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rng Jul 06. 2021

[Thoughts] 낯선 탕진,

나를 더 사랑하자, 그런데 어떻게?

"야, 니 구멍난 팬티 입고 다니제? 니 이제 정신 똑띠 차리고 꾸미고 다니래이"              


만리타향에서 어지럽게 들려오는 걸죽한 누나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순간 아이들의 목소리도 환청처럼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빠, 팬티 구멍났다! ㅋㅋㅋㅋㅋ 그리고 아빤 왜 집에서 구멍 난 바지만 맨날 입어?" 

"아빠는 왜 맨날 유통기한 지난 것만 먹어?" 


당당히 연봉 1억을 훌쩍 넘겼지만, 난 여전히 궁상맞게 살고 있었다. 

나를 위한 소비를 해본 것이 언제였던가, 배우자나 아이들의 물건들은 명품까진 아니지만 부족하지 않게 늘 샀었고 최소한 먹고 싶은걸 사주지 않은 적은 없다. 물론 그녀나 그들이 생각하기에 부족함이 당연히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의식주에는 크게 아끼지 않으며 살아 왔다. 

난 어짜피 몸이 아름답지 않아 옷태가 안 난다는 이유로 늘 오픈마켓에서 최저가를 찾아 기나긴 여정을 떠났었다.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 중 가장 값어치가 많이 나갔던 예물시계는 배우자의 가방으로 바뀐지 오래였고, 작년말 배우자의 생일에는 L 브랜드 중 고급라인 가방을, 올해 내 생일에는 그녀에게서 축하한다는 카톡과 선물을 주지 않아서 삐진 것 아니냐는 문자만 내 전화기에 오롯이 남아 있다. 



나를 위한 소비를 하고자 마음 먹었다. 그리고 굳게 닫힌 핸드폰을 당당히 열었다. 


하지만, 순간 길을 잃었다. 난 날 위해 좋은걸 사본 적도 없고, 살 줄도 몰랐다. 친구들이 이것저것 사라고 자신있게 말해주지만, 난 그게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순간 한 친구는 나의 낯섬과 무지에 안타까워했다. 그 안타까운 마음이 내 눈가에 전해지자 앉아 있던 장소가 회사인지 조차 잊고 울컥하고 말았다. 

 


결국 겨우겨우 용기내어 아무도 몰래 나의 생일을 문자메세지로 정성껏 축하해준 Nike의 운동화를 구매했다. 10% birthday 쿠폰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난생 처음으로 영양제를 구매했다. 늘 아이들, 배우자, 어른들 영양제만 샀었지, 날 위한 영양제를 사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난 뭐 건장한 30대인데 영양제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어라고만 늘 생각해온 내 몸뚱아리가 불쌍해졌다. 


왜 난 나를 아끼지 않았던가, 

왜 난 나를 혹사했던가, 

왜 난 나를 궁휼히 여기지 못했던가, 



어제 오랜만에 문을 연 회사 Gym에서 대학 3학년 때 어머니가 사주신, 무려 15년이나 나의 인생을 함께 해온 아식스 러닝화를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조심스레 현관 앞 헌옷 기부 통에 흘려 넣으며 안녕을 고했다.


내 지난한 아픈 기억들도 언젠가는 두 손 가득 가벼이 흘려 보낼 수 있기를 온 힘을 다해 간절히 기원해본다, 

절실하게, 절박하게, 절망적으로, 

제발.  











작가의 이전글 Happy Birthday to M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