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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Jun 04. 2021

[Thoughts] 노력의 배신,

몸의 신비,

학창 시절에 대조되는 두 친구가 있었다

H는 칼 같이 11시 30분 정도에 책을 덮었다. 그리고 취침했다. (기숙사에 살았다)

L은 최소 1시까지 공부했다. 책이 새까매지도록 줄을 긋고 미친듯이 암기했다. 그러다 잠들었다. 이 친구는 시험 전까지 교과서를 20번 넘게 본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H는 수능, 내신 모두 3등 안에 랭크되었다. 반면, L은 내신에 한해서만 3등안에 랭크되고 수능은 5등 밖이었다. 


그걸 보면서 전지적 시점에서 역시 머리 좋은 놈은 못 이기는건가? 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얼마 전 슈카형 방송을 보다가 훅 와닿는 이야기가 있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은 허구라는 것이다. 자신도 게임에 1만 시간 넘게 투자할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프로게이머가 될 정도의 실력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 합쳐져야 1만 시간의 법칙이 효력을 발하는 것이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절대 최고가 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사실, 슈카형도 마찬가지다. 많고 많은 유튜버 중에 왜 슈카형만 구독자가 100만이 넘을까? 전달력이 타의 추종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비슷한 내용을 전달하는 유튜버는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신입 시절, D팀장님과 L팀장님 간 의견 차이가 있었다. 

D팀장님은 회사일이라는게 정말 고난도의 숙련성이나 전문성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서 시간은 더 걸릴 수 있어도 아무놈이나 데려다 시켜도 된다고 말했다. 반면, 외국대학을 나와 글로벌 컨설팅사를 거쳐 우리 회사에 온 L팀장님은 아무리 시간을 많이 투자해도 동일한 퀄리티를 낼 수 없다고 단언했다.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어떤 때는 D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L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전자는 누군가가 빠져도 조금의 불편 끝에 회사에 마치 그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잘 돌아가는 경우이고, 후자는 유사한 일을 서로 다른 이들이 한 결과물을 볼 때 여러가지 면에서 다를 때이다. 

상황이 다르기에 무엇이 맞다고 단언할 수 없겠지만, 요즘 상사가 바뀌어 적응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L팀장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참고로 L은 팀장을 하다 이직을 했고, D는 임원까지 갔으나 최근 자의반타의반으로 퇴사했다.)  




골프 선생님이 말했다. 

회원님의 장점은 습득력이 좋아요. 가르쳐 드리면 이해도 빠르고 곧잘 따라해요. 그런데, 단점은 스포츠를 공부하듯이 하고 있어요. 이건 프로선수 되려고 하는게 아니에요. 즐기려고 하는 거에요. 그냥 몸이 기억하도록 빵 때리는 것도 필요한데, 하나하나 그려나가고 있어요. 근데 그려나가는 것도 조금씩 다 틀려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엉망이에요. 몸으로 하세요, 머리는 조금 내려놓으시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선생님에 대한 신뢰감이 급상승했다. 나에 대해 모든걸 꿰뚫어보고 계시는구나. 나의 작은 어설픈 자세들이 저렇게 하나하나 세세히 다 보이는구나. 그런데, 나 더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나는 타의 추종이 불허하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일하는 것일까?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날실과 씨실을 엮어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친구들보다 훨씬 잘하는 골퍼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맑은 공기 마음껏 마시며 새로운 경험을 해보려고 하는 뉴비일까? 


작년을 거쳐 올해까지 전에 없던 세상을 살아 가며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많은 상념에 사로잡히곤 하는 것 같다. 밤새 멍하니 TV를 보는 시간마저 나를 위한 시간이라 온전히 자위하곤 하는, 그런 철없는 여유로움이 생겼다고나 할까? 


10년 뒤, 20년 뒤를 위해서는 더 노력해야해 라고 나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 언젠가, 핑계의 무덤 뒤에 오롯이 서있을지, 깊이 파고 침잠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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