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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May 02. 2022

[상념] 나아가다,

멈추지 않을 것처럼,

니 주말에도 공 치러 가나?



아뇨, 저 그림 보러 가요. 



니가 이제 미쳤구나 



친한 팀장님께서 물으셨다. 이에 난 자신 있게 말했고 당차게 무시당했지만, 

무시당했다는 슬픔보다는 그림을 보러 간다는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뿌듯함을 느꼈다. 





지적 허영, 

사실 그림에 대해 잘 모른다. 잘 모르면서 그림을 보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주말에 그림도 보러 가는, 문화생활도 간간히 즐기는 회사원으로서의 허영을 만끽하기 위해 청춘 내음이 느껴지는 성수로 향했다. 


들어가기 전에는 조금 걱정도 했다. 

심오한 현대미술은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의외로 직관적인 작품들도 많았고, 색감도 다채로웠고, 주제도 흥미로웠다.  



걔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이 글 메인 화면에 있는 이동혁 님의 '시계만 가고 시간은 멈춘 곳에서.' 다. 

푸른 잿빛으로 표현된 그림에는 몇몇이 무언가를 덮어쓴 채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고 있다. 

시지푸스를 떠올리는 이 그림의 제목을 보고 큰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시계만 가고 시간은 멈춘 곳,


바로 내가 있는 곳이다. 

나의 시계는 누구나의 시계처럼 끊임없이 하루하루 흘러가지만, 

난 쉴 새 없이 누구나처럼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한 치 앞조차 흐릿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희뿌옇게 인식되지 않는다. 


어둑어둑 푸르른 색감도 좋았고, 힘겹게 굽혀진 무릎도 좋았고, 정갈히 쓰인 제목마저 좋았다. 


나의 시간을 언제쯤 하염없이 흘려보낼 수 있을까,

온갖 망상에 사로 잡힌 채 순간순간을 지나치는 이 낯선 시계 속에서 언제쯤 헤어 나올 수 있을까, 


저 이는 결국 그 질문을 내게 던졌고, 

나는 결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손가락도 잘리면 빨리 봉합을 해야지, 아프다고 힘들어하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몇 주 전만 해도 지인의 꾐에 빠져 기대 없이 전화사주를 봤다고 했던 친구가, 

그 전화 사주 선생님이 예언한 것과 같이 회사에서 휘황찬란한 결과를 만들어내자 찬양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선생님이 좋지 않다고 말했을지라도 이 친구는 동일한 수준의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겠지만 '넌 잘 해내고 말아'란 누군가의 확신에 찬 말이 마치 부스터가 되어 더 화려한 결과를 볼 수 있었던 건 자명하다. 


주변에서 이런 성공 사례를 보니 나도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어 마지못해 해 본 전화,  

근데 선생님은 오로지 연애 이야기만 하셨다. 

사실 지금 그럴 여유도, 계획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는데 너무 그쪽 이야기만 하니 좀 당황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간히 와닿는 말들은 있었다, 

마치 저 손가락 이야기처럼.



허영에 벅차오른 주말, 

멈춘 시간을 다시 가게 하기에는,

나아감을 논하기에는,

다소 벅찰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의 마음을 표현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

그에 감사했다.

그의 뜻이 그게 아닐지라도,

그게 나의 해석이라면 그 또한 그의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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