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의 물' 포럼 후기
몇 년 전부터 ‘제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유행이 되었습니다. 그 말을 쓰지 않으면 뭔가 시대에 뒤처지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교육계에서도 ‘제4차산업혁명’에 대비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현재 직업의 60퍼센트가 사라진다’는 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하나? 모든 관심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 불안감에 편승해 사라질 직업과 여전히 유망한 직업 리스트가 나옵니다. 진로교육이라는 것이 유망한 직업을 맞추는 일처럼 여겨집니다. 그런가 하면 ‘창조적인 인간이 되라’는 진부한 이야기가 새로운 교육의 방향인 것처럼 제시되기도 합니다.
‘한 방울의 물’ 포럼은 변화가 빠르고 근본적일수록 즉자적인 반응을 하기보다는 ‘좋은 삶과 좋은 일’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기획된 배움의 장이었습니다.
경제의 변화가 어떤 인간형을 요구하는지 그것이 결국 지배계급의 이익을 반영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았습니다.(홍기빈)
근대 사회에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 돌봄노동의 지위를 회복시키는 것과 임금 노동 중심의 삶을 재구성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한 조건으로서의 기본소득에 대한 공부를 했습니다. (이안소영)
로봇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본권)
‘기후변화’라는 재난에 적응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진)
창조계급에 편입하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노동자로서 살아가면서,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삶과 좋은 일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채효정)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당장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람이 노동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낙관론과 소수의 창조적인 그룹을 제외한 대다수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창조계급에 기생하게 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기후변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론과 기후변화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없다는 비관론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낙관론과 비관론은 다 허망한 것들입니다. 지금 그리고 미래에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누군가가 (흔히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학자들) 제시하는 미래의 방향을 기정 사실화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기득권 세력이 원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변화를 이끄는 힘은 결국 인간의 욕망에 의한 것입니다. 미래는 우리가 어떤 욕망을 갖느냐에 따라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소수의 창조계급에 속하지 않고도 ‘좋은 삶과 좋은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욕망의 방향을 협력과 연대를 통한 공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채효정의 말처럼 “사회적 경제, 공정 여행 같은 좋은 것들이 왜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일로 귀결되는지” 알아야 하고, 그렇게 만드는 어떤 힘 혹은 구조를 바꾸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나쁜 삶과 싸우지 않고는 좋은 삶은 이룰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노동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미래에도 노동은 늘 있을 것이고, 노동의 가치가 인정될 때 우리의 삶도 지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거 없는 미래 담론에 휩쓸려서 지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작성자
스콜라(박복선) schola@krkd.e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