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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킨디센터 Mar 07. 2018

우리는 왜 헬스장이나 운동장에서만 운동을 할까?

언제 어디서나 지금 있는 곳에서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익히는 파쿠르


KURIKINDI IDEA | 우리를 붙잡은 이야기

크리킨디센터에서는 헬스센터에 가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지금 있는 곳에서 시작할 수 있고, 숙련의 과정에서 다른 이들에게 잘 알려줄 수 있는 방법까지 익히는 이타적인 생활스포츠 '파쿠르(Parkour)'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 이곳에서, 센터가 위치한 은평 혁신파크의 곳곳에서, 계단과 벽을 뛰어넘는 어린이와 청소년, 여러 나라의 여성들을 우연히 마주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크리킨디 뉴스레터를 통해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아와 함께하는 제안을 미리 공개합니다. 이 이야기는 시리즈로 연재되며,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왜 파쿠르에 주목하게 됐는지, 어떻게 움직임을 통해 살아있는 도시를 느끼는 다양한 세대 커뮤니티를 상상하고 있는지에 대해 담았습니다.




운동(exercise)을 넘어

일상의 움직임(movement)으로! 


대중적으로 친숙한 사이클링, 클라이밍 등 다양한 신체활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쿠르를 주목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물론 우리는 정해진 코스와 루틴으로 이루어진 운동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런 활동은 크고 작은 마음의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부족한 시간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정해진 공간으로 이동해야 하는 부담을 안겨주고, 장비, 복장, 시설이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괄적인 현대 운동의 참여방식은 망설임과 부담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게으른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운동은 특정한 동작이 아니라, '움직임(Movement)'의 일부일 뿐이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는 움직임 말이다.


❙ 도심과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지형물을 정신적, 신체적으로 극복하는 움직임인 파쿠르는 언제 어디에서나 맨손 맨몸으로 실행할 수 있다. ©Parkour Generations


파쿠르(parkour)는 길, 코스, 여정의 뜻을 가진 불어에서 나왔는데, 도심과 자연환경에 존재하는 다양한 지형물을 정신적, 신체적으로 극복하는 움직임 훈련을 말한다. 프로그램이나 코스를 통해 정해진 기술을 익히는 ‘운동(exercise)’을 넘어 장소와 도구의 제약 없이 일상에서 ‘움직임(movement’)을 상상하고 실현하는 행위이자 과정이 담긴 것이다.


오로지 맨손 맨몸으로 바닥, 벽, 난간, 벤치, 가로등 같은 주변 구조물을 활용하여 기어가기, 도약하기, 균형 잡기, 올라가기, 통과하기 등 다양한 인간 본연의 움직임들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각 움직임 영역에서 수십 가지 파쿠르 기술들이 파생된다. 주어진 장애물들과 표현 가능한 움직임들을 어떤 조합과 흐름으로 연결시킬 것인지까지 생각해보면 파쿠르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우리의 몸, 정신,
그리고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어떤 환경, 상황 속에서도
잘 움직이는 사람을 길러내고
그 과정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생활스포츠



당장 원하는 움직임을 실현할 수 있냐, 없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숙련도에 상관없이 누구나 지금 자신이 선 자리에서, 자신의 몸 하나로, 주변 세계를 전환시키는 엄청난 상상력과 열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와 같은 세상인데 파쿠르의 관점에서 보면 훨씬 더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한, 활력 넘치는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진다.


휴대폰 화면에 고개를 숙인 사람들 사이로 세상의 사물과 내가 춤을 출 수 있다. 길가에 놓인 수십 개의 벤치를 지나지치지 말고 한 벤치 앞에 멈춰보자. 벤치에 손을 짚고 어떻게 몸을 움직여볼까?


❙ 벤치 하나로도 다양한 움직임을 상상하고 표현할 수 있다. ©Laurent Piemontesi



함께 몸을 살리는

'공공 창의지대(Creative Commons)' 


파쿠르로 몸을 살리는 활동을 시작하기로 한 이후, 우리는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이 과정을 나누고 싶어졌다. 움직임에 대한 열망으로 모인 이들이 환대와 영감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도심 곳곳을 몸으로 재발견하면서 함께 돌보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어떨까?


❙ 전세계 트레이서들이 모이는 국제 파쿠르 커뮤니티의 최대 행사 '랑데부' ©Parkour Generations


파쿠르를 다른 이들과 나누려면 파쿠르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또 이를 안전하고 재밌게 수행할 수 있는 코칭 능력이 필요하다. 몸과 움직임 기술에 대한 아무런 교육 없이 미디어에 노출된 장면을 무턱대고 따라 하다가는 사고가 발생한다.


❙ <야마카시>, <13구역> 같은 영화와 광고영상은 파쿠르를 대중적으로 알렸지만, 고도의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선입견을 심어주기도 했다.


이런 사고를 방지하고, 올바른 파쿠르 철학과 지속가능한 실천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체계적인 전문 교육 제도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ADAPT* 자격증 프로그램이다. ADAPT 인증 전문 코치진들이 가르치는 공식 파쿠르 교육기관은 영국에서 파쿠르 제너레이션즈(Parkour Generations)라는 이름으로 처음 생겼다. 한국에는 '파쿠르 1세대'인 김지호 씨가 ADAPT 코치 자격을 취득하면서 2013년에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아를 설립했다.


* ADAPT는 Art du Deplacement And Parkour Teaching의 약자이다. ADAPT Qualifications 기관이 주관하고 창시자들이 인증하는 세계 유일의 파쿠르 코칭(Coaching) 자격증이다.


❙ 영국에서 시작된 국제 공식 파쿠르 기관인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2017 하이라이트 ©Parkour Generations


하는 일과 나의 삶이 괴리되어 있음을 애써 외면해오던 내가 이제는 일에서 스스로가 보이고 동료와 가족, 이웃, 후배 세대가 보이고, 생태계가 보인다. 나를 포함한 한 사람,  사람이 살아날수록  커뮤니티가 더욱 풍요롭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있는 구조를 보게 된다.


우리는 함께 몸을 살리는, 배움의 장을 꾸려가기 위해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째는 '경쟁'과 '평가'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과 정신을 일깨우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다른 스포츠와 파쿠르가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 '경쟁 반대' 철학에 있다. 파쿠르 수련자들은 다른 수련자들과 경쟁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아무리 빨리 질주해본 코스라도 다시 출발점을 향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고, 속도를 내는 것보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 컨트롤하며 느리게 가는 게 훨씬 더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둘째는 자신의 내면과 몸을 다루는 연습을 함으로써 진정으로 '안전'해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다양한 구조물과 함께 하는 움직임 훈련을 통해 '익숙하지 않음'과 '불편함'이 구성한 '두려움'과 '위험'의 허상을 인지하고, 다양한 움직임들의 패턴을 통해 주변 환경을 자유롭게 극복하는 것이다.


이런 비경쟁 신체훈련은 정신과 정서적인 건강까지도 보호할 수 있다.


❙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치가 앞으로 갔다 뒤로 돌아가는 움직임을 훈련하고 있다. ‘Parkour Reverse and Rewind’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경쟁과 차별 없는 움직임의 언어


❙ 영국 가디언*에서 보도한 60세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파쿠르 수업

* 관련 기사 : Parkour classes are helping pensioners stay agile and active (가디언 UK, 2013.8.23)



움직임에는
계급장도 국적도 피부 색깔도
성별도 나이도 없다
움직이는 몸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에너지뿐



파쿠르는 모두가 하나의 룰을 가지고 우열을 가리기 위해 같은 결승선을 바라보지 않는다. 모두가 각각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하고, 어떤 방향이나 방식으로든 자유롭고 즐겁게 움직이는 것을 지향한다. 이 정신을 바탕으로 어린이, 여성, 노인 등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 매년 다양한 배경의 여성들이 파쿠르를 함께 하는 'Women’s International Parkour Weekend 2017' ©Parkour Generations
❙ 시니어를 위한 파쿠르 댄스 프로그램 'Parkour Dance for Seniors' ©Parkour Dance Company


'경쟁 반대'를 비롯해 어느 세대의 구성원이든 재미있는 놀이를 통해 건강하고 협력적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태도를 익히는 것이 핵심이다.


유용해지기 위해 강해짐 (to be strong to be useful)

이타주의(altruism)

함께 시작하고 함께 끝낸다(we start together, we finish together)


❙ 영국에서는 파쿠르를 학교의 정규 체육 교과로 운영하고 있다. ©Parkour Generations


영국에서는 2017년 파쿠르를 공식 운동 종목으로 인정하고 학교 체육 교과에 통합시켰다. 시작은 2006년 웨스트민스터 시정부와 파쿠르 제너레이션즈가 협력한 'Jump Westminster'*였다.


프로젝트는 사회 취약계층이 밀집해 있는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서 청소년 파쿠르 수업을 운영했고, 사회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자신감과 건강한 해방구를 찾는 장을 마련했다. 해당 지역 범죄율이 감소하게 되면서 실제적인 가치와 효과를 인정받아 공공 부문의 여러 교육, 문화 기관들과 협력하는 기반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후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파쿠르 댄스 수업 등 다양한 세대를 위한 파쿠르 교육과 커뮤니티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 관련 영상: Jump Westminster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 미국 Fayerweather Street School의 파쿠르 수업 'Kids Parkour Classes' ©Parkour Generations

 

ISIS와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도시, 이라크 모술에서는 청년들이 파괴된 건물들을 활용해 파쿠르를 하면서, 자신의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지켜내고 ‘그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을 것이다’라는 자신감으로 도시를 재건해 낼 상상력과 의지를 키워가고 있다.


비참한 전쟁과 폭력의 그늘에서도 사람들이 움직임을 통해 스스로를, 또 서로를 살리고, 자신이 처한 시공간을 전환시키는 ‘사회적 상상력’을 갖는 걸 보면서, 이 움직임 창의지대가 가지고 있는 변화의 잠재력을 느끼게 된다.


❙ ISIS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 모굴의 파쿠르 청년들 영상 ©Parkour Generations


병들고 억눌린 몸을 살리고, 몸을 살리는 시공간을 만들어내고, 살아있는 다양한 몸들이 모여 움직임의 즐거움을 축제하는 ‘움직임 공공 창의지대’를 그려보자.


이 창의지대는 깊어가는 개인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이성을 중심으로 사고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내는 지혜와 가치를 생산할 것이다. 아직은 일상에서 움직임을 상상하고 실현하는 게 생소하지만, 지금은 많은 협력자들과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영감을 주고받으며 성장할 시간이다.


❙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유럽의 야외 파쿠르 공원



작성자


리조 walldaam4@gmail.com 

움직임교육연구소 ‘변화의 월담’ 공동 대표. UC 버클리에서 ‘몸을 생각하는 디자인(Body Conscious Design)’수업을 듣고 주변 환경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 몸과 행동 양식을 규정하는 사회의 규범, 건강한 몸과 자유로운 사고를 촉진하는 디자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기간 동안 만난 ‘별난’ 친구들과 잠 안 자고 춤추며, 20여 년간 억압되어 있던 몸을 풀어 주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함께 다양한 움직임들을 즐겁게 향유하고 몸으로 연대하는 문화가 개인과 사회에 가져올 수 있는 엄청난 변화와 가능성을 경험하였다. 세대, 젠더, 국적, 장애 등 다양한 맥락을 지닌 다양한 몸들이 함께 호흡하고 지지하며, 좀 더 살 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몸살림 커먼즈’를 꿈꾸며 움직임교육연구소 ‘변화의 월담’을 꾸려 가고 있다. 

움직임교육연구소 변화의 월담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walldaam/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wall_daam/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istfQ2VKMbJpc-eRY46JNQ/featured?view_as=public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아   홈페이지  페이스북

따뜻한 봄이 찾아오는 시기를 맞아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아(이하, 파제)는 ‘모두를 위한 파쿠르(Parkour For All)’라는 시민 체험 워크숍을 열 예정이다. 4월부터는 매주 일요일 야탑 중앙도서관에서 정기 야외 수업도 개시한다. 파쿠르 보급 확대에 발맞추어, 오해의 시선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파쿠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다양한 움직임을 실험할 창의적인 구조물을 함께 만들 장인 또한 기다린다. 파제와 함께 새로운 움직임 실험을 하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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