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불, 흙, 물, 그리고 옥수수로 불리는 사람들
크리킨디센터의 5 원소는 고대의 사람들이 세상 만물의 기원이라고 믿었던 4 원소인 공기, 불, 흙, 물과 크리킨디의 고향인 남미에서 모든 인류의 기원이라고 이야기되는 옥수수입니다. 크리킨디 우화가 내려오는 케추아족의 언어로는 각각을 따야Thaya(공기), 니나Nina(불), 차쿠Cha’qu(흙), 야쿠Yaku(물), 사라Sara(옥수수) 라고 부릅니다. 이 원소들은 원초적이고 궁극적인 것으로 새로 생성되거나 소멸, 변화하지 않으면서도 각기 다른 원소들을 만나 다양한 것들로 재탄생하고 변모함으로써 세상을 더 다채롭게 만듭니다.
센터의 개관을 준비하던 어느 날,
누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습니다.
"크리킨디센터의 청소년들과 스태프들은 뭐라고 부르죠?"
크리킨디 이야기가 남미대륙의 안데스 산맥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진 이야기라는 것을 아시나요? 작은 벌새 '크리킨디'의 고향은 남미인 셈입니다. 이 광활한 대륙에는 크리킨디 이야기 말고도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전해져 옵니다. 뜬금없지만, 옥수수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죠.
남미가 원산인 옥수수는 5천여 년 전부터 남미 전역에서 재배되기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지금이야 미국과 중국이 옥수수 생산량 1, 2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만큼 옥수수가 흔하디 흔한 작물이지만 남미 사람들에게 옥수수는 좀 특별한 존재입니다. 여전히 이들에게는 옥수수가 주 곡물 중 하나인데, 옥수수 밭이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게, 남미의 거의 모든 설화에는 옥수수와 관련된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남미에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고대 마야 신화의 문헌인 포폴 부(Popol Vuh, 16세기 발견)에서는 옥수수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죠.
공놀이를 아주 좋아하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주 공놀이를 즐겼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들이 자주 뛰어놀던 자리는 죽음의 신이 다스리는 지하세계 ‘시발바Xibalba’로 통하는 통로였습니다. 천둥처럼 들려오는 공 구르는 소리에 화가 난 신들은 올빼미들을 보내 형제에게 경기를 제안합니다. 형제는 올빼미들을 따라 지하 세계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검은 길을 건너 시발바에 도착합니다.
쌍둥이는 재치를 발휘해 죽음의 신들이 쳐놓은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마지막으로 공놀이에서도 승리합니다.
그리고 자신들과 똑같이 신들의 시험에 빠져 목숨을 잃었던 아버지와 삼촌을 옥수수와 조상신으로 부활시키고, 자신들은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됩니다.
그리하여 남미 사람들은 옥수수를 신이 주신 생명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중남미의 타이티 원주민들은 옥수수를 ‘마히스mahis’라고 불렀다는데, 그들의 언어에서는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스페인어에서 ‘Mais(옥수수)’라는 단어는 이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인간은 케찰코와틀Quetzalcohuātl이라는 창조의 신이 옥수수에서 가루로 만들고 반죽하여 빚어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는 세상 사람들에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 특히 옥수수 키우는 법이나 베 짜는 법 등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즉, 고대 마야 사람들은 사람은 옥수수로부터 기원했고, 옥수수로부터 생명을 받는다고 믿었다는 것이죠. 그만큼 고대인들은 옥수수를 식량이자 에너지의 근원으로 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죽어서 옥수수로 윤회한다고 믿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늘 그렇듯 신화의 진위여부를 후세 사람들이 알 도리는 없지만, 흔히 먹는 노란 옥수수가 아니라 각양각색의 토종 옥수수 종자들을 보다 보면 정말 신의 선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천차만별의 색깔로 영롱하게 빛을 내는 보석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크리킨디센터에서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모여 놀고, 일하고, 배울 겁니다. 이 과정에서 함께 그동안의 습관에서 벗어나 또 다른 관계와 역할을 상상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누가 정해준 호칭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의 이름을 정해 부르고, 어떠한 차별과 편견 없이 새로운 역할로 서로를 대하기로 했습니다. 크리킨디센터를 구성하고, 미래세대와 함께 숲과 밭을 가꾸기 위한 핵심 역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공기(따야Thaya) - 촌장, 조언자, 마을의 어른들
모든 것들 사이를 두루두루 흐르며 바람을 불러오기도 하고 열을 식혀주기도 하며, 옅으면서도 커다랗게 크리킨디센터를 채워주는 사람들입니다.
2. 불(니나Nina) - 청년들, 작업자들
열심히 배우고 작업하고 일을 벌이며 뜨겁게 타오르면서 온기를 퍼뜨리는 해와 불처럼 주위를 달아오르게 하는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3. 흙(차쿠Cha’qu) : 크리킨디센터의 스태프들
크리킨디센터에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도록 연결하고 구상하는 사람들이자 모든 것들이 그 위로 서서 자라나게 하는 흙. 크리킨디센터라는 땅을 이루어 받쳐주고 북돋는 사람들입니다.
4. 물(야쿠Yaku) - 강사들, 선생님들
크리킨디센터를 오며 가며 이곳에서의 작업과 배움을 돕는 사람들. 때로는 비로 내리고, 때로는 땅과 숲을 달리며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돕는 사람들입니다.
5. 옥수수(사라Sara) - 청소년들
크리킨디센터를 자신의 학교로 다니는 사람들, 작업도 하고 오가며 놀고 배울 줄 아는 사람들. 사람들의 기원인 옥수수로 불리며 흙, 물, 불, 공기가 이루고 있는 크리킨디센터라는 숲에서 일어나는 순환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것은 만물의 기원이라고 여겨지는 4가지 원소와 사람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옥수수입니다.
엠페도클레스 (Empedokles, 490~ 430 B.C.)는 모든 물질이 물, 불, 공기, 흙이라는 4가지 원소들의 합성물이며, 사물은 이 기본 원소의 비율에 따라 서로 형태를 바꿀 뿐 어떤 사물도 새로 탄생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네 가지 원소들은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니며, 사랑(Philia)'과 '미움(Neikos)'이라는 두 힘이 상호작용하여 4 원소들을 결합·분리하게 되는데, '미움'이 작용하면 이 원소들은 서로 떨어져 나가고 '사랑'이 작용하면 원소들은 함께 섞여 물질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 '사원소설(四元素說)', 위키피디아 출처
크리킨디센터의 사람들은 세상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의 이름이자 역할을 맡아, 크리킨디가 구하려고 했던 숲과 세상에 필요한 공통감각을 키우고 우리들이 상상하는 좋은 '삶'을 구성해가는 수많은 과정을 함께 하겠습니다.
작성자
동녘(박동녘) dongnyeok@krkd.eco
록(장희록) rok@krkd.e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