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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Jan 18. 2021

[etc.] 초연결사회의 민낯

annoymous를 꿈꾸며, 

오늘 인스타 계정을 삭제했다. 


인스타 메인 계정에 딱히 사진을 올리지도 않았지만, 작년 여름 즈음 높은 수익에 한참 고무되어 대나무숲 용도로 만들었던 부계정(메인 계정과 연결하지 않은)을 배우자가 오늘 캡쳐해서 보여주며, 내 인스타를 찾았다는 말에 겉으로는 침착해하며, 속으로는 소스라치게 놀라 정/부 가리지 않고 바로 삭제했다. 


인스타를 거의 하지 않는 배우자에게 추천으로 뜰 정도인데, 내가 아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를 알아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부끄럽기 그지 없다. 몇 번의 네이버 서치 끝에 부계정은 메일 주소만 연결하지 않으면 내 연락처의 이들에게 친구추천이 뜨지 않는다고 보고 당당하게(?) 만들었던 부계정인데..이렇게 쉽게 발각되다니,

(내용은 키움실전투자대회 등수 및 수익률 자랑 정도였다. 물론 망한 투자는 올려놓지 않았다. 그래서 오해가 쌓일까봐 더욱 걱정된다........)


항상 양면성이 있어 왔다. 

내가 적은 글을 누군가가 봐주긴 바래 왔고, 하지만 그 누군가가 아는 척을 하며 살갑게 다가와주지 않길 바랬다. 내 글에 대해 비평을 하며 나를 간파하려 노력하는 것이 싫었고, 내 생각을 재단당하는걸 바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알아봐주면 얼마나 뿌듯할까, 이러한 겉바속촉 같은 간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싸이를 했었다. 

일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있어보임직한 글들을 적었다. 이미 그 글들은 산화된 지 오래지만, 


트위터도 했었다. 

유행에 따라 팔로워가 점점 늘어났고, 부담스러움을 느낀 끝에 절필했다. 이후 다시 잠깐 시작했다가 친구 하나가 아는 척을 하길래 바로 중단했다. 


블로그도 했다.

그런데 블로그는 너무 재미가 없었다. 일기장 그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해 조금 하다 공인인증서 비밀 저장소로 전락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브런치, 

오늘 배우자가 내 인스타를 찾은 것을 보고, 들키고 싶지 않은 이 곳을 어떻게 사수할까에 대한 심각한 실존적 고민이 시작되었다. 왜 하필 아이디를 저딴걸 해가지고... 회사 사람들도 혹시나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엄습한다. 


최소한 초연결사회를 이런 식으로 깨우치고 싶진 않았다. 

일촌 파도를 열심히 탈 때도, 페이스북 친구의 친구 목록을 보며 나와 공통점을 찾을 때도 이렇게 내가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술은 진보했고, 나는 무지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연결시켜 모두가 투명하게 살아가게끔 (혹은 살아가는 척 하게끔) 유도하였고, 나는 또다시 숨을 곳을 찾고 있다.

 




문득 떠오른다, 

부산 본가에 가면 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이 오롯이 남아있다. 아마도 부모님은 다 읽었을 것 같은데 다행히 내색을 하지 않으신다. 내 고등학교 시절의 흑역사, 정말 어리디 어린 시절의 어린 생각들. 웹 상의 내 흔적이 흩어져 있는 공간들도, 차마 우리집으로 가져 오지 못하고 버릴 용기는 없어 하릴 없이 본가에 남아 있는 20년 전 일기장 같은 신세가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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