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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Mar 14. 2021

[Thought] Rolling in the deep

노력, 운 그리고 재능, 그 너머에 대한 상념

울컥했다, 나도 모르게.

물론 눈물을 흘린 건 아니지만, 정말 예기치 않게 내 가슴속이 뭉클하는 것을 느꼈다.

아이러니하게 두 아이가 끊임없이 고성방가를 질러대던 여느 주말 평온한 오후에 벅찬 감정이 나를 뒤덮었다.

그녀들의 거짓말 같은 성공 스토리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그리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감명 깊게 훔쳐보면서, 다양한 상념이 뇌를 자극하고 과거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존버는 승리한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녀들의 존버, 역시 버티면서 노력하면 결국 빛을 발하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회사에서도 여러 번 목격할 수 있었다. 자세히 적기는 힘들지만, 주위에서 인정해주지 않아도 (자신의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원래 있던 자리에서 혹은 시류에 흘러 다니며 버티다가 결국은 부활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혹은 반대로 그 자리에서 참지 못해 도망치다 패착에 이른 경우도 쉬이 목격할 수 있었다. 요즘 회사에서 심적으로 조금 힘들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정되기도 했고, 그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버티면 결국 미소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이러한 생각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느끼게 되어, 역주행의 새 역사를 쓰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많은 이들이 말하고 갑작스레 분석해대는 것처럼 집값이다, 각종 부정부패다 하면서 칠흑같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꾸준한 노력으로 마침내 빛이 나는 사례를 보게 되어 감정 이입하게 되고, 더불어 삶의 용기를 얻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들을 희망의 아이콘으로 명명했다.

 


운칠기삼? 운구기일이 아닐까,

그런데, 그녀들의 화려한 부활은 꾸준한 노력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까? 지금의 멤버가 결성된 근 5년 동안 거의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로켓처럼 솟아버린 그녀들의 인지도, 어쩌면 운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면 찾아오지도 않았을 운이겠지만... 수많은 걸그룹 중에 노력하지 않는 걸그룹이 과연 있을까? 단언컨대, 모두 다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고 또 노력할 것이다. 그간 이런 걸그룹들의 패자부활전 같은 TV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부활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현재 브걸과 비슷한 사례인 EXID 정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반대로, 그 운은 언제 내 의지와 달리 찾아올지 모르므로 존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더 버티지 못하고 해체했더라면 이렇게 즉각적으로 방송의 요청에 응할 수 있었을까? 최근 태사자 김형준처럼 반짝 나왔다가 사라지는 정도였지 않을까?

글을 쓰다 보니 정리가 되는데, 운 역시 존버하는 자에게 찾아온다.


재능은 노력을 압도한다.

하지만, 운이 그녀들이 성공 해나가게 된 요체일까? 글쎄다. 군통령이라 불리던 걸그룹이 얼마나 많았는데 왜 유독 브걸만 갑작스레 뜨게 된 걸까? 단순히 열심히 해서라고 할 수 있을까?

관련해서 요 몇 년 내 머리를 지배하던 생각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재능은 노력을 압도한다'이다. 예를 들어, 나 같은 음치, 몸치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서 빼어나게 노래를 잘하거나 춤을 잘 출 수 있을까? 조금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그래 봤자 정상인의 범주 수준일 거다. 그 이상일 수 없음은 내 몸뚱이를 보면 너무 상식적이다.

대학 연극반 시절,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무리 가르쳐줘도 초창기 장수원처럼 연기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심지어 자기는 이병헌처럼 연기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건 노력이 아니라 재능의 문제라고 여실히 느꼈다.

너무 먼 이야기지만, 학창 시절 난 항상 문과에서 2등이었다. 1등 하던 친구는 빼어난 머리로 12시를 넘겨서 공부하는 법이 었다. (기숙사에 있던지라, 누가 뭘 언제까지 공부하는지 투명하게 다 보였다) 나는 늘 1시 넘어까지 공부를 했었고, 물론 더 많이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양적으로 보면 내가 분명히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 같았지만 결과는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다. 양보다 질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브걸의 경우에는 어떤 상황일까? 걸그룹이 성공하기 위한 재능이라면 외모, 노래, 춤을 가장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을 텐데, 이들은 걸그룹으로서의 재능은 충분히 갖추고 있었고, 이게 노력 & 존버와 더해진 상태에서 운이 가미되어 포텐이 터진 것으로 보인다. 즉, 단순히 브걸을 노력의 아이콘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판타지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그녀들 역시 남부럽지 않은 재능을 보유했기에 성공의 반열에 한 발자국씩 시나브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노력을 더 중시하는 사회

우리 사회는 예전부터 유난히 노력을 중시했다. 공부를 못하면, 넌 노력을 안 해서라고 하기 일쑤였고, 노력 없이 과실을 얻을 수 없다고 주문처럼 외워왔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운을 일단 차치한다면 재능이 8이고, 노력이 2라고 본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재능이 뭔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찾아야만 한다. 나의 경우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해야 한다고 사회화가 강제로 되었고, 여러 가지 예체능을 접해봤지만 딱히 잘하는 것도 없었다. 각종 체육활동에서 편을 나누면 항상 난 가장 마지막에 뽑히는 전형적인 깍두기였고, 미술이나 음악은 흉내만 잘 내는 정도에 불과했음이 불현듯 떠오른다.

더불어 최근 아이들의 공부를 가끔 봐주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아이들이 공부에 재능이 없는 걸까? 내가 공부에 소질이 있었던 걸까?'이다. 30년 전의 과거인지라 왜곡되어 기억될 수도 있지만, 5초 만에 까먹고 다른 소리를 하는 아이를 보면서, 넌 공부 말고 다른 경험을 더하도록 해줄게라고 속으로 되뇌이는건 너무 이른 포기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누구 말마따나 우리 사회도 진보하면서 다양한 직업군이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섞인 전망도 해본다.




말 그대로 때 아닌 아이돌의 역주행으로 상념에 잠겼다. (다른 말로 하면 정리가 잘 안 된다) 그녀들이 이제야 빛을 보는 드라마는 너무 감동적이고, 한동안 계속 응원하고 싶다. 반면에, 그녀들의 노력에만 찬양하는 기조에는 괜히 반기를 들고 싶은 심보도 생긴다. 결국 그녀들의 재능이 이제 와서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오늘 우연히 예술의 전당을 갔다가 로즈 와일리 전이 열린 것을 보았다. 물론 미술에 문외한인 난 잘 알지 못하는 작가였지만, 급히 찾아보니 40대 때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해 70대에 신인상을 받고 현재 86세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존버의 끝판왕이 아닐까도 싶고, 재능과 노력이 저렇게 피어나기도 하는구나도 싶다. 어쩌면, 나의 재능은 아직 여전히 원석처럼 어딘가에 숨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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