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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Oct 01. 2022

[여행] 멜버른 마지막, 미래에서 기다릴게

잦은 이별, 빈번한 기다림, 그 끝에는.

친구네 가족과 함께한 멜버른 여행이 마무리를 지었다.

지금은 시드니로 향하는 상공에서 기내 와이파이를 이용해 브런치 중이다.

신기하다, 그리 비싸지도 않은 국내선인데 왜 여긴 되고 한국은 안 될까? 인터넷 강국이라면서??

이유가 있겠지, 다 합당한 이유가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왜? 라는 의문은 남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유튜브를 볼 만큼 인터넷 속도도 괜찮다.


결국 상대적이다,

너는 되고 왜 나는 안 될까?

상대성에 의해 결핍과 충족이 갈린다.

태초로 돌아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아담과 이브마냥 수렵 채집, 농경만 한다면 이런 심리를 느끼지 않을까?

흠, 한낱 동물에게조차 비교하며 우열을 가리겠지, 그게 나 혹은 인간의 네이처 일지라.



a drop of ink may make a million think.

멜버른 시내에서 묵은 호텔 벽에 있는 글귀다.

단순히 힙한 호텔이라 생각하다가 문득 이 문구를 보고 다채로운 상념이 한 방울 잉크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로 인해 괜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념품 따위를 사느라 고민하고 스파이 게임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이역만리 타향에서 고이 생각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만족한다.


이번 여행은 굳이 뭔가를 얻어가려 억지로 애쓰지 않으련다.

그냥 이런저런 행위를 하면서 그냥저냥 순간순간 하고 싶은 거 하며 흘려보내련다.

이번에 뭔가를 못 얻으면 다음에 다른 곳에서 또 생각하고 번민하며 한 움큼 그루트를 외치며 자라면 되는 거지라고 나지막이 속삭여 본다.

언제까지 이렇게 혼자 여행을 다닐지 모르겠지만, 혼자여서 할 수 있는 소소한 자유로움과 애틋한 그리움을 동시에 느껴보련다.



친구 가족과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아니 본의로 친구에게 잔소리를 했다.

제 3자가 되다 보니 배우자의 말에 이래 저래 의견을 다는 친구를 보며 "굳이 왜!"라는 말을 남발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그리고 배우자의 안락함을 위해서는 그저 알겠다고 해도 결론은 바뀌지 않을 텐데 그의 특유의 꼼꼼함과 호기심이 대화를 지리하게 이어지게 한다.

빅토리아 마켓에서 들렀던 크리스마스 장식품 가게의 캐셔 쪽에는 자그맣게 문구 하나가 적혀 있었다.

don't say anything about your wife's choice. you're one of them. (정확한 영문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물론 맹목적인, 기계적인 응답으로 대화의 종결을 가져오면 되지 않겠지만,

3자로서 지켜보니 어떻게 해야 더 나을지 막연히 보이게 된다.

물론 이건 내 100% 주관이므로 15년간 쌓아온 그 부부의 방식에는 맞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난 나대로, 그는 그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거지 뭐.


이제 친구네 가족은 아마 '24년은 되어야 만날 예정이다.

뭐 한국에 살 때도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가능하냐 아니냐는 큰 차이를 낳는다.


'24년에는 과연 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부디 내가 바라마지 않는 대로 살았으면 한다,

제발.


나도 좀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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