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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킨디센터 Dec 31. 2018

멀고도 가까운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박사의 미래진로특강

안녕하세요? 이소연입니다. 흔히 진로특강이라고 하면,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 이렇게 노력하면 된다, 이런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는데요. 저는 그런 이야기가 현실적이지 못하다 보니 재미가 없더라고요. 어른이면 어른으로서 자기 삶을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게 더 재미도 있고 더 제 맘에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이야기를 하는 걸로 진로특강을 대신하려고 해요.



저는 한 번도 우주인이 되려는 꿈을 꾼 적이 없었어요. 아마 현실적으로 그런 꿈을 꿀 수 없었다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심지어 지원한 당시에도 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었어요. 우주인은 어딘가에 있는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보고, 안 되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또 내가 우주인으로 적합하지 않은데 우주인이 되면, 그것도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다 다르잖아요?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고. 예를 들어 키가 12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사람이 NBA에서 프로 농구선수로 뛸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다리 길이를 1미터 늘릴 수도 없고. 그렇지만 키가 작기 때문에 잘할 수 있는 일도 있고, 키가 엄청 크기 때문에 못 하는 일도 있을 거예요. 내가 농구 선수를 꿈꾸었다고 해도 내 키나 능력이나 적성이 맞지 않는데, 누가 시켜도 문제예요. 흔히 이거 너무 하고 싶은데 안 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친구들도 많은데요. 안 되면 그건 나하고 안 맞는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다행일 수도 있는 거예요. 물론 최선을 다한 뒤에 내린 결론이어야 하고요. 우주인을 지원하고 나서야 이런 생각을 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야지, 열심히 공부해서 석사학위를 받고,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가 되어야지, 이런 생각만 하고 달려가다, 우주인이 되겠다고 지원하고 나니, 갑자기, 우주인에 잘 맞지 않은데 우주인이 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죽을 수도 있잖아요. 내가 임무를 잘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심사위원을 어떻게 믿지? 실수로 날 뽑으면 어떡하지? 내가 어떤 일에 가장 적합하다는 건 어떤 사람도, 기관도, 제도도 보장해 주지 않잖아요. 결국 내가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노력하면 적합한 것이고, 다른 사람에 비해 적합한데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부족한 것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야 비로소, 우주인뿐만 아니라, 이제껏 내가 했던 공부와 노력도 과연 나에게 적합한 진로였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좀 많이 늦었지만 말이죠. 


출처: http://www.e2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897


우주인 선발에 지원한 사람은 전국적으로 3만 6천 명이었어요. 어마어마한 경쟁이 시작되는 거잖아요. 솔직하게 말하면, 3만 6천 명이 지원했는데, 마지막 1명이 내가 될 거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싶어요. 보통사람이라면요. (웃음) 3만 6천 명이라는 숫자를 보고 정말 ‘미션 임파서블’이구나 했어요. 절대로 안 된다. 이중 최종 300명으로만 선발되어도 1퍼센트니까 어마어마한 일이었고, 열심히 노력해서 거기까지는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감히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1명이면 0.00003퍼센트예요.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데 지금 다시 그때를 돌아보면, 안 될 것 같은 어려운 일이지만, 나름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만족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는 것 같아요.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잘하려고 하면 긴장하고 실수하게 되잖아요. 우리 집 목욕탕에서는 그렇게 잘 되던 노래가 무대에 서면 잘 안 나와요. 1년 내내 한 번도 노래하면서 음이탈이 난적이 없었는데, 공연을 멋지게 잘하려고 하다 보면 실수를 하게 되고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잘하려는 욕심 때문에 너무 긴장해서일 거예요. 


우주인에 지원한 동기는 딱 하나였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뭔가 나은 미래를 만들어보겠다고 이렇게 달려왔는데, 내 학창 시절에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이 있었나 돌아보니, 갑자기 우울해졌어요. 취직을 준비하려면 이력서를 써야 하는데, 고등학교 졸업, 대학 졸업, 대학원 졸업. 그 어떤 것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우리 학교 학생들 다 똑같은 이력서에 이름만 다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력서를 보고 나를 발견하기 어렵잖아요. 박사과정 막바지에 우주인을 뽑는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문득,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면 다른 일에 도전하는 게 더 힘들 텐데, 졸업하기 전에 한 가지라도 나만의 추억을 남겨보자는 거였어요. 이렇게 지원했기 때문에 마지막 2명에 들 거라는 목표보다는 경험과 추억에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언젠가 엄마가 되고, 아이가 청소년기에 방황할 때, 텔레비전에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이 나오면, “엄마도 우주인에 도전했었잖아, 300명까지 갔었고, 저 아저씨하고 찍은 사진도 있는데 어디 있나 보자”왠지 기분이 좋을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제 목표는 300명 안에 드는 거였어요. 뭐 300명 안에 들지 못하더라도 “300명이 목표였지만, 36000명 중에 5000명 안에든 게 어디야?”라고 이야기할 준비도 하면서요.


집중을 하면 시야가 좁아진다고 하지요?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에 집중하면 다른 게 잘 안 보여요. 유튜브에서 영상 보셨을 수도 있는데, 댄스 공연을 해요. ‘여러분 잘 지켜봐 주세요.’라는 얘기에 대부분 관중은 춤추는 것만 보게 돼요. 그 뒤로 곰이 다섯 마리 지나갔는데도 잘 몰라요. 쇼가 다 끝나고, 여러분 댄스공연 중에 곰이 몇 마리 지나갔을까요, 물어보면 곰을 본 사람이 거의 없어요. 춤추는 걸 보는데 집중한 나머지 다른 것은 못 본 거예요. 목표한 걸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하지 못한 것에만 집중하게 돼요. 그 과정 중에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간과하기 쉽죠. 사실 나는 아침 먹고 싶은 거 먹었고, 점심도 먹었고, 학교 끝나고 굳이 집에 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는데, 가고 싶으니까 갔잖아요. 내가 입고 싶은 옷이 있고, 내가 하고 싶은 헤어 스타일을 한 것도 포함하면 참 많은 것을 원하는 데로 했음에도, 우리는 대게 한두 가지 하지 못한 것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참 많은 것을 원하는 데로 했음에도, 우리는 대게 한두 가지 하지 못한 것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어요. 박사님이 되고 싶어서, 힘든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는데, 졸업이 안 될 거 같은 거예요. 연구도 잘 안 되고, 성적도 잘 안 나오고. 교수님이 미팅할 때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바보인 것처럼 얘기하셨어요. 어떻게 이것도 모르냐? 너 카이스트 어떻게 합격했어? 너 박사는 어떻게 왔니? 막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속으로, ‘내가 카이스트 오면 안 되는데 왔나, 내가 박사를 하면 안 되는데 하고 있나’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학교 밖 친구들은, 야 너는 좋은 학교 다녀서 좋겠다, 하는데,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 한 가지를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은 좋은 친구들과 선후배들도 많이 있었고, 락 밴드에서 보컬도 하고 있었고, 합창 공연도 하고 있었고, 날마다 밤 12시가 돼서도 마라톤도 하고 있었어요. 사실은 되게 많은 걸 원하는 데로 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우주인에 지원해서 300명 안에 들고 나서야 비로소 ‘아~ 내가 하고 싶어서 노력했더니 되는 것도 있구나, 인간 이소연이 완전 루저는 아니구나, 할 수 있는 게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목표를 좀 낮게 잡고, 이룰 수 있는 걸 좀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2명을 목표로 했다면, 300명 안에 들어도, 이들을 어떻게 제치고 2명에 들까, 초조했을 거예요. 300명에 들었다고 전화를 받아도 하나도 안 기뻤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목표가 300이었어요. 300명에 들었다고 전화받으니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요. 다 이루었도다! 이제부터는 다 보너스야. 그리고 보너스라고 생각하니까 더 잘 됐어요. ‘언제든 안 되면 하던 공부마저 하지 뭐’라는 여유도 생겼고요. 


출처: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67004


이런 생각도 했어요.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이고, 전 세계 인구는 60억이에요. 그런데 나는 항상 내 옆에 앉은 친구, 내 엄마의 친구의 아들, 그리고 우리 학교 전체도 아니고, 제 주변의 몇 백 명 될까 말까 한 학생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왜 나는 쟤보다 못하지, 왜 나는 쟤보다 못 가졌지, 하면서요. 그런데, 세상에는 훨씬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요. 카이스트에서 박사과정을 하다 보면, 카이스트에 다니는 학생이 전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요. 그래서 나보다 6개월 먼저 박사과정 졸업한 친구를 보면, 와 난 진짜 루저구나 하고, 실험실에서 멋진 논문 쓰고 잡지에 나온 선배를 보면, 와 저 선배는 저렇게 잘하는데, 나는 하는 것마다 안 되네 하게 되고요. 그런데 우주인 선발하는 데 갔더니, 학교 선생님도 계시고, 경찰관도 있고, 전투기 조종사도 있고, 60 되신 교장선생님, 70 세 기업 사장님이 계시더라고요. 나보다 천 배, 만 배 넘게 많은 돈을 가진 어느 기업의 회장님도 저보다 먼저 우주인 선발에서 탈락하셨어요. 난 그 사람이 못한 걸 한 거야. 기분 좋잖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쉽고 당연한 것이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는 얻기 힘든 것들이 진짜 많아요. 내가 고3이고, 수능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고1 학생에겐 부러운 것일 수 있어요. 나는 앞으로 2년 반을 고생해야 되는데 저 사람은 앞으로 6개월만 참으면 끝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얼마나 부럽겠어요. 여러분, 대학생 되면 좋을 것 같죠? 지금 대학생들 중에 웃고 있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다 취직 걱정 때문에 난리잖아요. 다시 고등학교 가고 싶어 할 걸요?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그때 좀 더 열심히 할 걸’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중학생들은 고등학생이 그렇게 부러워요. 엄마 아빠가 고등학교 가면 좀 더 잘해주잖아요. 대입이 코앞이라, 웬만하면 비위 맞춰주고. 초등학생은? 혼자 갈 수 있는 데가 없어요. 중고등학교 오빠들은 자기들끼리 놀러 다니는데 얼마나 부럽겠어요. 혼자 피시방 가고, 마음대로 오버워치도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의외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도 많고,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도 되게 많아요.


여러분들은 믿지 않겠지만, 부모님은 여러분을 엄청 부러워하실 거예요. 쟤는 좋겠다 아무 걱정 없이 학교만 다니면 되니까. 엄마 아빠 되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을 거 같죠? 더 짜증 나고 더 힘든 일이 많아요. 이런 거예요. 초등학교 졸업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중학교 가면 더 짜증 나잖아요. 중학교만 졸업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가면 더 화가 나잖아요. 대학에 가면 되나요? 우울한 대학생들 참 많은데, 왜냐하면 엄마가 대학만 가면 다 해결된다고 했는데 아닌 거예요. 살 빠진다고 했는데 살도 안 빠져, 여드름도 안 난다고 했는데 여드름도 계속 나고 말이죠. 저희 선배 하나는 엄마가 좋은 대학만 가면 여자들이 줄을 선다고 하면서 여자 친구를 못 만나게 하더래요. 대학을 갔더니 이미 다른 친구들은 예쁜 여자들 바로 뒤에 줄 서 있는데 자기는 한참 뒤로 줄을 서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더래요. ‘고등학교 때부터 줄 섰으면 좀 더 빨리 차례가 돌아왔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래요 (웃음). 대학 간다고 당연하게 해결되는 것은 별로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사기당한 느낌이 들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교수님들은, 너네 취직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그 학점으로 뭘 하려고 하니, 이런 얘기나 듣게 되고 말이죠. 그런 과정 다 거쳐서 부모님이 되신 거예요. 우리의 부모님들도. 



제가 작년에 인생샷을 하나 찍었어요. 그래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날 5년 전 사진이 올라왔어요. 그런데 그 5년 전 사진이 그 인생 샷보다 훨씬 예뻐 보이더라고요. “저 때 내가 남자 친구를 사귀고 결혼을 했어야 했는데”라고 페북에 썼어요. 그랬더니 한 선배가 “소연아, 오늘이 지금 네 인생에서 가장 젊고 이쁜 날이다. 5년 뒤에는 또 오늘 사진을 보면서 똑같은 얘기 할걸”이라고 답글을 단 거예요. 여러분의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젊고, 가장 자유롭고, 가장 신선한 시간인지도 몰라요. 물론, 우리는 가끔 아주 맛있는 것을 아껴야 할 때도 있어요. 왜냐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오늘은 신선한 주스가 있는데 내일도 있을지는 모르니까, 한 병은 냉장고에 넣어 두잖아요. 때에 따라서는 오늘의 행복을 잠시 유예할 때가 있기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멋진 순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출처: http://news.hankyung.com/article/2006122587931


우주인에 지원해서 마지막 2명에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물었어요. 도대체 어떻게 3만 6천 명 중 2명에 선발될 수 있었느냐, 혹시 미리 준비를 했냐라고 말이죠. 달리기 했죠, 필기시험 봤죠, 건강검진했죠, 정신건강 측정했죠, 면접했죠. 체력검사, 영어 인터뷰, 1주일 동안의 심층 건강검진. 고압 챔버, 저압 챔버, 팀워크 평가, 과학실험도 해 보라고 했었던 것 같아요. 합숙하면서 최종 10명이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도 테스트하고요. 러시아까지가서 거대한 물탱크 안에서 스킨스쿠버 하면서 미션 수행하는 것도 테스트했었어요. 지원자들 중 그 누구도 지원하기 전에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미리 알 수는 없었어요. 쉽게 말하면 기출문제 같은 것은 없었어요. 30명 남았을 때 우리끼리 농담처럼, ‘나중에 우리는 우주인 학원’ 차릴 수 있겠다’라는 농담을 했을 정도예요. “여러분 저희 학원에 오시면 마지막 30명까지는 보장해드립니다.” (웃음)라고 말이죠. 언제 어디로 오세요, 해서 가보면, 그 자리에서 무슨 테스트를 할 것인지 알려 줬어요. 편한 옷이 필요하면 그 자리에서 나눠주면서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모르게 우주인이 될 준비를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제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과학고를 거쳐 카이스트나 서울대 같은 나름은 잘 알려진 대학으로 진학을 했었는데, 그중에 운동 잘하는 친구는 많지 않았어요. 주변에서 공부에 집중하라고 하다 보니 공부만 해서, 다른 것엔 서툰 친구들이 많았죠. 저도 그중 하나였고요. 그런데 외국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가 보니, 백인 친구들은 공부도 잘하는데, 체력도 너무 좋은 거예요. 지능이 같다면, 하루 더 날 샐 수 있는 체력이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려면 나도 체력을 키워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카이스트로 돌아와서 매일 저녁, 4~5킬로미터정도 뛰고, 아침에 수업 들어가기 전에 수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주변 친구들이, “야~너 머리로 안 되니까 몸으로 해보려고 하는 거지?”하며 웃기도 했어요. 대학교가 인생의 전부가 아닌데, 졸업해도 연구를 해야 하고 또 일을 해야 하는데, 무대는 대한민국이 아니고 전 세계인데, 외국 친구들은 저렇게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데, 나도 몸을 좀 키워놔야겠다, 생각했던 건데 말이죠. 우주인 선발 초반에 3.5km 뛰는 테스트를 하는데, 매일 저녁 5km를 뛰는 저한테는 많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근데 주변 사람들은, 아니, 연구하고 공부하느라 바빴을 텐데, 달리기는 언제 했어, 그러더라고요. 



우주인 선발과정 중에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강연하는 것을 테스트하기도 했었어요. 제 주변 동료들 중에 발표에 서툴거나, 사람들하고 눈도 잘 못 마주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연구 잘해놓고도, 발표를 제대로 못 하니까, 그 연구에 대해 인정받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죠. 전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떠드는 게 너무 좋았어요. 연구는 제 친구들보다 못하는데, 발표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보니, 저의 부족한 부분을 그렇게 채우기도 했었어요. 한 번은 200여 국가의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연구 발표를 한 적이 있었어요. 보통은 발표가 끝나면, 그 연구는 어떻게 하게 됐어요,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이런 질문을 받죠. 그런데 제 발표가 끝나니까, 사람들이, 저 영상은 어떻게 만드셨나요, 저 디자인은 누가 한 건가요, 라는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날 돌아오면서 생각했어요. 내가 연구를 직접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한 연구를 좀 더 돋보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알아보니까, 외국에는 그런  회사가 실제로 있더라고요. 나는 박사과정이 끝나면 저 일을 해야 되겠다. 그러니까, 원래 걸그룹이 꿈이었는데, 어느 순간 걸그룹보다 그 기획사 사장님이 더 멋있어 보이는 것과 같은 변화가 생겼던 거죠. 그 덕분에, 우주인 선발에서 면접이나 팀워크 테스트, 과학실험 발표 테스트를 잘 치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마지막에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우주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보는 테스트였어요. 원래 꿈이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과학기술을 설명하는 거였으니, 의도하지 않았지만 미리 준비한 사람이 된 거예요. 무슨 이야긴가 하면,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을 지금 당장은 모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하려고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때 배운 것들을 쓸 기회가 오면서 다른 길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누군가는 그때부터 준비할 때, 나는 이미 준비된 사람인 거예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우주인 최종 후보 2명으로 선발되고 러시아에 갔어요. 그랬더니 건강검진을 새로 다시 해야 된대요. 그런데 1주일 동안 병원 안에 갇혀 있으면서 건강검진을 하는 건 너무 힘들었어요. 한 이틀 동안 굶어야 되고 또 어떤 검사는 되게 아프기도 하고. 한국에서 검진한 결과를 가지고 갔는데, 러시아 병원에서 파일이 열리지 않는 거예요. 의사는 그냥 처음부터 다시 하래요. 검사를 최소한으로 받으려면 어떻게든 파일을 열어야 했어요. 그래서 급기야 러시아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제가 컴퓨터 앞에 앉았어요. 어떻게든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물불을 안 가리게 되잖아요. 컴퓨터 화면에는 온통 러시아 말이고, 러시아 알파벳도 모르지만, 러시아 윈도우나 우리 윈도우나 같을 거야, 하며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 제가 윈도우나 자주 쓰는 프로그램의 메뉴 위치를 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스크롤하고 올라가서 뭘 클릭하면 뭐가 나오는지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비티>에서 산드라 불록이 중국 우주선을 조종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원리였어요. 감사한 게, 박사과정으로 연구소에서 일을 할 때 우리 교수님이 문서작업을 엄청 시키셨어요. 연구하고 아무 상관없는 일을 시킨다고 불만이 가득할 때가 많았었죠. 그런데 그때 그 경험 덕분에 러시아에서 파일을 열 수 있었던 거예요. 그랬더니 러시아 교관이, 쟨 천재다, 그러는 거예요. (웃음) ‘러시아어를 하나도 모르는 애가 러시아 말로 작동되는 컴퓨터에서 우리도 못 여는 파일을 열다니’하면서 말이죠. 아마도 파일명 몇몇이 한국말로 되어있어서 러시아 담당자들에게는 평소와는 다르게 보인 어색함 때문에 헷갈렸던 탓이지,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날 처음으로 저에게 문서 작업을 시켜주신 교수님께 감사했어요. 그 경험 이후로, 요즘은 아주 하기 싫은 일이 저한테 주어졌을 때, 내가 언제 또 이때 배운걸 기가 막히게 써먹게 하려고 나에게 주어졌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러니까 허투루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 같은 억울함이 줄어들었죠. 여러분이 어렵게 배운 모든 것들은 언젠간 쓰게 돼요.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쓰일 수도 있고요. “내가 이 수학 공부를 해서 어디다 쓰나, 미국 갈 일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이놈의 영어 왜 해야 돼?” 란 생각 많이 하셨죠? 언젠간 쓸 일이 생기고요,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보람을 느끼는 날이 꼭 와요. 그런데 그게 언젠지 모른다는 게 함정이지만요. 오늘이 될 수도 있고요. 한 달 뒤가 될 수도 있고. 몇 년 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쓰이게 될 수도 있어요.



저는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단 한 번도 대한민국 역사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수학이 항상 재미있었고 그다음에 물리, 화학이었어요. 고등학교 때 국사선생님이 저를 불러서, 야, 그래도 명색이 과학고인데 사회탐구 영역이 전국 평균이 안 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 하시는 거예요. 사회탐구 영역 모의고사 채점을 했는데 한 페이지 전체에 동그라미 친 게 하나가 없는 거예요. 수학은 다 동그라민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공부를 안 한 건 아니에요. 수학은 1시간을 해도 되는데, 역사, 한국사, 세계사는 3시간을 해도 안 되네요.”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아, 나는 키가 120센티라서 농구가 안 되는구나, 내 브레인은 그냥 역사가 안 되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웃긴 건 선생님이야. “그래,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건 있어, 그냥 수리를 하나 더 맞자, 수리 주관식 하나 더 맞으면 사회탐구 2개 틀려도 돼.” 실제로 수능 봤을 때, 사회탐구 영역은 3갠가 맞고 다 틀렸어요. 그때만 해도 나는 공학도가 될 거고, 공학박사가 될 거니깐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주인이 된 거예요. 우주인이 대한민국에 저밖에 없잖아요. 전 세계 우주인이 모이거나 전 세계 과학자들이 모이는 자리에 한국 사람이 저 혼자일 때가 많아요. 요즘처럼 남북관계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때, 거기 있는 사람들이 누구한테 한반도 문제를 물어보겠어요? 소연, 어떻게 하다가 남북이 분단되었니? 나는 사회탐구 영역을 포기했는데, 이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우물쭈물하고 있어요. 그럼 옆에 있던 어떤 미국인이 조선 왕조부터 시작해서 한국 역사를 설명해요.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아 대한민국이 이렇게 분단되었구나, 알게 되는 거예요. 물론 쪽팔림은 저의 몫이에요. 모든 사람이 저에게 묻죠. 너는 왜 몰라, 한국 사람이? 내가 대한민국 대표가 될 줄 몰랐지. 알았으면 했겠죠. ‘이제라도 역사공부를 해야 되겠구나. 30살이 넘어도 해야 되는 건 해야 되는구나.’ 그런데 정작 공부를 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때는 초등학교 사회책이 있었고, 중학교 때는 국사책이 있었고, 고등학교 때도 국사책이 있었는데, 30살 넘은 사람을 위한 국사 교과서 같은 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친구가, 어차피 초등학교 때부터 안 했던 거 초등학교 책부터 다시 봐,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만화로 된 초등학생용 한국사 12권을 샀어요. 서점에서 사기 쪽팔려서 인터넷으로 주문했어요. 항공우주연구원에 재직할 때 차로 이동하는 일이 엄청 많았거든요. 날마다 차를 한 5시간 탔는데 그때 읽었어요. 언제 또 누가 뭘 물어볼지 모르니까. 심지어는 <<먼 나라 이웃나라-한국>>  영어판을 사서 읽었어요. 영어로 설명해야 되니까. 강연이 있는 날에 좀 일찍 도착해서 차 안에서 책을 읽고 있었어요. 날이 더워서 창문을 살짝 열어 놨는데, 초등학생 손잡고 오신 어머님이 강연장에 들어가려다가 저랑 눈이 마주쳤어요. “어우, 박사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면서, 읽던 책을 덮었는데, “어우, 박사님은 역시 어린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시려고 책도 어린이 책을 읽으시는군요, 정말 대단하세요” 하더라고요. (웃음) 포기하지 말 걸 그랬어요. 나하고 상관없는 줄 알았는데 결국 하게 되더라고요. 


대학에 갈 때 학과를 정하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어느 학과가 나하고 맞을지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어떤 학과를 나와서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고요. 여러분도 그렇죠? 이건 여러분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의 누구나 그래요. 어느 나라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대학 갈 때 전공 정하는 거 너무 어렵고, 그 전공으로 무슨 직업을 얻을 수 있는지 알기 어려워요. 사실 그렇기 때문에, 대학 가서 전과를 하거나 학교를 옮기는 건 너무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해요. 포장을 뜯어보지 못하고 물건을 샀는데 집에 와서 찬찬히 보고 나서 마음에 쏙 들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그런데 가게에서는 뜯은 물건은 안 바꿔준다면 선택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대학도 사실 마찬가지예요. 제가 학과를 정할 때 너무 걱정했던 이유는 못 바꾸는 줄 알았기 때문이에요. 학교를 다시 가는 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요. 그런데 주변을 보니까 카이스트 그만두고 다른 학교로 간 친구들도 많았어요. 그 친구들이야말로 용자였던 거죠. 억지로 4년 참고 다니다 그 뒤에야, 이게 내 길이 아니었네 하기도 하고, 1~2년 다니다가 진로를 바꾸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멋있어 보였어요. 결단력도 그렇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어요. 여러분이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꿈이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 건 너무 당연해요. 중요한 건, 여러분이 주도적으로 여러분 인생을 계획하고, 그것을 위해 결단하는 것이에요.



저는 꿈이 3년 이상 가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꿈을 발표할 때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었어요. 중3 때는, ‘아, 판사가 낫겠구나.’ 했고요. 텔레비전에서 <포청천>이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멋있는 거예요. 그런데 알게 되었죠. 내가 국사를 잘 못하고, 글로 하는 걸 잘 못한다는 것을. 숫자로 쓰인 게 훨씬 재미있었고요. ‘아, 법대를 가면 안 되겠네, 그럼 어디로 가지?’ 하며 고민이 되었어요. 그런데 친구들 몇 명이 과학고를 가겠다고 준비하더라고요. 과학고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던 제가 친구들이 한다는 말에 같이 준비하고 시험 보러 갔다가 덜컥, 120명 뽑는데 118등으로 뽑혔어요. (웃음) 원래 몇 등으로 붙었는지 안 가르쳐주거든요. 그런데 첫 학기에 꼴등을 했더니, 담임 선생님이, 너는 118등으로 들어와서 기대가 없었다, 이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됐어요. 넌 예전처럼 90명 뽑을 때 시험 봤으면 떨어졌을 애야, 이러면서 저를 엄청 구박하셨어요. ‘아~ 과학고를 괜히 왔나? 118등으로 오는 줄 알았으면 안 오는 건데.’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래도 수학이나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덕분에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참 창피하고 어이없는데, 그때 저는 제가 물리를 꽤 잘하는 걸로 착각했었어요. 카이스트 가서 첫 학기에 물리를 배우면서, ‘와, 세상에 물리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구나, 물리는 절대 하면 안 되겠다’란 생각을 하게 됐죠. 고등학교 때는 생물반이었어요. 개구리 해부하고 토끼 해부하고 그러면서 좋아했는데, 대학교 1학년 때 배운 생물은 너무 어려운 거예요. 책은 다 영어고. 내가 다시 생물 공부를 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까지 했던 것 같아요. 기계공학과에서는 생물 관련 연구는 절대 안 할 줄 알았는데, 박사과정에서 결국 생물 공부를 해야 했어요. 1학년 때 생물 수업이 듣기 싫어서 피했던 건데, 박사 2년 차에 연구 때문에 학부 2학년 수업을 들어야만 했어요. ‘아, 미운 정 무섭구나. 너무 싫어하면 결국 만나게 되는구나. 아무리 싫어도 그때 해결하는 게 낫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죠.



결국 진로에 대해 여러분에게 확실히 이야기해 줄 사람은 없어요. 혹시라도 엄마가 확실하게 얘기해 주시면, 의심해봐야 돼요. (웃음) 왜 이런 말을 자신 있게 하냐 하면, 제 친구들 중에서 정말 잘 나가는 직업을 가진 친구들, 누가 봐도, 와,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하는 친구들 직업은 15년 전우리가 진로를 고민할 때는 존재하지도 않은 직업인 경우가 많아요. 그 친구들의 부모님은 물론, 고등학교 때 진로 담당 선생님들이 어떻게 조언하는 게 가능하겠어요? 존재하지도 않은 직업인데. 제 친구들 중에서 모바일 앱을 개발하거나 프로그래밍하는 친구들 참 멋진데, 생각해보면 우리 고등학교 때는 스마트 폰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을 어떻게 준비하겠어요? 여러분도 미래에 지금 존재하지 않는 어떤 일을 할 확률이 되게 높아요. 그럼 어떡해요? 미래는 여기 쓰인 것처럼‘물음표’, ‘모른다’ 예요.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는 거예요. 성경 말씀 같지만. (웃음) 제가 고등학교 때 우주인 될 거라고 했으면 주변에선 다들 비웃었을 거예요. 여러분들은 그렇게 말해도 되겠지만요. (웃음) 생각해 보세요. 제가 어릴 적엔 우리나라에 인공위성도 없을 때에요. 항공우주공학과가 몇 군데 있었지만, 거기 졸업하면 세탁기 만들고 에어컨 만들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요. 지금 여러분은 공감하기 힘들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취직한 선배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고흥에서 로켓을 직접 만들고 테스트하시는 과학자 공학자 여러분들이 계시잖아요. 결국 제가 우주인이 된 것도, 우주인이 되려고 노력해서라기 보다는, 그때그때 그 순간순간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결과로 배우게 된 것들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거죠.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2502355


“초등학생, 중학생들은 다음에 우주인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항공우주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 고등학생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제가 만난 여러 방면의 대가들 중에 자기에게 당장 주어진 일을 게을리하고 그 자리에 가 있는 사람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가 꿈꾸는 일을 하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일, 당장 내가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일에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이었어요. 제 친구 중 하나는 이런 이야기를 한적 있어요.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언젠가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때 엄마랑 사이도 너무 안 좋고 가족들하고 연락도 안 한다는 건 너무 이상할 것 같다는 거예요. 그런데 엄마는 자기가 별로 내키지 않는 카이스트에 가기 위해 노력하라고 하신 거죠. ‘너 여기 졸업만 하면 그 뒤로 네 인생 터치를 안 할게,’ 하시니까, “그래, 엄마랑 싸울 수는 없고 내가 일단 이 학교를 졸업하자”라고 맘먹었데요. 카이스트 졸업하고 엄마한테 선언했어요. 엄마 나는 음악이 하고 싶은데 엄마가 카이스트 졸업하라고 해서 졸업했으니까, 이제부터는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고 싶다고. 그러고 나서 음악공부를 다시 했어요. 현재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물론 이건 좀 특별한 경우이긴 하지만 그 친구가 존경스러운 게, 내가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하고 싶은 걸 이루었다는 거죠. 그 친구는 카이스트 다닐 때도 날마다 피아노 연습을 했었어요. 졸업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도 하면서요.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 다른 일을 더 잘하긴 어렵다는 생각을 그 친구를 보면서 확신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외국에 있던 어떤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저랑 분야가 완전히 달랐어요. 그래서 서로 아주 생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무슨 얘긴지 알 것 같았어요. ‘이런 뜻이죠? 공학으로 치면 이렇게, 이렇게 한다는 말씀이시죠?’라고 하면서 대화를 한 거예요. 분야가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어요. 어느 수준을 넘어선 사람들은 다른 분야로 넘어갈 때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일 때가 있더라고요.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공부를 잘하는 법이나, 음악을 잘하는 법을 아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어떻게 다스리는지를 아는 것 같아요.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기 싫은 일을 해서 이겨냈을 때, 뭔가 이뤘을 때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초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박사님은 공부가 재미있었어요?’인데요. 저는 웬만한 사람들에 비해 공부를 많이 하긴 했어요. 박사과정 졸업했을 때가 서른 살이었는데, 그때까지는 쭉 공부만 했고 박사를 마치고 나서 항공우주연구원에 5년 다니다가 또 학교에 가서 2년 더 공부를 했으니까요. 그래서 친구들이 공부 지긋지긋하지도 않냐라고 묻기도 했는데, 좋아서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제게 필요했고 해야 되니까 했다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제 주변에 천재 소리 듣는 친구들도 있고, 명문대학교 교수님이 된 친구들도 있는데, 공부가 좋아서 한 친구는 많지 않아요. 솔직히 대부분이 하기 싫다고 툴툴거리면서 했었어요. 해야 되니까 한 거예요. 공부 말고 음악에 미친 친구? 365일 24시간은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어느 순간에는 하기 싫거나 꼴도 보기 싫다고 했었어요. 하지만 해야 되니깐, 자기 꿈을 이뤄야 되니까 그 어려움을 이기고 노력한 거죠. 운동이 좋아서 하루 20시간 했다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날마다 20시간 동안 좋지는 않아요. 어느 순간 꼴도 보기 싫고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은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때도 꾹 참고 노력해야 세계적인 운동선수가 될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그 시간을 이겨내며 하는 거예요. 

저도 실제로 토하면서 한 기억이 있어요. 우주인이 되면 생존훈련을 받아요. 해군 함정이 바다에 우주선 캡슐을 던져버려요. 그러면 사고 난 것처럼 캡슐 안에서 우주복을 벗고, 주황색 방수 옷으로 갈아입고 물 위에 둥둥 떠 있으면 헬리콥터가 와서 구조되기까지 두세 시간 걸리는 과정을 훈련하는 거죠. 우주선 안이 되게 좁거든요. 3명이 딱 붙어있어야 하는데, 10킬로그램짜리 우주복을 벗고, 그다음에 고무로 된 옷을 입으려면 장난이 아니죠. 한 사람이 벗을 때 두 사람이 비켜서 공간을 내고, 옆 사람이 옷을 당겨서 입혀주고 해야 돼요. 밀폐된 공간에 햇볕이 들어와서 실내 온도가 50도까지 올라가요. 옷을 벗고 땀을 흘리면서 고무 옷을 입으려면 땀 흘린 손에 고무장갑 끼는 것처럼 잘 들어가지도 않아요. 캡슐은 파도에 계속 흔들려서 멀미로 토하게 되고요. 1시간가량을 매 3분, 5분마다 토하거든요. 그럼 탈진이 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오는데,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어떻게든 계속해야 해요. 어느 순간 바깥에서 의사가 이렇게 말해요.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으면 얘기해라.’라고요.‘그만한다고 할까?’라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하는데, 왜 그 말을 못 하냐 하면, 지금 여기서 멈추면 내일 처음부터 또 해야 해요. ‘지금 눈 딱 감고 버텨야지, 1시간이나 했는데, 1시간만 더 하면 되는데, 내일 하면 처음부터 다시 2시간 해야 되는데. 그리고 내가 그만하겠습니다 하면, 이 두 명도 내일 처음부터 해야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너무 힘들지만 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은 훈련이 끝나요. 그럼 고무 옷 벗기고, 몸무게 재고 심장은 제대로 뛰는지, 다른 이상은 없는지 확인해요. 2시간 동안 땀 흘리고 토한 덕분에 몸무게가 5킬로그램 줄었어요. 그런데 묘하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살면서 언제 그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 희열, 내가 이걸 해냈다는 성취감, 그 기분은 아주 힘든 상황을 이겨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죠.


여러분도 한 번쯤은 경험했을 거예요. 내가 뭔가를 진짜 열심히 해서 이뤘을 때 느끼는 희열이요. 그게 꼭 대단한 일일 필요는 없어요. 내가 날마다 하나씩 목표했던 것을 이뤄나가는 희열. 내가 이루어 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게 중요해요. 왜냐하면 너무 무리한 목표를 세우면, 못 이룬 목표가 쌓이고, 그럼 나는 목표를 못 이룬 사람이란 생각에 우울해지거든요. 내가 하루에 100개쯤 할 수 있어도 80개쯤으로 목표를 정하고 100개를 하면 목표를 이룬 사람이 되는데 내가 120개를 목표로 하면 100개를 하고도 목표를 못 이룬 사람이 되잖아요. 본인이 직접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노력을 할 때,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룬 사람으로 희열을 느끼는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The Soyuz TMA-05M rocket launches from the Baikonur Cosmodrome in Kazakhstan. NASA


1년 동안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고 2008년 3월에 카자흐스탄으로 갔어요. 러시아는 발사장이 카자흐스탄에 있어요. 중앙아시아 평원 한가운데. 예전에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는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이 다 소비에트 연방이었으니까요. 카자흐스탄에 있는 발사 기지는,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후에도 러시아 군인들이 관리하고 러시아 로켓 발사에 이용되었어요. 발사 한 달 전에 가서 적응하고 로켓 안에 제 몸이 맞는지, 우주복이 저한테 맞는지 테스트하면서 우주비행을 준비하죠. 2008년 4월 8일이었어요. 로켓 발사를 하려면, 우주정거장에는 어떤 미생물도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샤워를 하고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알코올로 다 닦아요. 그리고 내복을 두 겹으로 입어요. 관장도 하고요. 그리고 우주복을 만드는 공장에 가서 우주복을 입고 버스로 로켓 발사대로 이동했는데, 버스에서 내렸더니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이신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라는 분이 저를 맞이하셨어요. 이 분 손녀가 저와 동갑인데요, 1963년에 혼자 로켓 캡슐을 타고 우주를 몇 바퀴 돈 최초의 여성 우주인이에요.  예정에 없던 일인데,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이 여자라는 소식을 듣고, 축하하고 배웅해 주고 싶다고 오셨대요.


출처: Alexander Nemenov/AFP/Getty Images


그때 사진을 보면 저는 아주 행복해 보이는데, 이 분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아요. 어떤 느낌이냐 하면, 엄마들이 자신들이 겪은 힘든 일을 우리한테 안 시키고 싶어 하시는 그런 거 같아요. 뭐랄까, 엄마는 12살, 13살에 동생들 밥해 주고, 할머니 바쁘실 때는 집안일도 다 하셨다는데 중학생인 여러분이 뭘 하려고 하면 너는 공부나 하라고 하시잖아요. 아빠는 10살 때 혼자 버스 타고 할아버지 댁에 갔었다고 영웅담을 늘어놓으시면서도, 여러분은 중학생이 돼서 수학여행 가는 건데, 꼭 전화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화장실 갈 때 옆 친구한테 얘기하고 가라면서 엄청 걱정하시죠. 당신은 26살 때 우주에 갔으면서, 손녀 같은 조그만 여자애가 우주를 간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이 되셨나 봐요. 제 팔뚝을 잡고, “별 일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별 일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하셨어요. 저는 걱정 하나 없이 이렇게 웃고 있는데 말이죠. 세계 최고의 영웅이라는 이 분도 그 순간엔 저에게 할머니 같은 분이셨어요. 한 10년, 15년 뒤가 되면, 저도 이렇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른 친구들을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우주인도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것을 알면 희망을 갖지 않을까요?


제가 요즘 미국에서 대학생들, 대학원생들 커리어 멘토링을 해요. 진로상담 같은. 어디나 여러분 나이 또래 친구들은 다 진로 고민을 해요. 어느 날, 여학생들 중에 공대를 다니는 친구들이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은데, 이소연 박사님이 이 친구들 만나서 얘기 좀 해주시면 좋겠다는 이메일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제가 한국에서 우주인이 되었고, 항공우주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을 했고, 미국 UCBerkeley에서 공부도 했는데, 취직을 못 하고 있다고.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한국의 많은 취준생들의 마음이 공감되는 상황이었죠.) 나도 지금 취직을 못 해서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내가 누구를 상담하냐, 그랬는데 어떻게 답장이 왔는지 아세요? 우주인도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것을 알면 희망을 갖지 않을까요?  (웃음) 그래서 솔직히 얘기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솔직히 얘기해도 된대요. 그래서 정말 대학생 3명을 앉혀 두고, ‘나도 지금 내 코가 석자다. 내가 나이가 서른아홉, 마흔인데 그리고 내가 한 때는 항공우주연구원에서 일했고 우주까지 다녀왔지만, 지금도 나는 진로가 고민이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여러분들이 진로를 고민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나는 이미 기계공학 박사를 했고, 우주인을 했기 때문에 진로에 제한이 있기도 하고, 40살인 내가 지금 새로 무엇인가 하는 게 쉽겠냐, 20대인 당신들이 쉽겠냐? 나는 여러분들이 부럽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내가 정말 부러워하는 티가 났나 봐요. (웃음) 말로만 그런다고 느꼈으면, 에이, 왜 이러세요, 이랬을 텐데,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것 같았는지, “어우.. 정말 힘드시겠어요”, 라며 웃으면서 돌아갔어요. “우주인도 힘들다는데 뭐.” 싶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진로를 고민하고 힘든 거 정상이에요. 내가 좀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죠? 고민 없이 지금 당장 행복하면 그건 문제일까요? 그것도 좋은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다 더 잘하고 싶으면, 또 고민이 생길 거예요. 저도 여전히 고민이에요. 왜냐하면 저와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 대부분이, “나 여기서 일해” 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앞으로 10년 뒤에 어디에 있을지 예측되는 것 같아 보여요. 그런데 전 그렇지 못하거든요. 지금도 어느 정도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실리콘벨리의 스타트업 회사와 일을 하기도 하는데. 작년에 제가 한 3개월 정도 어느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강의가 없어지고, 한 6개월 일하다가 잘 안되고 하니까,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아요. 과연 어디에서 내가 진득하게 오래 일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1년 간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 왔어요. 남편한테 이야기했더니, “넌 1년만 하고 말 거야?”라고 묻더라고요. “아니 일단 1년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해.” 가 제 대답이었어요. 사실 항공우주연구원에 다닐 때는 내가 언제 그만둘까 고민만 했지, 회사가 나를 자를까 걱정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몇 번 하고 있는 일이 되다, 안 되다 하다 보니, 1년 일 시켜준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더라고요. 여러분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불안한 거 아니에요. 누구나 그래요. 되게 괜찮은 척하는 여러분 부모님들도, 내년에도 여러분들을 잘 돌볼 수 있을지, 내년에도 이 집에서 잘 살 수 있을지, 내년에도 얘들을 학원에 가라고 잔소리할 수 있을지 불안하실 거예요.


출처: http://www.etnews.com/200807020126


다시 우주 이야기를 할게요. 테레시코바 할머니의 걱정을 뒤로하고 저는 성공적으로 우주에 갔어요. 그리고 18가지 실험을 했어요. 우주인만 뽑은 게 아니라, 실험도 몇 백 개 제안을 받아서 그중에 18개를 뽑았어요. 전문가들이 제안한 실험도 있고, 과학교과서에 나오는 교육 실험들도 있었는데, 저한테는 그 교육 실험이 훨씬 더 어려웠어요. 전문적인 실험들은 가이드라인이 있어서 그대로 한 결과 데이터만 가지고 가면 되는데, 교육 실험들은 제가 과학 교사가 되어서 과학 수업하듯 하는 것이라 쉽지 않았어요. 지금 다시 한다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때는 학생들한테 설명을 하면서 실험을 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힘들더라고요. 이때 만든 자료들이 여러분 학교 도서관이나 자료실에 있을 거예요. 당시에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에 나누어 드렸거든요. 아마 그것 때문에 두려웠던 것 같아요. 10년 뒤, 15년 뒤, 20년 뒤에도 과학을 배우는 청소년들이 보고 또 볼 텐데, 혹시라도 실수를 하면 어떡하나 했던 걱정 때문이었을 거예요. 짬이 날 때마다 무중력이 어떤 걸 보여주기 위한 영상들을 찍기도 했어요. 소림사의 사부님이 아니어도 공중에 떠서 명상을 할 수도 있고, 힘들이지 않고 성룡처럼 날아 발차기도 할 수 있었어요. 당시에 반기문 UN사무총장님이 한국 우주인이 우주에 간다고 하니까, UN기를 보내주셔서, 우주에서 세계 평화를 기원하고 우주에서만 찍을 수 있는 도장을 찍어서 갖다 드렸어요. 지금도 뉴욕에 있는 UN 본부 사무총장실 복도 옆에 이 깃발이 걸려 있다고 들었어요. 


높은 타워 같은 데 올라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뭘 하나요? 우리 집 어디지? 아, 저기가 잠실 야구장이구나. 이러잖아요.

우주인들이 우주에 올라가면 맨 처음에 뭘 할까요?



자신의 나라를 찾아요. 우주정거장은 하루에 지구를 16번 돌아요. 한 바퀴 도는데 90분, 얼마나 빠른지 아시겠죠? 언제 한국이 나타나나 기다리다, 한국이 나타나서 사진 찍으려고 카메라 들고 오면 이미 태평양이더라고요.  “나는 하필 카메라 잠깐 드는 사이에 쑥 지나가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걸까?”란 의문이 들었어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겠다고 원한 것도 아니고, 선택한 것이 아닌데 말이에요. 대한민국이 G20 중에 하나라는 얘기는 들었죠? 이게 무슨 뜻인가요? UN 회원국이 200개가 조금 넘는데, 그중에서 잘 나가는 나라 20개가 G20이라고 하면 대략은 맞을 거예요. 우리가 그런 잘 나가는 나라에 속해 있는 거예요. 상위 10퍼센트. 직접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태어나 보니 전 세계 상위 10퍼센트에 속해 있는 거예요.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무작위로 흩뿌려지듯이 태어났어요. 만약에 내가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확률적으로 보면 우주정거장이 휙 지나치는 한국보다는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 혹은 중국 같은 데서 태어날 가능성이 더 높을 거예요. 만약에 제가 중국에 태어났다면 아예 학교를 못 갔을 수도 있겠죠. 제 또래의 중국 여자 아이들 중에는 출생증명서 없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다고 들었거든요. 제가 전 세계 강연을 다니다 보면, “내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났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았을 텐데.” 하는 청소년들이 의외로 많아요. 나는 그리 대단하다 생각한 적이 없는데, 누군가는 그걸 부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우리가 G20에 속하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 180여 나라의 사람들이 우리를 부러워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나는 평창 롱 패딩 입고 있는데 친구가 캐내디언구스를 입고 나타났어요. 엄청 부러울 수 있죠. 하지만 아예 입을 재킷이 없는 친구는, 캐내디언구스를 갖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을 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대한민국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을 본 다른 180개 국가 사람들이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요? 이미 가지고 있는 무언가에 만족하지 못하고 화를 내는 것보다는 감사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아,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니 감사해야 할 게 많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예를 들면, 우리는 그렇게 대한민국 교육제도가 참 안 좋다고 불만인데, 교육제도라는 것이 아예 없는 나라가 아직도 많아요. 교육제도가 아예 없으니, 교육제도에 화를 낼 이유도 없어서 좋을까요? 그런데 왜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게 정상이에요. 여러분에게 주어진 좋은 것들이 참 많지만, 결국은 그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도 노력해야 생겨요. 머리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요? 머리카락이 있으니 감사하죠. (웃음) 머리 빠지는 게 엄청 고민인 친구가 있는데, 이제 스타일 따위는 배부른 소리래요.


11번째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각자 고민은 너무 다르고 힘든 일도 다 달라요. 그리고 각자 처한 상황도 다 다르죠. 하지만 치열하게 노력하면서 찾다 보면 감사할 게 참 많아요. 저녁에 마음먹고 한번 적어 보세요. 100가지는 나올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닥친 어려운 일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자신에 대한 믿음은 자기부터 가져야 돼요. ‘아, 엄마는 왜 날 못 믿지?’라는 생각했던 친구들 있을 거예요. 내가 나를 못 믿는데 누가 날 믿겠어요? 나는 노력해도 이거 안 될 거야. 내가 그렇지 뭐. 이런 생각 하지 마세요. 잘 안 팔리긴 했지만, 10여 년 전에 제가 <<열한 번째 도끼질>>이란 책을 썼어요. 우리나라 속담 중에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가 있죠? 그런데 사실은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진짜 많아요. 요즘은 10번 정도 찍어 넘어가는 나무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내가 10일 동안 공부했는데 영어 성적이 왜 안 오르지? 10시간 동안 공부했는데 왜 수학 성적이 안 오르지? 이처럼 10번 찍었는데도 안 넘어가는 건 많아요. 그래도 11번째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아니 12번째, 13번째 도전해야죠. 그러다 보면, 내가 몇 번 노력했는지 잊어버리는 순간이 오고 노력하는 게 습관이 돼요. 그리고 안 하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상태로 발전하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여러분이 목표한 것에 가까이 가 있는 여러분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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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박복선) schola@krkd.eco

은수(이은수) eunsoo@krkd.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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