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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Aug 14. 2021

[arts] 젊은 예술가의 초상집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야 할까요,

난 예술 - 특히, 미술을 잘 모른다. (물론 음악이나 기타 다른 종류들도 문외한이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학원을 꾸준히 다녔지만, 소질이 크게 없었던 것 같고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하듯이 skill을 익혀서 그렸었지 않나 싶다. 그랬기에 사람들의 표정이나 동작을 상세히 묘사해야 그림이 더욱 풍성해지는 생활화를 그릴 때 더욱 어려워했었고, 사과나 육각형 등 공식에 따라 연필로 조금씩 칠해나가면 그럴듯하게 완성되는 소묘를 가장 좋아했고 곧잘 했다. 고등학교까지의 미술은 딱 이 정도였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이론도 암기하고 그리기 기술까지 암기해버리는 수준.

대학에 와서도 여전히 미술에 대해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연극반을 하며 미대 친구들과 친해졌다. 그들은 다른 세상의 아이들 같았다. 그 친구들을 처음 만난 공연이 그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였던가? 분장을 지우고 만난 그 친구들은 여전히 내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이었다. 자유분방한 모습, 하고 싶은걸 하고 사는 것 같은 모습, 그걸 어렵지 않게 표현해내는 모습, 묘한 매력에 빠지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하나하나 친해지고 싶었고 하나하나 곁에 두고 싶었다. 내 곁에 있는 친구들과는 또 다른 모습들에 대리만족을 하곤 했다.

하루 이틀 나이를 토해 가며 먹어 가고, 직장과 결혼의 굴레에 들어섦에 따라 그 친구들과 하나둘씩 뜸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코사인 곡선을 그리면 그 친구들은 탄젠트 곡선을 그렸다. 그렇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삶을 영위하기 위해,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보고자, 때 아닌 뿌리 찾기가 시작되었다.
놓고 살았던 친구들을 하나 둘 만나며 오랜 세월의 퍼즐을 서로 바삐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과거에서 고뇌의 흔적, 피로의 흉터, 심연의 눈물을 확인하며 공감하였다. 그저 공감하며 나도 깊은숨을 내쉬려고 애써 노력하였다.

그 와중에 이민선 작가님의 전시를 찾았다.
학창 시절 오빠, 동생 하며 친근히 부르던 사이였는데 어느새 어엿한 작가님이 되어 계셨고 훌쩍 커버린 것만 같은 그녀의 키에 내가 더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평안하게 누워서 10분간 감상을 할 수 있게 한 그녀의 작품 '말이 많은 작업'은 제목 그대로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었다. 63 빌딩에 비친 석양, 그리고 물소리가 흐를 때는 이 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생각이 부리나케 들었고, 타지 어느 마을 수풀 속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그녀의 울음소리에는 얼마 전 올림픽대로를 운전하며 미친 듯이 울어 댔던 나의 울음이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무슨 소린가 하며 쳐다보는 한 부인의 시선은 발거 벗은 나를 흘낏흘낏 쳐다보는 사람들의 처연한 눈망울 같았다. 예술은 그렇게 나의 마음을 훔쳐본 것마냥 폐부를 찔러댔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집에 방문했지만, 젊은 예술가의 상은 온데간데없고 순간 본인 상을 치르고 있었다.

조정민 화이트 노이즈 디렉터는 본 전시를 평하며 거대한 대서사를 늘어놓았지만, 사실 난 잘 모르겠다. 예술가의 가짜 장례라는 전시 컨셉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 와닿지 않았다. 그냥 나의 가짜 장례였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복잡한 심경이 그득했다. 이렇게 가짜 장례 이후 새롭게 생을 꾸덕하게 이어갔으면 하는 마음만 그득히 채운 채 다시 굳게 닫힌 철문을 어렵게 열었다.

어두침침한 현실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젊은 예술가도 뭐도 아닌 내가, 가짜 장례를 치른 뒤에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초상집을 방문한 뒤 초연 해지는 심정을 처연히 다스리는 초월하고 싶은 나약한 밤이다.

그렇게, 또 그렇게, 이윽고 그렇게
하나의 생명은 또 그렇게 하릴없이 지고 말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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