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rng Sep 25. 2022

[여행] D-2,

왜 가나, 뭘 하러 가나, 

봄~여름에 호들갑을 떨며 그 난리를 치더니, 

결국 난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한다, 이틀 뒤. 



비엔나를 간다고 했다가, 시애틀에 간다고 했다가, 복숭아 따러 영동을 간다고 했다가, 

결국 돌고 돌더니 아직은 여전히 싸늘한 남반구로 행선지를 변경하였다. 


행선지는 대한항공 취항지를 펼쳐 두고 그녀가 정했고, 구체적인 장소는 멜버른에 있는 그가 정했다.

날짜는 국경일, 대한항공 마일리지 잔여좌석이 정했다. 물론 영향도 컸다, 어쩌면. 




어제까진 전혀, 도저히 실감이 안 나다가, 

여행 중인 친구의 인스타 포스팅을 보며 세포들이 조금씩 깨어남을 느꼈다. 


70억의 인생과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어느 날 우연히 어느 순간 한 장소에서 뒤섞이는 곳이 바로 공항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전언에 공항에 조금 일찍 가서 사람들의 생을 유추해보는 여유를 즐겨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라운지에 가서 마시지도 못하는 샴페인을 조금 따라내어 볼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면세점에 가서 사치를 한껏 부려내 볼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만다, 내가 무슨. 


 



인생은 끝없는 선택지의 연속이란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 

나의 하찮은 고민마저 말끔히 정리해주는 친구의 부재가 부쩍 아쉽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원하는건 무얼까, 뭘 보고 싶고 뭘 느끼고 싶을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친구 가족의 틈바구니에 이틀이나 낑겨 같이 다녀야하는데 어떤 대화들을 해야 할까, 

골프채를 가져가서 골프나 진탕 치고 올까, 

무겁디 무거운 골프채를 가져가면 디디나 우버로 왔다갔다 잘 할 수 있을까, 

혼자 바닷가에 가서 주상절리를 보면 제주도랑 과연 다를까,

블루마운틴이니 시닉월드니 하는 광활한 자연환경을 찍고 오지 않으면 후회할까, 



이럴 땐 결국 오답노트를 뒤질 수 밖에 없다. 

지난 미국 여행에서 난 무얼 좋아하고 무얼 힘들어 했던가, 

지난 푸른 제주에서 난 무얼 열광하고 무얼 사소해 했던가, 


휘황찬란한 뉴욕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햇살이 살며시 나뭇가지 사이로 내비치는 센트럴파크였고, 

아무 생각없이 이방인들과 섞여 맨하탄을 바라보던 뉴저지의 스파였다


아침에는 골프, 낮에는 관광, 밤에는 겜블을 즐겼던 시애틀은 내게 목가적 환상마저 안겨주었다. 





그럼 이번 여행에서는? 


낯선 공원에 들러 이름 없는 까페에서 무심코 산 따스한 커피 한잔을 스윽 들이켰을 때, 한 없는 포근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저 그런 느낌만 슬며시 안고 돌아온다면, again 2011이라던 그의 예언이 현실이 되는게 아닐까, 






내년에는 산티아고에 가보고 싶다, 

다리가 부서지지 않을까 고민하는 새 세상 다른 잡념은 모두 잊어버리고 싶다. 


그저 걷고만 싶다, 목적지를 둔 채. 

목적지라는 끝을 통해, 희망이 현실이 된다는 정답노트를 만들고 싶다,

너와 함께. 



작가의 이전글 [상념] 이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