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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Jul 17. 2021

[Thoughts] outsider,

소리 없는 아우성,

난 늘 깍두기였다. 


학창시절에는 누구나 흔히 이야기하는 함께 등하교 하는 단짝 친구도 없었고, 특별히 모임 같은 것에 초대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중학교 땐 학원에서 왕따를 당한 적도 있다. 


사교성이 많아 모임에 가서 두각을 나타내는 성격도 아닐 뿐더러, 술자리에 가면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해 구석 자리를 언제나 탐내했다. 


두세명의 소규모 모임에서나 나의 생각을 표명하고 교류를 해왔지, 남들처럼 재잘재잘 떠드는 단톡방이 여럿있지도 않다. 


겉으로는 활발한 성격 같아 보이지만, 막상 보면 혼자임이 익숙한 그런 아이.. 


최근 힘든 일을 겪으면서, 이것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극소수의 믿을만한 친구들에게 나의 어려움을 털어 놓았고, 그 친구들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고 위로해주었다. 난 털어놓으면서도 나의 우울함이 그들에게 전이될까 애써 담담하게 이야기하였지만, 그들은 날 있는그대로 받아 주었다. 


하지만 요즘도 여전히 일주일에 두 번 참을 수 없는 날이 찾아 오고, 누군가 함께 있을 사람을 찾지만 쉽지 않다. 코로나가 극심한 상황에서 가족들이 있는 친구들에게 저녁에 같이 있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상황이 길어지면서 아침부터 불안이 내 정신을 포식하는 날이면, "누구에게 연락하지?"라는 생각에 부들부들하다가도 결국 "아니야, 혼자 버텨야지. 그만 부담주자" 라고 생각하고 만다. 


의사선생님은 물론 아니라고 하셨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 잘 하는 일이라고, 당신이 그 친구들의 입장이라도 잘 들어주지 않았겠냐고, 위로해주지 않았겠냐고 하셨다. 하지만, 음침한 불안이 앞선다. 나의 이 끔직한 이야기로 인해 행복한 저 이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음울함이 미치면 어쩌지?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면, 그 절반의 슬픔을 왜 남에게 떠밀려 하는가,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할 나만의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어보고자 상담센터도 찾았지만, 마치 B사감 같은 상담선생님은 나를 분석하려 들더니 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냐고, 왜 이 지경까지 끌고 왔냐고 다그쳤다. 난 단지 동조의 한숨, 깊은 끄덕임을 바랬을 뿐이었는데, 그녀는 날 병상 위에 옮겨 놓았다. 처참한 심경을 참을 수 없어 다음 예약은 결국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또 하릴 없이, 카톡을 뒤지다 이내 곧 접는다. 

이 공간 외에는 더 이상 나의 이야기를 할 곳이 없는 것만 같다. 


왜 하필, 왜, 왜 하필 금요일인건지, 

그들의 우아한 TGIF에 나는 주말 내내 한 없이 피폐해져만 간다. 

부디 제발 빨리 잠들어 버리고 싶은 그런 밤이다. 



사실 처음에는 내가 아싸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힘든 시기 친구들의 도움으로 희망을 잃지 않고 있음을 주제로 써내려가던 글이었다. 하지만,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가보니 희망의 메세지가 차마 나오지 않는다. 아직 난 여전히 진실과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가보다. 과연 어떻게 될까, 이 내 빌어먹을 인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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