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부루마블 말고도 재밌는 게임이 많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크리킨디 게임랩에서 보드게임 추천 리스트를 준비했습니다. '오리지널 소셜게임'이라고도 볼 수 있는 보드게임. 가족, 친구들과 함께 둘러앉아서 게임 한 판 해보면 어떨까요?
*게임 이름, 난이도(별점), 최대인원, 플레이 시간을 표기했습니다.
전염병을 모티브로 한 협력형 보드게임, 이 게임만큼 지금 시기에 적합한 게임이 있을까요?
사실 전염병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게임은 전염병 주식회사 Plague Inc 라는 디지털 게임일 수도 있어요.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현실 상황과 비교 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전염병 주식회사의 목적이 전 세계 인구를 감염시키고 사망하게 이르는 거라면 팬데믹은 그 반대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사진과 같이 과학자, 연구자, 위생병, 건축 전문가, 검역 전문가 등의 역할을 부여받고 서로 협력하여 전염병에 대한 치료제를 찾아야 합니다. 미국의 질병관리본부가 있는 애틀랜타에서 시작해서 라고스, 델리, 서울까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염병의 확산을 막고,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소를 짓고, 질병을 치료합니다.
팬데믹의 묘미는 바로 '협력'입니다. 플레이어 간 경쟁을 중심에 둔 게임이 사실 대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특이하게도 팬데믹은 서로 숨기는 카드 없이 모든 것을 공개한 채로 함께 전략을 짜야지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2~4인용 게임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혼자 여러 명의 캐릭터를 플레이하면서 솔로 플레이도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죠.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이 게임의 정체는 뭘까요? 바로 살인마(헌터)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어둠의" 서바이벌 게임 닉토포비아입니다. 헌터 1인을 제외한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시작부터 앞이 가려진 안경을 쓰고 있어야 합니다.
게임의 제작자인 캐서린 스티펠은 원래 보드게임 덕후였는데 가족끼리 게임을 할 때마다 시각장애인인 삼촌이 항상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삼촌과 할 수 있는 게임을 제작하기로 결심했죠. 닉토포비아에서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앞을 볼 수가 없습니다. 게임의 제목 'nyctophobia'는 어둠 공포증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어둠"에 익숙한 사람들이 가장 유리한 게임입니다.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을 총동원해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죠.
"도망자"들이 안경을 쓰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헌터는 '보드'를 조성합니다 - 탈출극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죠. 이 속에서 헌터는 눈을 뜬 채 도망자를 쫓고, 도망자들은 최대한 빨리 어딘가에 주차되어있는 자동차를 찾아가야 합니다. 이미지에 보이는 저 뼈대 같은 것은 나무인데, 플레이어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촉각만으로 자신의 현재 위치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두 칸 앞에 바로 헌터가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청각도 중요합니다. 이 게임의 묘미는 롤플레잉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사회자/헌터 역할을 하는 플레이어가 적절한 효과음을 넣어주면 게임의 긴장감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닉토포비아는 현재 공식 한글판은 없지만 커뮤니티 번역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 대다수의 여성들이 겪어왔을 일상적 상황들을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다시 보는 보드게임이 있습니다. 가상의 인물 '이지혜'를 육성하는 TRPG(테이블탑 롤플레잉게임) 게임인 이지혜 게임은 육성게임의 대표격인 '프린세스 메이커'에 대한 비판적 패러디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딸"을 키워 왕자와 결혼시키는 것이 게임의 목표였던 시절에 비하면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지혜 게임의 목표는 주인공 이지혜의 스펙(사회성, 스트레스, 자존감, 순응도, 감수성)을 잘 관리하면서 노년기의 엔딩을 보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이지혜의 가족과 친구의 역할을 하면서 자신이 맡은 스펙이 떨어지지 않게 노력해야 합니다.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상황에 이지혜가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한 선택을 하면서 말이죠. 80세의 이지혜는 자존감이 높을까요? 순응도가 높을까요? 아니면 진작 스트레스 때문에 생을 마감했을까요? 우리의 젠더 감수성을 테스트하는 이지혜 게임을 하면서 가족, 친구들과 대화를 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이 게임은 2015년 칸 영화제 폐막작이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빙하와 하늘 (La glace et le ciel)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3세대(라운드)에 걸쳐 지구의 공기, 땅, 물, 생물권의 균형을 맞추고 이산화탄소를 억제해서 빙하가 녹는 것을 방지해야 합니다. 한 세대가 끝날 때마다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가 많아져서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일종의 협력게임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팬데믹처럼 모든 카드를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눈치껏" 다른 플레이어가 어떤 카드를 쥐고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매 라운드마다 '공동목표'가 정해지는데 (예. 공기 4점)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이 내려놓는 카드와 내가 내려놓는 카드의 절묘한 조합이 요구됩니다. 기후변화가 전 세계 사람들의 공동의 문제이듯이, 이 게임은 우리에게 경쟁이 아닌 협력을 요구합니다. 깨알 디테일: 사진에 보이는 할아버지 카드는 게임의 원작 영화 주인공인 빙하학자 클로드 로리우스를 기념하여 만들었습니다. 로리우스 박사는 1957년부터 남극의 빙하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1965년에 최초로 지구온난화 문제를 거론한 과학자라고 합니다.
영국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미러, 지금으로부터 10~20년 후 근미래에 대한 날카로운 예측으로 유명하죠. 혹시 시즌3의 추락(Nosedive)이란 에피소드 보셨나요? 이미지나 영화, 서비스에 평점을 매기는 것이 이미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 평점 시스템이 인간에게 적용되면 어떻게 될지 보여주는 에피소드입니다. 이미 중국에서는 대규모로 실험하고 있는 "social credit" 시스템으로, 나의 평점이 올라가면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이 달라지고 반대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평점이 내려가서 혜택을 못 받게 된다고 해요.
블랙미러 추락은 바로 이 에피소드를 그대로 재현한 게임입니다. 자신의 턴에 랜덤카드를 뽑고, 카드 내용에 따라 자신의 평점이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셰프인 룸메이트를 얻으면 평점 4가 되고, 장례식장의 SNS관리 알바를 얻게 되면 평점이 1이 됩니다.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자신의 평점이 기록되고 마지막에 평점이 가장 높은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죠.
미래 기술과 관련된 스토리라서 그런지 일반 보드게임과 다르게 스마트폰 어플이 따로 있습니다. 플레이어 이름을 입력하면 라운드 마다 점수를 기록하고 평균을 내주는 역할을 하며, 질문지를 주고 평점을 매기는 순서도 어플로 진행됩니다. 어플 연동, 그리고 아직 한국어 번역이 없다는 점이 진입장벽이 될 수는 있지만 신선한 컨셉의 게임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 글에 소개된 게임은 모두 크리킨디센터에서 직접 보유하고 있는 보드게임입니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게 되면 친구들과 함께 센터로 오세요. 오프라인 게임 제작 워크숍과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보드게임 카페를 열 계획입니다. 크리킨디 게임램,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크리킨디 게임랩은 청소년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고, 비평하고, 게임을 통해 배우는 커뮤니티를 지향합니다. https://www.facebook.com/groups/krkdgamelab/
작성자
은수 eunsoo@krkd.eco
크리킨디센터에서 온라인 사업을 담당하면서 청소년들과 게임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