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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Jul 04. 2022

[감상]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

알아주든 말든,

저자가 확신을 가지고 써 내려간, 독자에게 자신의 생각이 옳다 주장하며 주입코자 하는 자기계발서 종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저자만의 하나마나한 개똥철학에 전혀 동요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숨길 수 없는 반골 기질 탓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 의외의 순간에 나의 두 손에 오롯이 안착하게 된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는 오만한 나의 생각을 옅게 만들어 주었다.

어쩌면 내가 평소에 막연히 생각하던 것들을 활자로 표현해주었기 때문이 않을까,






사실 인간의 운명과 가능성은 쭉 뻗은 곧은길처럼, 자기가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도 뻗어 있다.


생각지도 못 했다.

지구력은 어느 정도 자신 있기에, 올해 몇 번의 산행을 거친 결과 1시간 정도의 산행은 가소로웠다.

그런데 20 여분 정도 올라가다 잠시 휴식을 취해 숨을 몰아 쉬는 순간 느낌이 왔다.

아, 이건 내가 가끔 마주하는 미주신경성 실신의 전조다.

숨을 가쁘게 들이내쉬면서도 수만 가지 생각이 정신없이 몰아쳤다.

호기롭게 올라가려 했는데 중간에 포기하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화가 만들어질까 부터

만약 혹여나 정신을 잃기 직전의 상태가 되면 어디에 누워서 머리에 피를 돌게 해야 할까 까지


이렇듯 나란 인간의 운명은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나비효과처럼 내 인생이 이리저리 얽히는 걸 목도하면서 이 생각은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이 정당한 일, 훌륭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타인도 자신처럼 행동하기를, 또 타인이 자신에게 반드시 감사와 칭찬을 해주기를 마음속으로 요구한다.


뜨끔하다.

후배에게 들이대는 나의 잣대가 과연 적정한 것일까 고민하던 찰나였는데, 이 친구 입장에서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정말 내려놓을 수 없는 법인데, 이제 직급이 달라진만큼 조금은 더 아래를 살펴보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거절은 실례다. 상대에게도 도와주는 기회를 같이 나누는 마음씀이 예의다.


동료들이 가끔 주전부리를 권할 때가 있다.

열에 다섯은 거절하는 편이다. 거절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먹고 싶지 않고, 굳이 먹고 싶지 않은걸 받아서 상대 혹은 또 다른 사람이 그것을 먹을 기회를 박탈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주 한 후배가 빵을 권하며 "드실래요?"라고 말이 끝나게 무섭게 "아니오"라고 대답했더니 그 후배는 이 내 짧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빵이 무엇이고 얼마나 맛있는지 설명했다.

난 이런 대화가 낯설어서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말하네?"라고 했더니 "원래 늘 거절하시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순간 부끄럽고 미안했다.

이 친구에게 난 어떤 존재로 각인된 걸까,

때때로는 호의를 감사히 받을 줄 아는 겸허함이 필요하다.





최고의 인간관계는 자신의 고통이나 슬픔은 되도록 혼자 조용히 견뎌내며, 아무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슬픔과 고통을 무언 중에 깊이 헤아릴 수 있는 관계이다.



일 년이 지났다.

이제 무던해져야겠다.

신호등을 지킬게 아니라 꺼버린 채 하고 싶은 대로 하라던 이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돈다.


아마도 난,


이미 충분히 좋은 사람이니까,

이제는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좋은,

편안하고 편안함에 이르러야만 하니까.



한 없이 맑은 계곡이 참 좋은 하루였다.

원 없이 빛난 윤슬이 참 부신 하루였다.


더할 나위 없이 다시 태어날 법한,

그런 청량한 여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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