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라도, 처음은 언제나 망설여진다.

새로운 선생님과 다시 심리상담을 시작하다

by 나다움

연결감이란 내 감정과 선택, 삶의 불확실함 등의 위험성을 용기 내어 드러내고, 내 용기를 상대방이 평가나 추정, 예측 없이 그대로 받아주는 찰나의 순간에 느끼는 감정입니다. 관계 내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이죠. 평가하고 판단하지 않는 '심리적 안전'속에서 이 찰나의 경험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신뢰와 친밀감을 쌓고 적절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 中, 안주연 저-


"정신과를 처음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날, 최대한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요? 사소한 것도 좋아요."

다시 시작한 심리상담, 선생님께서 내게 했던 질문이다. 면접을 보러 온 응시자 마냥 '왜 상담실을 찾게 되었는지' 물어보시면 이렇게 말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나에겐 다소 의외의 질문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터져버린 눈물 때문이었어요. 작년, 어버이날 처음 가게 되었고요."

그렇게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듯, 조금씩 나지막이 말했다. 2021년, 다시 심리상담을 시작하였다. 선생님은 그날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계속 질문을 해주셨고, 나는 담담히 말씀드렸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면접자의 자세로, 준비했던 말을 불쑥 말을 꺼냈다.

"가족에게는 화를 터트리고, 타인에게는 화를 최대한 참아요."

"왜 가족에게는 참았다가 터뜨리고, 반대로 타인에게는 말을 못 하세요?"

"그게 편해서요."

"과연 그게 정말로 편할까요?"

"....."

"화 내도 괜찮아요. 화도 내고해야 해요."


선생님은 괜찮다고 하셨지만, 난 어떻게 화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참았다가 화를 내고나면, 화를 낸 것에 후회한다. 반대로 화를 내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하다. 그래서 다시 여쭤봤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어디까지 감정을 타인에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기다리던 나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감정이 가득 차 있어서 그래요.
감정을 비우는 연습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자꾸 감정을 누르기만 해서 내 감정이 무엇이지 헷갈리는 거예요.
또 그게 반복되면 자기 확신이 생기지 않고요. 악순환이죠.

나는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에 대해 물었는데, 선생님은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말하셨다. 그 후로도 한참을 내 얘기를 더 쏟아냈다. 조용히 들으시던 선생님은 나지막이 한마디 더 하셨다.

너무 애쓰지 말아요.

그 말이 낯설었지만 동시에 편안했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선생님은 종이 한 장을 꺼내셨다. 자살 또는 자해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서약서였다. 내 이름을 적고, 위급한 순간이 오면 연락할 사람의 이름을 적는 간단한 양식이었다. 내 이름을 쓰고, 연락할 누군가의 이름을 써야 하는데 한참을 멈춰있었다.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눈물이 쏟아졌다. 선생님은 괜찮다 하셨다. 실컷 울고 가라고, 본인이 잠시 자리를 비워주셨다. 시계를 보니 이미 예정된 상담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래서 얼른 자리를 일어섰다.

"저, 선생님. 전 집에 가며 울어도 괜찮아요. 선생님 퇴근시간 지나셨는데 저 때문에 기다리게 하시는 것 같아서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한번 말하셨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음 시간에 봐요."

그렇게 첫 상담실을 나왔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실컷 울면서 집으로 걸어갔다.


처음에 만났던 상담 선생님은 나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할 정도로 나에 감정에 대해 충분히 공감해주고 인정해주고 다독여주셨던 점이 좋았다.

두 번째 만났던 상담 선생님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을 열어주어, 내가 보지 못했던 반대편을 열어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셨다.

세 번째 만난 상담 선생님은, 내가 어쩌면 닮고 싶은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면서도 충분히 공감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인지 매주 상담가는 날이 기대가 된다.


사실 예정된 상담 날짜를 두세 번 미루었다가 오늘까지 미루게 되면 일정 잡기가 곤란하다는 선생님의 친절하지만 단호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가게 된 상담이었다. 뭔가 또다시 시작하는 게 사실은 두려웠다. 매번 내가 자발적으로 가게 되지만, 상담하는 날이 되면 어쩐지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그래서 미뤘던 게 아닌가 싶다.

이번이 세 번째이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더더욱 망설여진다.

얼마가 걸릴지 모르지만, 또 한 번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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