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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May 10. 2022

[상념] 디엔드,

14개월의 여정, 

꺄아아악, 어뜩해!!!! 


잡지 마세요, 꺄아아아악~




아침에 막 사무실에 들어섰더니 같은 층에 근무하는 두 분이 바퀴벌레를 유리컵 속에 엉거주춤 가두고는 어쩔 줄 몰라하고 계셨다. 

그냥 보고 지나칠 수가 없어 쿨하게 혹은 다소 거칠게 티슈를 수 장 뽑아들고는 유리잔을 들어 휴지로 그 녀석을 압사시켰다. 

그 분들의 부탁에 의해 사체도 처리하고 누군가에게는 소중했을지도 모르는 유리잔도 함께 버렸다. 



14개월여 동안 고생하며 힘을 쏟았던 일이 끝나는 날 아침, 

난 그렇게 생과 사를 함부로 결정하는 무한한 책임감과 함께 시작하였다. 







오전 8시 35분,

규정 개정 동의율이 46%인걸 확인하고, 동의/비동의 의사표시를 안 한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한 번만 굽어 살펴 주세요, 동의든 비동의든 의사 표시만 좀 해주세요. 



오전 9시 3분, 

규정 개정 동의율이 50%를 초과했다. 

입사 12년차, 일년에 한 두번 크고 작은 규정 개정이 있었지만, 동의율이 만 하루만에 50%를 초과하는건 처음 목격했다. 



안다, 

내가 잘한게 아니라, 직원들 입장에서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란걸.

크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나빠지는건 딱히 없기에 동의 하지 않을 수 없다는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미하나마 내 덕분이라고 생각하고만 싶다. 

아닌걸 너무도 잘 알지만, 오늘 하루 쯤은 괜찮지 않을까,



아니다, 

나 혼자 한 것도. 

훌륭한 윗 분께서 너무도 꼼꼼하게 나의 계산 오류도 다 잡아 내셨고, 

내가 한 작업 외에 다른 더 거대한 작업들이 함께 있어서 동의 절차까지 이르게 되었다. 



힘들었다,

실제 작업한 시간을 모으고 모으면 한 달이나 될까? 

14개월 동안 띄엄띄엄, 잊을만 하면 다시 가져오라고 하고, 

다시 보고 장표를 만들어야 하고, 다시 개선 논리를 꾸역꾸역 기억해내야 하고, 

그러다 설명회 자료도 두 번이나 갈아 엎고, 

직원들에게 보여줄 전산 화면도 급조해서 뚝딱뚝딱 만들어 냈다. 



짧지만 긴 여정, 

3년 전 마도를 잡았던 또 다른 제도 개선 때는 연차도 낮았고, 

후반에 가서는 힘에 부쳐서 다른 선배들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어 내가 시작했지만 시원하게 스스로 끝내지 못한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어떻게든 끝내고 싶어 마무리를 넘기려다 마음을 돌려 내가 매조지고 말았다. 



오늘 하루는 온전히 즐기면서 마무리를 하고 싶다. 








친구의 실적을 위해 어쩌면 장난스레 써내려가기 시작했지만, 어느 새 진심을 담아 버린 자소서.

마치 부치지 못한 편지마냥, 슬며시 흔적을 자작 남겨 본다. 


힘든 상황에서 끊임없이 시도하여 원하는 결과를 도출했던 경험과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을 기술해 주십시오. (최소 300자, 최대 500자 입력가능)

  

지난 1년간 OOOO 개선을 위해 식음을 전폐하며 경주하였고 그 결실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직원 개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OO에 대한 내용이라 조금이라도 손해나 오류가 없게 하기 위하여 수백개의 버전을 새로 만들며 꼼꼼히 검토하였고, 성공적으로 의사결정이 되도록 다양한 근거자료를 준비하여 주장이 아닌 사실과 논리에 입각한 결정이 되는데 일조하였습니다. 저의 사소한 업무가 O,OOO 여명의 OOOOO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전에 없던 무한한 책임감을 느꼈고, 책임에 뒤따르는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를 잊지 않고자 수시로 직원들의 존함과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즉, 어떠한 일이라도 하찮지 않고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힘이 따른다는 걸 깨닫고 금번 일 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도 조금 더 집중하고 내부 고객인 직원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평범하지만 당연한 진리를 뇌리에 깊이 각인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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