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생각들,
토요일 아침, 애들을 학원에 내려놓고 경의선 숲길로 발길을 돌렸다.
에어팟에서 좋은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딱 이런 날, 이런 기분에 어울리는 곡들. 요즘 정신없어서 상념에 잠길 틈이 없었는데, 바람이 얼굴을 스치니 머릿속이 조금씩 풀린다.
문득, 이번 주 만난 면접자가 떠오른다. “상념이 생기면 블로그에 쓴다”던 그 사람. 그 말에 마음이 동했다. 나도 그렇지 않나? 걷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끄적이고 싶어지는. 세상 어딘가,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게 왠지 미소 짓게 한다.
숲길을 걷다 한 아이가 나무 위를 쳐다본다.
그 시선, 참 자유롭되 올곧다. 나도 따라 고개를 든다. 가지 사이로 햇빛이 반짝이고, 갑자기 스페인 어느 마을 어귀가 떠오른다. 흙내음이 그득한 돌담길, 그 밝은 바람, 그 산뜻한 공기. 다시 걷고 싶다, 그 길을.
근데 생각해 보니, 지금 이 숲길도 꽤 좋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차분하다.
상기되지 않은 얼굴들, 토요일 오전을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 누군가는 이어폰을 끼고, 누군가는 커피를 들고 걷는다.
어쩌면 이 길은 그냥 길이 아니다.
장소마다 추억이 스며 있다. 저기 저 벤치, 친구랑 커피 들고 산책하며 끝없이 수다 떨던 곳. 그때도 이렇게 바람이 시원했나?
추억을 글로 옮기려면 왜 이렇게 어색할까. 감정이란 게, 말로 다 담기지 않는다. 예전에 심리상담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감정과 기억을 제대로 서술하지 못하는 불편함.” 그때는 그저 멋진 말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좀 공감이 간다. 아니, 공감이 가는 척하는 걸지도.
그 상담사 사무실이 있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서 그냥 발길을 돌렸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다시 이 길을 걷고 싶었다.
돌아오는 길, 에어팟 속 노래가 더 선명하다. 이 곡, 스페인행 비행기에서 듣던 거였나?
웃기다, 세상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자꾸 엮는다.
나도 그걸 따라 걷는다. 그리고 또 쓴다, 이 순간, 이 길 위에서. 어쩌면 나도 선구자일지도. 아니, 그냥 생각 많은 평범한 사람일 뿐인가?
그래도, 이 상념이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