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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Jul 05. 2021

Happy Birthday to Me

일년에 단 하루, 나를 위한 찬가.

"OO이 생일이래, 다들 가자!" 


시끌벅적 동네 아이들이 모두 우리 집 쪽으로 왔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렸고, 아이들은 모두 내가 사는 앞집으로 향했다. 


406호에 살던 나의 이름은 OO, 405호에 살던 그 아이의 이름도 OO 성만 다른 동명이인이었다. 그 아이는 양력 6월 24일 생이었고, 난 음력 5월 24일 생, 너무도 공교롭게도 그 해 생일은 서로 같은 날이었다. 심지어 같은 학교 같은 반. 


마주 보고 있는 앞집, 그 아이의 집에서는 성대한 생일 잔치가 벌어졌고, 우리 집에서는 평온한 일상 속에 앞집의 시끌벅적한 소음이 간간히 들릴 뿐이었다. 초대를 받았지만, 쉽사리 현관문을 활짝 열고 앞으로 향할 수 없었다. 나의 생일이지만, 남의 생일에 불청객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을 그 어린 나이에도 느끼며 뒤로 발자국을 옮기고 말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짐작했지만, 당시 엄마는 집에 아이들을 초대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었고, 그 이후로도 나의 생일잔치가 열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다만, 난 항상 친구들의 초대장만 한장 한장 쌓아가며 겨우 엄마에게 1~2천원의 용돈을 받아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해갈 뿐이었다. 




이후의 중고등학교 학창시절도 별다를게 없었다. 나는 그냥 지극히 평범한 샌님이라 그 흔한 학창시절 로맨스도 없었고 생일은 가족 간에 인사를 주고 받는 정도였달까, 물론 주변 친구들의 일상적인 축하 정도만 있었다. 




"야 누나 집으로 놀러 와, 미역국 끓여줄게! 너도 XX초등학교 나왔다고? 정말? 내 동생이랑 친구겠네?" 


방금 우연히 인스타에서 본 그녀의 사진에 그 때의 기억이 너무도 또렷이 떠올랐다. 대학 2년 선배였던 그녀는 K대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고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와 동기 친구들 여럿을 초대하여 나의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당연히 그 때도 감사히 받아 먹었지만, 마침 생일인 오늘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니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프랑스에 안착하여 살고 있는 그녀는 여전히 만리타향에서 휴가차 놀러 온 또다른 후배의 생일 미역국을 끓여주고 있었다. 

당시 반년 쯤 후인가 그녀는 그 때 사용한게 미역이 아니라 다시마였다는 실토를 하며 너네가 잘 먹는게 신기하기까지 했다며 즐거운 에피소드마저 만들어주었다. 


사실 그녀가 정성껏 만들어준 이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대학교에서 나의 생일은 그리 좋지 않았다. 방학이라 학교에 친구들은 없었고 심지어 장마였다. 꽃피는 봄이나 선선한 가을에 생일인 친구들이 내심 부러웠고 수많은 축하와 케익들이 난무할 때면 스산하디 더운 나의 생일이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지금, 

가정을 꾸린 이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생일을 맞이하고 있다. 음력생일이었던 어제는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고 (다행히 다치진 않았지만) 오늘은 지금 현실 도피를 위해 하릴 없이 회사에 나와 있다. 음력 생일에는 몰래 약을 먹으며 억지로 잠을 청했고, 양력 생일인 오늘은 어차피 모두 자고 있을테니 편히 약을 먹고 잠에 들겠지. 


아홉수인가, 

샤머니즘을 그리 믿지 않아왔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샤머니즘과 엮어버리고 싶은 나날들이다. 그리고 억지로 엮고 엮어 음력 5월은 내 인생에 있어 손꼽히는 고통의 순간들이 아닐까 싶다. 숨쉬는 순간순간 생경하게 떠오르는 이미지와 상상 속의 장면들이 나의 목을 시나브로 죄어 오는게 느껴지는 지금, 철 없던 스무살에 만나 동향후배라며 따스하게 한 상 차려주었던 그녀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에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다. 


샤머니즘의 신봉자인 어머니가 얼마전 내게 이름을 바꿔야 된다고 하셨다. 불혹이 다 되어가는 아들에게 이름을 바꾸라니, 지금 와서 말이나 될 법한 이야기인가 싶어 가볍게 넘겼는데... 이름 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싸그리 태워버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내 인생 화양연화처럼, 

문득 삶의 모토로 이 문구를 꼽던 지난 그녀가 아스라이 스쳐간다. 



생일을 두시간 넘기고 어렵사리 퇴근한, 모두가 숨을 죽인 am 2:39... 

39세의 나조차 숨을 죽이며 잠이 들 시간이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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