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학교로 간 일주일학생 이야기
목화학교는 청소년들의 진로탐색을 위해 입시나 진학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나와 있는 1년제 갭이어 학교입니다. 각자의 현재를 통해 미래를 가늠해보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전공하게 될지, 일과 삶에 대한 진지한 상상을 해보고 탐색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지요.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생각할 틈도 없이 쫓기듯 지내왔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은 그냥 좀 게으른 척 지내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괴로운 일이 있는데도 마음에 담아두기만 해서 힘들었다면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요. 재미난 일을 도모하고 싶지만 함께 사고칠 동지가 없어 허전했다면 속닥속닥 용기를 나눌 친구를 찾을 수도 있겠지요. 도대체 학교 안 가고 네가 뭘 하는 건지 모르겠어!라고 주변에서 잔소리를 한다면, 목화농사를 짓는 중이라고 설명할 수 있어요.
목화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길 기다려야 해요. 그래서 좀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싹이 날 수 있도록 씨앗이 힘을 내는 것을 기다리는, 중요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말하세요. 싹이 나고 가지가 뻗고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고 열매가 솜을 터뜨릴 때까지 숨을 고르며 조용히 기다리는 거지요. 솜이 터지면 씨아를 꺼내 씨앗을 분리해내고, 물레를 돌려 솜에서 실을 잣고 베틀을 펼쳐 직조를 할 거랍니다.
목화를 상대하지 않을 때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담임들과 여행을 떠날 수도 있어요. 파쿠르를 배워 도시를 뛰어다닐 수도 있고, 천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행도 할 수 있고 좀 더 멀리 가기도 해요. 목화를 기다리는 일은 실은, 우주의 시간을 따르는 일이에요. 매우 순종적으로요. 그것만 빼면 시간은 온전히 '나'의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답니다.
목화학교는 한 달에 한 주, 일주일학교라는 이름으로 목화교실을 오픈합니다. 아직 긴 시간 바쁜 트랙에서 내려올 결심이 서지는 않았지만 다른 진로를 탐색해보고 싶은 청소년, 그냥 잠깐 쉼이 필요한 청소년, 혹은 일주일 정도는 '피난'이 필요한 청소년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요. 일주일학교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진행되니까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체험학습 4일을 신청하면 어렵지 않게 소속학교에 허락을 얻어 목화학교 일주일과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공결처리를 위한 학교 협조도 받고 있답니다. 일주일 정도면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들도 잠깐의 '딴짓'이 될 수도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시는 것 같아요. 목화학교의 일상을 따라 잠깐 쉬면서 주변을 돌아볼 시간을 가지고 싶은 청소년들을 기쁘게 환영합니다.
10월의 목화 일주일학교에는 식물 키우기와 돌보기를 좋아하는, 마산에서 온 17세의 이끼,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을 즐기는, 일산에 사는 15세의 숨이 함께했습니다. 자꾸 달리기만 시키는 일상 속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천천히 길을 걷고 싶어 목화학교에 잠시 오게 되었다는 두 사람은, 목화학교의 옥수수(학생)들과 함께 매일 아침 목화밭을 돌보고, 직조와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를 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목화로운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첫날, 어색함이 감돌던 목화교실은 곧 책상에 둘러앉아 아침에 수확해온 솜을 다듬고 직조를 배우는 동안 점점 이야기가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의 일상을 물으며 수다를 떨면서 베틀을 만지다보니, 누구의 작업은 피곤한 누군가를 재워줄 해먹이 되면 좋겠고, 또 다른 누군가가 만드는 직물은 추위를 덮어줄 따뜻한 담요가 될 수 있겠고, 아니면 즐거운 식사자리에 아름다움과 감동을 더해줄 테이블보도 될 수 있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지요. 어떤 걸 만들면 더 좋을까, 얼굴 가득 즐거운 표정들이 목화교실을 더욱 따뜻하게 합니다.
직조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다소 보수적인 학교에 다니는 이끼와 대안학교로 진학을 준비 중인 숨의 고민에 동감하며 우리가 경험해온 학교의 다양한 이슈들, 각자가 생각하는 배움과 교실의 풍경은 어떤 것일지 이야기를 나누며 다 같이 웃고 떠드느라 점심시간마저 잊어버릴 뻔했습니다.
영셰프스쿨의 맛있는 점심을 먹고, 혁신파크의 강아지주민 흰둥이와 산책을 하며 단풍지는 나무들 사이를 지나, 청년청의 금붕어주민과 비전화공방의 닭주민들과도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전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크리킨디센터 너머로 보이는 북한산의 가을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오후 수업도 이렇게 평화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듣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의 목화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토요일 '모두의 도시락'시간에는 함께 에티오피아의 한국교민 아유씨를 초대해 에티오피아 식으로 만든 점심을 먹었습니다. 평소의 모두의 도시락은 각자 집에서 한 가지 반찬을 만들어와서 함께 차리는 만찬의 식탁이지만, 종종 요리를 배우는 시간이 되기도 해요.
'시詩와 물레X나우노아 오픈워크숍'에 참여했습니다. 시와 물레 워크숍은 목화학교에서 진행하는 직조가 중심인 월례워크숍인데, 이번에는 특별히 크리킨디센터의 세컨드핸드숍 '나우노아'의 오픈을 기념하여 입주작가인 원모와 함께 각자 아끼는 시집의 북커버를 만드는 되살림 바느질 워크숍으로 꾸려졌습니다.
버려진 옷이나 천을 필요한 만큼 잘라 서툰 바느질을 하느라 가끔은 바늘에 찔리고 실이 엉키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옷의 원형을 살려 단추와 주머니가 붙어있는 매력적인 북커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원모를 따라 한 땀 한 땀 바늘로 꾸준히 나아가다 보니 삐뚤빼뚤하긴 해도 곳곳에 정성이 느껴지는 따뜻한 북커버가 완성되었습니다.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들이 손작업으로 만들어지는 목화학교에서의 일상은, 이렇게 토요일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제야 서로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싶은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일주일간 함께 한 시간은 이끼와 숨에게 건네는 응원의 시간이었다는 걸 잘 전할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학습과 교류, 10월의 목화 일주일학교의 한 주는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11월의 목화 일주일학교에서는 어떤 만남과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겨울의 목화학교는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집니다. 올해 마지막 일주일학교가 될 11월의 일주일학교는 27일부터 12월 1일까지 진행됩니다. 그때 또 많이 만나요.
작성자
록(장희록) rok@krkd.e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