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마조마, 일촉즉발 사랑의 진흙탕을 간접체험하고 싶다면

지금이 끝사랑이길 바란다 : 영화 '결혼 이야기', '먼 훗날 우리'

by 나다움

'그 후 행복하게 살았다'는 말은 문학에 나오는 가장 비극적인 문장들 중 하나이다.

그 말은 거짓이기 때문에 비극적이다.

-조수아 리브만(Joshia Lievman)-


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실에는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를 봄으로서 대리만족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영화 '내가 사랑한 모든 남자들에게', '키싱 부스'에서 훈남들의 꿀 떨어지는 눈을 보며 화면 속 그들과 아이컨택을 즐긴다.
또 하나는 현실에서 갓 건져온 듯한 장면을 보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씁쓸한 위안을 받기 위해서이다. 후자의 예로는 영화 '결혼 이야기'와 '먼 훗날 우리'가 있겠다. 소위 동화 속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다" 이후의 이야기, 이른바 끝사랑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잔인하다.


"당신은 이기적인데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 당신이 이기적인지도 모르고 있어. 진짜 재수 없다고!

"난 매일 눈뜰 때마다 당신이 죽길 바라. 헨리만 괜찮다는 보장만 있으면 당신이 병에 걸려 차에 치여 죽었으면 좋겠다고!"

- '결혼 이야기' 中 -


"이제 너랑 함께 사니까 그런 건 상관없어."

"이제 그런 건 상관없다니 무슨 뜻이야?

"그냥.. 상관없다고."

"아예 나한테 기대도 안 한다 이거야?"

"네가 성공하든 말든 상관없어."

"어차피 난 성공 못할 테니까?"

(...)

"내 핑계 대지 말고 진짜로 네가 원하는 걸 생각해 보라고!"

- '먼 훗날 우리' 中 -


흔히 '갈등'은 좋지 않고, 피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작은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자리에서 현명하게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참거나 피한다. 특히나 끝사랑이라 생각하는 관계에서는 갈등이 더 조심스럽다. 이것은 마치 다 먹은 그릇을 설거지통에 쌓아두는 것과 같다. 그릇이 한두 개일 때는 치우기도 쉽지만, 이게 쌓이면 쌓일수록 더 설거지는 하기 싫어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그릇이 개수대에 수북해질수록 악취를 풍기며 어쩔 수 없이 설거지를 할 때는 정말 진저리가 나게 싫다.

한여름 며칠을 묵혀두었다가 몰아서 하는 설거지 같은 싸움을 끝사랑에서는 종종 볼 수 있다. 서로를 잘 아는 만큼, 무엇을 건드리면 터지는지 인지하고 의식적으로(또는 무의식적으로) 그 역린을 건드린다. 고성과 울음 등 음량 최대치는 기본, 경멸하는 눈빛 발사와 벽 부수기 등 액션신은 자주 등장하는 옵션이다.

<사랑하는 사이라서 더욱 잔인하다. 날선 구강액션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 공포감은 극대화된다. 그래서 이런 영화들은 여름에 추천한다>


2. 영속성은 상황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인연이란 게 끝까지 잘되면 좋겠지만,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는 게 쉽지 않지.

- '먼 훗날 우리' 中 -


끝사랑은 실망의 연속이다. 좋은 점이 부각되었던 연애 호시절이 지나가면, 서로의 본모습(?)에 무너지는 초심을 다잡아야 한다. 실망감이란 기본값에, 이 생활이 평생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해지면 화가 나면서 감정은 더욱 격해지기 쉽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상대방이 방구석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말 한 짝을 집어 들고 다른 한 짝을 찾아 헤맬 때, 그게 한 번이라면 부처님 미소를 지으며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짓을) 매일같이, 반백년 동안 계속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부아가 치민다.

20년 이상을 (외계 생명체처럼)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서 (다른 행성에서 자란 듯) 생활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부딪히는 부분은 비단 '양말'뿐이 아니다. 양말은 신체 일부를 감싸고 있는 작은 옷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기하면, 어마 무시하게 생활 속 폭탄들이 잠재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평생 함께하는' 끝사랑이라는 로맨틱한 속성 때문에 현실은 로맨틱하지 못하다. 초대형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보다 더 자주 여기저기서 펑펑 터진다. 뜬금없이 애정신이 나오는 애로영화보다 더 맥락 없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때가 있다. '영원'이라는 것은 언제나 좋지만은 않다.


3. 또 다른 의미의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


"솔직히 시작부터 문제가 있었죠. 난 계속 찰리와 그의 인생에 맞춰 살았어요. 그만큼 좋았고 살아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내가 작아졌어요. 내가 살아난 게 아니라 찰리에게 생기를 더해 줬던 거죠."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이혼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죠. 시체 없는 죽음과 같아요."


- 결혼 이야기 中 -


끝사랑은 나조차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끌어내기도 한다.(예-내가 얼마나 큰 목소리를 지녔는지 측정할 수 있으며, 최대 음성 기록 경신이 가능하다.) 둘은 공존하기 위해 고강도 트레이닝 과제를 상대에게 내놓는다. (예-초저녁부터 약주 드시고 주무시는 신랑님이 부탁한 고성 금지는 아들 둘을 혼자 케어하며 지키기엔 수도자의 정신수양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생활밀착형 트레이닝 미션을 수행하고 나면 한층 성숙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다.(예-감정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차분한 음성으로 웃으며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고비를 넘기면 한층 마음의 평수가 넓어지며 여유가 생긴다.(단, 그렇게 얻은 내면의 아름다움에 비용은 꽤 비싸다, 얼굴은 늙고 체력은 급감할 수 있다.) 그렇게 나 자신이 의도치 않게 업그레이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훈련과제를 견뎌내지 못할 때가 있다. 끝사랑은 끝내는 것도 녹녹지가 않다. 특히 영화 대사처럼 '시체 없는 죽음'과 같은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선택과 집중의 과정에서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있고,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끝사랑으로 인해 잃는 것도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얻는 것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쉽게 얻을 수 없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 과거는 그리움이란 채색이 덧입혀져서 컬러이지만, 현재는 최대한 단순하게 현실을 살아내는 것이기에 흑백이 되기 쉽다. >

"그때 네가 안 떠났다면, 그 이후에 우리는 달라졌을까?"

"그때 네가 용기 내서 지하철에 올라탔다면, 너랑 평생 함께했을 거야."

"그때 우리가 안 헤어졌다면?"

"그래도 결국엔 헤어졌을걸."

"만약 그때 돈이 많아서 큰 소파가 있는 큰집에 살았다면?"

"네가 끊임없이 바람피웠겠지."

"이도 저도 안 따졌으면 결혼하지 않았을까?"

"진작에 이혼했겠지."

"네가 끝까지 내 곁에서 견뎠다면?"

"네가 성공 못했을걸."

"애초에 베이징에 안 갔다면? 네 바람대로 다 됐다면?"

"결국 다 가졌겠지. 서로만 빼고"

- '먼 훗날 우리' 中-


'만약에 이 사람이 내 끝사랑이 아니었다면'을 가정해볼 수도 있다. 추가적으로 '만약에 내가 그때 거기에 안 갔다면?' , '만약에 (외모를 포기하고) 결혼하지 않았다면?'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만약은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누구를 만나든, 어떤 선택을 하든 '나'란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애정의 농도가 짙을 수 있고, 화냄의 강도가 약해질 수는 있겠다. 하지만 결국 내 삶은 내 생각, 내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에 '누구와 함께 같이 있느냐'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이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에'란 질문은 부질없이 우울함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어차피 그 만약으로 돌아가서 사랑의 상대를 바꾼다고 해도, 내가 바뀌지 않는 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결국 유사한 길을 걸을 테니까.



'결혼 이야기'에서 '니콜'이 이혼을 앞두고 남편인 찰리의 장점을 써보라는 숙제에, 다양한 장점을 쓰고 나서 맨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제 말이 안 되긴 하지만, 난 평생 그를 사랑할 거다.

끝사랑은 헤어졌다고 이제 더 이상 아예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같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다. 애매모호하고, 가끔은 혼란스럽고, 매우 끈적거리며, 동시에 질척거린다.


이제는 '졸혼'이라는 단어가 '결혼'만큼 자연스럽다. 끝사랑이 주는 '평생에 남은 내 유일한 사랑'이란 핑크빛 이미지는 동화 속에나 어울린다. 끝사랑이라고 해서 남은 일생을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본다.

실제로 평생을 함께 한다 하더라도, 10년 후에는 함께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해보자.(10년이나 평생이나 매한가지라면, 1년 계약제로 이 관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생각해보자.) 그러면 못 견디게 힘들었던 것이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마치 끝이 요원한 계단의 종착지를 보면 한숨부터 나오지만, 눈 앞에 있는 한 계단에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그 끝에 도달해있는 것처럼 말이다.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란 진리(?)에 덧붙이고 싶다, '끝사랑은 끈질기게'

끝사랑, 찾는 것보다 지켜내는 게 더 어렵다.

그래도, 도전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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