실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았다. 반면 어른이 된 후로는 쳐져가는 뱃살, 깊어지는 팔자주름, 급 방전하는 체력으로 가까스로 새해를 느낀다.

다소 우중충한 사실에 우리는 새해를 산뜻하게 맞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 1시간 단위로 시간계획을 적는 다이어리를 사보기도 하고, 영어회화 완전정복을 위해 영어학습 사이트에 1년 이용권을 결제도 하며, 다가오는 여름엔 노출을 꿈꾸며 체지방 감량과 근력 향상을 위한 운동기구를 구입하기도 한다.

올해의 다이어리에 여백의 미가 강조되어있다면, 1년 안에 언제든 볼 수 있기에 1년 내내 미뤄서 보지 않은 영어 사이트를 보며 이 돈으로 빵을 사 먹었더라면 몇 개인가 세어보고 있다면, 집안에 둔 운동기구를 새것과 다름없음을 강조하며 당근 마켓에 올리고 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아래 두 영화('에놀라 홈즈', '거꾸로 가는 남자')를 추천한다. 영화를 보며 '새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새로운 마음'을 가지는 방법을 생각해본다.



1. 한 번쯤은 반대로 해본다.


"어떤 게 괴롭나요, 찬사 듣기? 아니면 갖다 주는 술 받기?"

"양복을 입을 권리 외에요? 남자도 사각팬티를 입을 권리요. 끈팬티 입어봤어요? 그건 불의죠.
직접 경험하기 전엔 어떤 건지 알 수 없어요."

- '거꾸로 가는 남자' 中 -


"너의 의견도 존중받고 싶으면, 소리 높여 말해야 해." - '에놀라 홈즈' 中 -


하던 것이라면 안 해보고, 안 하던 것이라면 한 번쯤 해본다. 우리가 여행을 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낯선 것을 경험하기 위함이다. 지금은 여행은 커녕 이동조차 어려우니, 생활 속에서 여행하듯 의식적으로 다르게 해 보자.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나의 매일 아침은 다음의 퀘스트를 모두 수행해야 비로소 회사로 갈 수 있다. "아들 둘 안아주기+아들들 화장실 용변 뒷처리 +애들과 신랑과 나의 아침식사 준비+ 애들 옷 입히기+ 신랑 깨우기+ 나 출근 준비+ 식사 흡입하기+아이들 신발 신겨서 현관문으로 가기(의외로 이게 오래 걸린다)"까지의 모든 미션을 완수해야만 한다.

하던 것을 안 한다는 것은 많은 아침 과제 중 "애들 옷 입히는 것"을 내가 직접 안 한다는 뜻이다. 가끔은 아이들이 직접 할 때도 있고(미션 수행 결과로 마이쮸를 내건 날), 신랑이 할 때도 있다.(아침부터 내가 저기압인 날은 귀신같이 알아서 한다.) 그렇게 확보한 시간에는 못하던 "아침 샤워"를 넣는다.(평소라면, 머리감기를 포함한 샤워는 전쟁같은 아침에는 언제나 저녁에 해야 한다) 그러면 그날은 뒷머리가 죽지 않은 채 얼마간의 볼륨감을 유지할 수 있다.(이런 날은 펌 다시 했냐는 질문을 듣곤 한다)

그렇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변화들은 나에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준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소리 높여 말하는 얼마간의 투쟁이 필요할 수 있고,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기에 약간의 역지사지 자세가 필요할 수도 있다. 어쨌든, 우선은, 해본다.



2. "왜?"라고 질문해본다.


"엉덩이는 다리 기능과 관련된 신체기관일 뿐이지 않나요? 그런 걸 뭐하러 부풀려요? 그렇게 허무맹랑한 옷 속에 갇혀 살기는 싫어요."

-'에놀라 홈즈' 中 -


인간은 예상외로 생각하는 것에 인색하다. 그래서 자동 습관화된 생각을 따를 때가 많다.(예- 난 잘생긴 사람들은 성격도 잘생길 것이라고 자동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오류였음을 결혼하고 깨달았다. 응? 신랑 얘기는 아닐 수도 있어. 하하.) 특히 여러 사람이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은 깨기가 더 힘들 때가 많다. 영화처럼 코르셋을 여자들의 필수품이라고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가끔 무슨 일을 할 때 "왜?"라고 물어본다. 나는 이렇게 적용한다. 집안일 중 분리수거(만) 담당인 신랑을 위해 밖에 나갈 때마다 버릴 수 있는 최적의 동선인, 현관 앞에 분리수거할 것들을 둔다. 현관에 있던 쓰레기들이 보행을 방해할 지경이 이르렀을 때 "왜?"라고 질문을 던져본다. ("왜 여기 아직도 쌓였있을까? 왜 신랑이 안 할까?"가 더 쉽게 드는 생각이겠지만 과감하게) "왜 신랑만 해야 할까?"라고 자문한다. 그러면 꼭 신랑이 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할 수도 있기에. 수북한 쓰레기를 근력형성을 위한 아령이라 생각하고, 분리수거함까지 걷는 것을 유산소 운동이라 생각하며 움직인다. 꼭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을 때, 낯설지만 근본적인 물음인 "왜"라는 질문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본다.(주의, 너무 깊이 들어가면 "왜 (얼굴만 보고) 결혼을 했을까?"등 심오한 주제로 넘어갈 수 있으니 주제를 좁혀야 한다.)



3.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



"감정이 격하구나. 당연히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쓸모는 없단다."

-에놀라 홈즈 中 -



"네가 보고 싶은 것만 찾으려 하지 말고 남아 있는 단서를 찾아보렴. 그러면 곧 진실을 알게 될 거다"

-에놀라 홈즈 中 -


격하게 해온 노오력을 하지 말아 보자. 이제까지 충분히 해왔는데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면 오히려 더 안보일 수도 있다, 셜록홈즈의 조언처럼.

부족한 점을 채워 넣고, 잘못된 것은 올바로 바뀌어야 한다는, 그 마음을 내려놓는다. 대신 그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며 그대로 인정해보자. 그저 살짝, 심각하지 않을 정도로만 인지하자.

아들 둘이 하루 종일 울고 떼쓰는 날이 있다. 평소라면 어르고, 달래고, 안아주고, 업어주고 등의 노력을 해본다. 하지만 그것조차 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럴 땐 잠시 내려놓는다. 넷플릭스 키즈 선생님에게 잠시 아이들에게 과감히 위탁해본다. 그렇게 잠시라도 내려놓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이가 왜 불편했는지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렇게 또 버텨본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사람이 변해서 등의 이유로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면, 그때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만 해보자. 안 되는 것을 부여잡고, 나의 비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아무것도 안 해도 충분히 괜찮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 중-


'변화'라는 것은 새가 알을 깨 드리고 나올 때만큼 힘들다. 힘들다고 하면 곧잘 듣는 얘기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인데, 힘듬을 즐기는 경지란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겐 용량 초과이다.

새로움을 주고 싶은데, 피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 어려울 것 같다면, 처음부터 급격한 '변화'보다는 약간의 '변형'로 목표를 잡자. 그렇게 워밍업을 해보는 건 어떨지. 달성 가능성이 높은 목표는 도전하기 쉬운 법이니까.

그다지 새롭지 않은 새해겠지만, 새로운 마음을 위해 일상의 작은 변형을 가져본다.
그 작지만 낯선 변형들이 쌓여 소소한 행복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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